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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어날까?
도화 | 부모님 | 202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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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접목」으로 등단하여 정식으로 작가가 된 이후 40여 년을 오직 외길 글쟁이로 살아온 정수남 소설가가 펴내는 신작 작품집이다. 실향민 작가인 정수남 작가는 혼돈의 시대 속을 살아내며 운명처럼, 숙명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평생 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해내고 있다. 소설집 『그는 일어날까?』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쓰고 또 쓰는 작가의 팔십 년 된 육체와 삶의 내력을, 그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말해 주고 있다. 표제작인 「그는 일어날까?」는 입시학원 강사 ’송주희‘가 대학 선배의 간곡한 부탁으로 만난 그녀의 오빠와의 이야기이다. 결혼에 딱히 관심이 없고 오직 문학에만 관심이 있는 노총각인 그는 철저한 마마보이다. 주희와 남자가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 간에 삶의 방식과 인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정말 나하고 같이 살고 싶으면 “어머니 품에서 나오세요.”라는 주희의 단호함에 남자는 한없이 작아진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면, 늦은 나이에 만난 짝사랑들이 첫사랑으로 인식론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는 일어날까?」에서 주인공의 상대에 대한 마음과 시선, 그 애틋함의 여운이 예사롭지 않게 길다.

  출판사 리뷰

정수남 작가는 운명처럼, 숙명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평생 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해내고 있다. -임철균(소설가·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접목」으로 등단하여 정식으로 작가가 된 이후 40여 년을 오직 외길 글쟁이로 살아온 정수남 소설가가 펴내는 신작 작품집이다. 실향민 작가인 정수남 작가는 혼돈의 시대 속을 살아내며 운명처럼, 숙명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평생 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해내고 있다. 소설집 『그는 일어날까?』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쓰고 또 쓰는 작가의 팔십 년 된 육체와 삶의 내력을, 그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말해 주고 있다.
표제작인 「그는 일어날까?」는 입시학원 강사 ’송주희‘가 대학 선배의 간곡한 부탁으로 만난 그녀의 오빠와의 이야기이다. 결혼에 딱히 관심이 없고 오직 문학에만 관심이 있는 노총각인 그는 철저한 마마보이다. 주희와 남자가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 간에 삶의 방식과 인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정말 나하고 같이 살고 싶으면 “어머니 품에서 나오세요.”라는 주희의 단호함에 남자는 한없이 작아진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면, 늦은 나이에 만난 짝사랑들이 첫사랑으로 인식론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는 일어날까?」에서 주인공의 상대에 대한 마음과 시선, 그 애틋함의 여운이 예사롭지 않게 길다.
「길과 길」은 주인공인 아내가 남편과 함께 교통사고로 6년 전에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아간다. 아내는 아들이 죽자 재가한 며느리가 몹시 서운하고 섭섭하다. 끔찍이 생각하는 손자 ‘주영’이 마저 연락이 끊긴 채 제 아비의 제삿날에도 오지 않는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이제 그만 놓아 주자” 한다. 이제는 각자 서로의 “길이 다른 걸 어떻게 하느냐”며 서로 모르는 척 눈감고 가자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과 다른 길’을 택한다. 아들이자 제 아비의 무덤에 찾아오지 않는 손자 주영이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마음속에 길 하나 품고 살자”며 다짐한다. 아내는 “길은 그쪽으로 가나 이쪽으로 가나 결국은 통하게 마련”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설령 내내 자신 홀로 걷는 길일지라도 아내는 자신의 길을 끝내 가리라 굳게 다짐한다. 「길과 길」에서 만나는 등장인물의 길은 모두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아내는 그 각자의 길들이 끝내는 한 길에서 만날 것이라는 짝사랑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든든한 집」은 아내이자 할머니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과 은미를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이 내내 교차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남편과 함께 ‘은미’라는 손녀를 양육하고 있다. 은미의 엄마인 딸은 15년 전 어린 핏덩이를 내게 맡기고 집을 나가 천방지축 망나니로 살고 있다. 그런 딸이 여러 남자를 갈아치우다 이번에는 돈 많은 이혼남을 제대로 만났다며 찾아와 인사를 하면서 은미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 자신을 할머니 집에 억지로 떠넘기고 소식조차 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엄마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은미는 친구들과 상의 끝에 무단가출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우리집이 다시 든든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모정’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으며 때론 더 모질다. 삶이라는 것을 충분히 살아보고 지켜본 작가가 그려낸 우리네 비정한 세태의 한 단면이다.
