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목민정 작가의 영화에세이집이다.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사유가 담겨 있다. 보이저호가 먼 우주에서 포착한 ‘희미한 푸른 점’처럼, 이 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우리 존재의 빛을 영화 속 장면들과 겹쳐 되묻는다.
출판사 리뷰
목민정 작가의 영화에세이집이다.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사유가 담겨 있다. 보이저호가 먼 우주에서 포착한 ‘희미한 푸른 점’처럼, 이 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우리 존재의 빛을 영화 속 장면들과 겹쳐 되묻는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곧, 나를 비추는 작은 빛을 발견하는 일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검은 스크린 사이로 스며든 장면처럼, 이 책은 화면 밖 우리의 마음에 오래 남을 질문과 여운을 남긴다. 함께 웃고 울며 본 영화들이 연결해준 시간들, 그 나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넘어 타인의 마음으로 스며든다. 당신의 눈앞에 스치는 한 편의 영화가, 다시 하나의 삶으로 열릴 수 있기를 바라며 쓴 글들이다.
삶을 벼리게 하는 죽음
<아무르 Amour 2012>
불안이 없는 행복을 꿈꾸었던 에피쿠로스는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에 닿을 수 없고, 죽으면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인간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으로 직행하고 있다. 마치 두 암흑 사이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먼지 같은 존재가 인간이다. 탄생 전과 죽음 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생명이 있는 한 엔트로피의 증강을 막을 길이 없다. 시간의 엄정함은 차갑도록 공평하며 한치의 예외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회피한다. 망각을 통해 가짜 위안을 얻으며 자신을 때때로 속인다. 살아 있는 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죽음이 있다. 그러면 죽음을 향해가는 세계에서 삶과 사랑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아무르 Amour>는 양면색종이를 닮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며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에피쿠로스가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삶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은 하나며 삶이 치열한 만큼 죽음 또한 치열함을 말하고 있다. 삶 속에 사랑과 죽음은 분리할 수 없다. 사랑과 죽음은 삶이라는 종이의 앞뒷면이다.
자존이 강하고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는 안느와 조르주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내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는 다정한 남편은 변해가는 죽음의 변주 앞에서 당당하게 안느를 지켜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노인이지만 사랑이라는 방패로 막고 싶었다. 그는 알지 못하는, 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죽음이라는 도둑을 맞이한다.
도둑이 예고하고 들이닥치지 않듯, 죽음 또한 예의는 없다. 다만 가차 없는 통보일 뿐이다. 깊숙하고 긴 복도를 가진 그들의 집에 햇살이 비치는 작은 창 앞, 노부부는 작은 2인용 식탁에 다정히 앉아 식사한다. 이야기 도중 갑자기 멈춰버린 안느, 멍한 눈으로 얼어붙은 그녀를 보며 조르주는 당황하고 놀란다. 그것이 둘 사이에 들어온 죽음의 첫 발걸음임을 알았을까? 죽음은 멈추는 것이다. 살아 움직임 없는 벽처럼 정지된 시간이 여전히 움직임 가득한 현실에 툭 던져지며 운명의 시작을 알린다.
필연적인 죽음은 우연처럼 노크한다. 삶의 시간에 느닷없이 닥친다. 죽음은 나이 고하를 가리지 않고 정의도 사랑도 개입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영역이다. 공평한 죽음이지만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개인에게 죽음은 보편적이기보다 한 번뿐인 특수한 경험이다.
둘만이 고군분투하는 집에 방문하는 이들은 관객처럼 바라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손님들은 왔다 가버리고 다만 그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은 늙고 병든 사랑하던 둘뿐이다. 죽음은 둘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평생 화 한번 안 내고 사랑했던 아내에게 짜증과 한숨, 손찌검이 이어진다. 안느보다 변해가는 자신에게 더 놀랐을 조르주.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간이다.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에게 가까이 온 죽음에 두려움과 공포, 외로움과 슬픔이 전이된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을 가혹하게 부수고 파괴시킨다.
