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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품격과 혁신으로 꽃피운 조선의 절정
은행나무 | 부모님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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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체가 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에는 아주 특별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白磁滿月壺〉 한 점이 소개되었다.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후의厚意로 대여받은 지정 문화유산급 달항아리다. 이 항아리는 동일한 종류의 항아리 중에서도 단정한 형태미가 빼어난 명작인데, 사진 속 온전한 모습과는 달리 사실 심하게 훼손되었다 복원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본래 일본 나라현奈良県에 위치한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내의 칸논인観音院이라는 건물에 있었는데, 1995년 7월 4일 한 사건에 휘말린다. 경내에 침입한 한 사내가 이 항아리를 들고 도주한 것이다. 이내 사람들이 쫓아 포위했지만 궁지에 몰린 범인은 이 항아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힘껏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는 도주해버렸다. 3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이 달항아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고고학자의 손까지 빌려 항아리의 파편을 가루까지 솔로 쓸어 모았지만, 셀수 있는 파편만 300조각. 산산조각 난 달항아리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인 수리·복원 전문가의 6개월에 걸친 집념으로 달항아리는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게 복원의 흔적이 보이도록 마무리가 되어 달항아리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1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은 이 항아리의 감추어진 이야기에 크게 감명을 받으며 너도나도 깨어진 선을 찾기에 바빴다. 기우뚱한 달항아리에서 받는 위로와는 또 다른 깊은 감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_ 들어가며 백자 달항아리, 조선백자의 마중물

건국 초기 분청사기와 함께 무른 성질의 연질백자를 만들던 조선은 빠르게 기술적 완성을 이루어 나갔고, 1460년대 후반이 되면 경기도 광주 일대에 왕실이 사용할 백자를 전용으로 생산하는 관요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후 제도가 빠르게 정착하며 조선 시대 여러 시기에 만든 백자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백자는 15~16세기에 만들어진다. 상감백자라는 ‘서곡’이 끝나자마자 조선의 관요백자는 ‘때 이른 절정’ 즉, ‘클라이맥스’를 연주하게 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강렬한 인상의 연타음으로 좌중을 사로잡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Symphony no.5 in C minor, Op.67〉과도 같은 전개라 할 수 있다.
_ 때 이른 절정, 관요백자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용 항아리를 소개하면 종종 “아! 이 용은 발가락이 다섯 개다. 이건 황제가 쓰는 거야! 아주 좋은 거네!”, “이 용은 네 개네? 세 개짜리도 있네?” 하면서 발가락 개수에 집중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쑥스러운 일화이지만 한 번은 발가락이 네 개인 용 항아리에 발가락이 다섯 개인 용 항아리 설명을 혼동하여 붙인 적이 있는데, 관람객들의 지적이 그 어떤 때보다 빨리 들어오기도 했다. 이처럼 용의 발가락 개수는 관람객의 눈에 바로 띄기도 하고, 궁금증도 많이 자아내 감상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 한자 표현을 따르자면 정확히는 발가락이 아닌 발톱의 개수를 세는 것인데, 이로 미루어볼 때 중국에서는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의 상징성이 그렇지 못한 용에 비해 더욱 높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기록보다 후대이긴 하지만 조선의 경우 명나라 대에 제후국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역시 쌍각오조룡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조선 태조 어진朝鮮太祖御眞〉에서도 보았듯 조선 초 왕의 용포에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이 수 놓인 예가 있고, 고종 대인 1867년 재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은 심지어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 두 마리로 장식되어 있다. 즉, 쌍각오조룡은 중국 황제만이 아닌 조선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담아 사용했던 것이다. 또한 왕실 내에서도 왕실 인사의 신분에 따라 엄격하면서도 세밀하게 차등을 두어 사용했음이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졌다.
_ 푸른 용, 왕의 상징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준광
2011년부터 리움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있으며, 고려청자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논문 발표를 병행하는 연구자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첫 도자기 주제 전시로 조선백자를 선택해 대형 전시를 선보였다. 도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정형에서 파격으로, 분청사기의 일곱 얼굴’, ‘도자기 상식 오류 목록’ 등 대중에게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강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도 강의 중이다.[전시 기획]《수호의 염원》, 호암미술관, 2015년《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리움미술관,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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