「수수께끼」는 실향민인 정수남 작가의 직접적 체험·자전적 소설이자 그의 근본 인식에 가장 절실하게 닿아있는 서사이다. 화자인 나는 실향민이다. 누이동생과 나를 데리고 월남한 아버지는 40년 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며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통일이래……되문, 내……뼈다구래 반드시 페양……우리, 선산에다……묻어달라우, 알갓디?”였다. 그때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해마다 아버지 제사를 정성껏 지낸다. 그러나 내 아들은 할아버지의 제사에 무관심하다. 묘지 관리사무소에서는 묘를 이장할 것인지 계약기간을 연장할 것인지 물어 와 고민하던 나는 결국 20년 연장을 결정한다. 하지만 아들은 요즘 세상에 누가 통일을 중요하게 여기느냐고 하면서, 나의 사고와 행위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고 한다. 나 역시도 아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향해 ‘수수께끼’를 툭 던져놓은 작가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던진 그 ‘수수께끼’를 풀어내기를.
「정상청은 죽었다」는 노인으로서 당면해야 하는 친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인 나의 동창 정상청이 죽었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는 빌딩과 한옥, 물류센터, 주말농장을 가진 대단한 자산가이다. 그러나 그는 타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한 자린고비이다. 자가용이 없고 빌딩 관리를 직접 하는 그는 빌딩 주차장 한쪽에 관리사무실 컨테이너를 놓아두고 아들과 주변에서 주워 온 전선 껍질을 벗겨 팔았다. 조의금이 아까워 장례식에 문상을 전혀 가지 않았던 탓에 그의 빈소에는 조문객이 거의 없다. 그의 부인이 평소와는 다르게 눈화장을 하고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빈소 안팎을 드나들었다. 장례식이 끝난 얼마 후 정상청이 있던 주차장의 컨테이너가 사라지고 고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더니 빌딩이 팔리고 건물주가 바뀌었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노인의 삶에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짙게 담겨있다. 특히 소설 속에서 두 노인의 생사관에 대한 대화는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미혹」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과거의 일과 현재 상황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사이다. 나에게는 지적 장애아들을 데리고 시골 고향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 나는 “정년퇴직을 얼마 앞두고 교장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사표를 던진” 이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해마다 봄이면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는데, 한예분 할머니가 몇 년째 아파트 사이 공간에 텃밭을 만들고 있어 그것을 강제로 철거해야 하는데 나는 홀로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쉽사리 없애지 못한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항상 말했다. “난 흙냄새가 좋아. 흙이 얼마나 좋은 줄 너희들은 모르냐. 모두 여기서 자랐는데. 그 냄새를 벌써 잊었니?” 관리소장의 호된 질책을 견디지 못해 결국 사표를 제출한 나는 동생에게 기거할 방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어머니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근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각이자,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부끄럽지 않은 사랑」은 노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모두가 쉬쉬하는 노인들의 성욕(性慾)에 관한 고백이기도 하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아비로 사는 칠십이 넘은 전 선생은 작가이다. 문학센터에서 <창작 교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중학교 교사 은퇴 이후 학원을 운영하는 이영숙이라는 이혼녀를 학생으로 만난다. 그녀는 작은 키에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서른이 넘은 아들 둘과 사는 영숙은 생활력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이에 반해 작가인 전 선생은 불규칙한 수입에 중소기업 대표인 아들이 생활비를 도와주고 있다. 전 선생과 영숙은 문학을 매개로 차츰 가까워지다 마침내 깊은 교감의 단계에 이른다. 늦은 나이지만 반려자로서 서로를 선택한다. 하지만 영숙의 아들들과 달리 전 선생의 아들은 아버지의 재혼에 반대하고, 며느리 또한 전 선생의 손자가 곧 유력 집안과 결혼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강하게 반대한다. 그들은 죽은 아내까지 들먹인다. 그렇지만 나는 죽은 사람 생각하면서 과거에 빠져 헤매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건 어쨌든 과거에 머문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간 전 선생은 북적이는 공항의 사람들 속에서 그녀의 어깨를 힘차게 끌어안는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노인들의 삶과 의식 양상에 있어 무엇이 늙어가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나는 평교사로 정년퇴직을 하고, 아내를 사별한 이후 홀로 살아가는 노인으로 <실로암 사우나>에서 목욕을 즐기는 것이 낙이다. 얼마 전부터 사우나를 하면서 모래시계에 맞춰 1에서 500까지 숫자를 세는 것이 자꾸 헛갈린다. 혹시나 하고 나의 의식 상태를 내심 걱정하는데 신학대학을 중퇴했다는 청년이 매번 나에게 다가와 죽음 이후 하느님의 나라 천국에 대하여 설교를 한다. 사우나 친구인 홍영감은 팔십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한 몸을 자랑한다. 나는 또 다른 사우나 친구인 백영감이 요즘 보이지 않아 찾자 홍영감은 팔십 넘은 늙은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죽음 밖에는 없다고 자조하듯이 흘린다. 