육체는 허물어져도 정신이 있을 때는 자존을 지키고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정신을 흔들어 놓는 죽음의 손길에 말을 점점 잃어 간다. 언어는 분절되고 토막 나고 단어는 사라진다. 오직 ‘엄마’와 ‘아파’만 외치는 아내를 보며 함께 부서져 가는 심정이다. 정신이 아직 또렷한 조르주 가슴에 고스란히 대못이 박히는 것 같아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한다. 좋은 시간일 때는 누구나 호인이기 쉽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시간에도 변함없기는 어렵다. 노인끼리 돌봄은 같은 처지라서 위로는 될지언정 시간이 갈수록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육체보다 정신의 파괴다. 인간을 이루는 것에 몸과 정신에 우열은 없지만, 인간을 지키는 것은 정신이 더 큰 작용을 한다.
집은 마치 관처럼 변해가고 어느 저녁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연다. 어둡고 텅 빈 복도로 나왔다. 누구냐고 아무리 물어도 대답 없는 복도 끝을 돌아서니 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어둠 속 불쑥 나온 손은 조르주의 입을 틀어막는다. 비명을 지르며 깬다. 악몽이다. 느닷없이 와서 숨을 조이는 죽음, 그 두려움이 악몽으로 그려졌다. 난데없이 당한 도둑과 같은 죽음은 손님이라는 은유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의 대척 지점엔 증오가 있다고 알지만, 사랑의 반대엔 무관심이 있다. 혼자 감당할 수 없어 간호사와 목욕관리사를 부른다. 그들을 도와준다고 방문하는 이들에겐 죽음은 머나먼 이야기고 일상을 꾸려가는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저항할 수 없는 병든 육체가 아니라 누구보다 빛나던 지성과 우아한 매너를 가졌던 한 사람에 대한 예의 없는 타인들로 조르주는 화가 났다. 사실 자신에게도 곧 닥칠 일이기도 하다. 아내의 죽음 뒤에 혼자 남아 죽음을 고독하게 견디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증오보다 나쁜 감정이었다.
타인이 공감할 수 있다 해도 닿을 수 없는 유리벽에 갇힌 두 사람. 우리에겐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살아남기 급급한 현실에서 죽음은 미뤄두기 쉬운 불편한 것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음으로부터 도망갈 길 없는 치열한 싸움을 보는 것 같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아내는 또 ‘아파’를 반복하며 외친다. 하던 면도를 그만두고 뒤뚱뒤뚱 걸어간다. 그리고 달래듯 손을 잡고 손등을 쓰다듬고 긁으며 진정시키려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어린 날 캠프에서 아팠던 이야기다. 40도가 넘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엄마를 찾았던 이야기를 하며 그는 문득 어린 시절 느꼈던 공포와 불안을 회상한다. 순간 아내가 외치는 ‘아파’와 ‘엄마’에 깔린 절실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잠잠해지며 가라앉은 안느에게 느닷없는 행동을 한다.
사그라지기 전 요동치는 생명의 벌떡임이 움직이지 않는 죽음의 정적과 팽팽히 겨룬다. 잠시 후 폭풍이 지나간 듯 그 고요함은 묘한 진동을 일으킨다. 사랑하기에 죽음에 이르게 한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에 한순간 나도 먹먹해졌다. 자신이 지켜내려 한 것은 안느였지만, 자신이 지켜내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고통의 시간을 길게 끄는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사랑과 죽음이 묘하게 일치하며 환한 햇살 아래 죽음을 끌어안는다.
더는 고통을 볼 수 없었다. 안느가 정신이 와해되기 전 마비된 한쪽을 두고 한 손으로 사진첩을 넘길 때 그녀는 말한다.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참 길어” 환희와 지루함이 공존하는 말을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첩을 넘기며 무심코 흘린다. 그녀에게 하루하루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어제보다 조금씩 부서지는 것을 직시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창으로 날아든 비둘기가 저승사자처럼 불길했던 것일까. 조르주는 얼른 쫓아냈다. 두 번째 비둘기가 다시 방문하자, 여러 번 던진 담요에 잡힌 비둘기를 끌어안는다. 돌아온 영혼을 감싸듯, 아니면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받아들이듯, 사랑하는 마음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묘하게 겹치며 고독하게 홀로 남은 복도의 쓸쓸함이 황량하다.
죽은 듯 누운 조르주에게 그리운 일상처럼 설거지 대에서 소리가 들리고 휘청휘청 일어서 다가가니 아내가 외출하자며 빨리 나가자고 한다. 외투를 챙겨입으라는 아내의 말에 옷을 입고 뒤따른다. 그립고 그리운 아내를 따라 문밖으로 나간다. 영화의 시작에 외출 후 돌아온 부부의 모습이 있었고, 마지막 즈음 둘은 죽음의 세계로 외출하듯 나란히 나간다. 이 세상에 소풍 왔다 떠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말한 시인처럼 온전히 사랑했고 깊이 나누었던 두 영혼은 홀연히 외출하듯 사랑 속에 잠든다.
영화가 시작되고 문을 부수고 들어오던 사람들은 꽃을 뿌린 채 단정하게 누운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썩어 코를 잡게 만들지만 잠든 그녀는 평화롭다. 곧 문이 사방으로 열리고 관과 같았던 어둡고 긴 복도는 환한 햇빛으로 채워진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모두 떠난 후 아빠가 앉아 있던 의자에 딸은 멍하니 앉아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삶이 돌아간다. 그리고 삶 속에 있는 딸에게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이며 실재적인 길 위에서 무력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후 매일 조금씩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이 간다. 그 죽음이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는 공포와 분노의 감정도 일지만, 그 감정은 또한 삶을 추동시키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막연한 두려움에 미뤄둔 죽음을 간접적으로 지켜보니 등 뒤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한편 살아 있는 이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독 미하엘 하네케는 “예술가는 사회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영원히 소금을 발라대는 존재다.”라고 했다. 아프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을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게 하는 힘 또한 사랑이다.
이제, 딸의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듯 텅 빈 방에 그녀는 우두커니 앉았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시간 안에 죽음이 도둑처럼 닥쳐 가차 없이 순서를 밟게 될 것이다. 곧 닥칠 죽음을 멀게만 보지 말라는 말인 듯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음을 직시하게 된다. 나이듦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죽음 앞에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마음먹을 건지 묻고 있다. 죽음은 치열하다. 삶이 치열했던 만큼. 살아 있는 시간에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의 시간에 사랑을 가지고 가리.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을 벼리게 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목민정
가을날 수요일에 태어났다. 바다가 출렁대는 부산에서 태어나 계속 기거하고 있다.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을 꽃피우기 위해 걷고 있다. 호기심 많은 다능인의 삶을 살며, 언젠가 완성될 나의 별자리를 꿈꾼다. 삶을 살지 않는 채로 죽지 않으리라. 공저 『굴참나무, 기후위기를 걷다』, 『장소와 씨앗』, 『장소와 뿌리』, 『과학기술과 영화 그리고 인문』, 『금빛 죽음이 초록 삶에게』, 『기술과 인문, 그 나선의 춤』,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말들』, 『오늘의 선물』
목차
들어가며
죽음, 내게 던진 질문
삶을 벼리게 하는 죽음 아무르
내가 나로 존재하기 스틸 앨리스
판도라 상자 죽여주는 여자
문 앞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길 위의 삶 노매드 랜드
시선 언더 더 스킨
누구를 위한 조이랜드 조이랜드
시간의 운명 컨택트
사랑, 지키고 싶은 마음
마음을 바꾸세요 이터널 선샤인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작은 아씨들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 그녀
환상과 망상 사이 아픔이 있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었어요 아임 유어 맨
당신은 어때요? 피셔 킹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경계, 사이와 틈을 보다
떠도는 영혼 트랜짓
한 남자를 이루는 가면 한 남자
경계를 지우며 블레이드 러너 2049
기적과 재앙 사이 엑스 마키나
살아 있는 예술품 피부를 판 남자
현실과 가상 Uss 칼리스터
마주하기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대답하라 여기는, 아미코 여기는 아미코
삶, 보이지 않는 진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로마
부끄러워하는 양심 월-E
용기란 무엇인가 북샵
나를 비추는 거울 나의 문어 선생님
비상을 꿈꾼다 루시
마지막 기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연결 콘택트
순간의 반짝임 퍼펙트 데이즈
책 속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