그 말에 나는 주변에서 영원히 떠나간 이들의 얼굴과 추억을 떠올린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홍영감은 죽음이 찾아오면 그냥 어서 오세요, 하고 맞을 생각이라면서 덧붙인다. “어쨌든 지금은 숨을 쉬고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죽음 따위는 잊어버리려고. 그거야 어차피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아니겠어.” 백영감 또한 언젠가 홍영감과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아침 이슬” 같다고. 백영감을 찾아 나선 12월 겨울날 오후, 나는 서쪽 하늘에 물든 붉은 노을을 보면서 “문득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그 노을 너머가 빼빼 청년이 주장하는 천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우나에서 모래시계에 맞추어 세던 숫자를 나의 걸음에 맞추어 세기 시작하던 나는 모래시계는 일정하게 숫자를 요구하지만 늙은 나의 걸음에 맞춘 숫자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어떻게 늙음의 상태를 살아갈 것이며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코로나19 시대의 여섯 빛깔 이야기」는 코로나19 때를 배경으로 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있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고관절이 부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한 늙은 아내 시점의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고관절이 부러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 70대 남편의 독백이 일기형식으로 전개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동창생이 코로나로 죽은 상갓집에 있는 한 친구의 내레이션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요양병원 원장의 인터뷰 기사 형식의 이야기다. 코로나19에 따른 방역지침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물리적, 심리적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요양병원의 간병인 시점의 이야기이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코로나19 시대 어느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일로 원장이 요양보호사가 병원 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사무장을 강하게 질책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르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잃어버린 시간-코로나19 시대의 여섯 빛깔 이야기’라는 공통 주제 아래 다양한 삽화를 연결하는 옴니버스 구성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소설이다.
정수남 작가는 ‘밥과 문학을 타협시키는 것은 문학정신과 예술혼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소설집에는 문학적 성찰의 깊이가 유독 돋보인다. 정수남 작가는 올해 팔순이다. 그의 소설적 표현에 의하면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속에 서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아직 끝나지 않은 짝사랑’이 있다. 그 짝사랑의 대상이 자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짝사랑에 바치리라 맹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정수남 작가에게 문학은 운명이자 숙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작 소설집은 우리들의 등짝을 호되게 내려치는 죽비이다.

선배의 부탁은 어려운 수학 문제가 틀림없었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였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처럼, 같이 살면서 슬슬 풀어가면 풀지 못할 문제도 아니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어머니가 그를 기둥처럼 붙들고 살았겠어? 정말 나, 바보 아니야? 나는 비로소 내가 바보천치라는 걸 절감했다. 후회막급이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나는 선배에게 절반의 성공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신은 기다리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실패한 게 아니니까.
이윽고 아파트 앞에 도착한 나는 힘껏 초인종을 눌렀다. 이 집이 이제부터 내가 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자 색이 바랜 현관조차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자 나는 다시 초인종을 힘차게 눌렀다. 몇 번이나 눌렀을까. 마침내 안에서 인기척이 조그맣게 들렸다. 누구, 누구세요? 나는 맥이 풀린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누군 누구예요, 송주희지요. 이제부터 오빠하고 평생을 같이 살 여자. 나는 그 말을 뱉고 혼자 그만 쿡, 웃고 말았다. 웃지 말아야 하는데도 웃음이 자꾸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소리가 마치 오래전에 예정되었던 일처럼 조금도 쑥스럽지 않았다. -「그는 일어날까?」 중에서

새잎이 돋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공원묘지 주변은 벌써 여름이 온 것 같았다. 때늦은 바람이 가끔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오는 계절은 막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산소로 올라가면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왜, 하필이면 이렇듯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이러다가 더 늙으면 혼자 걸어서 찾아올 수도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손에 삽과 음식 꾸러미를 든 남편은 앞장서서 올라가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를 흔들거리며 걷는 남편의 모습이 마치 잘 마른 삭정이 같았다.
산소는 변한 게 없었다. 작년 가을에 왔을 때 양쪽 화병에 꽂아두었던 흰 국화가 마르고 시든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는 것뿐, 봉분도 비석도 상석도 모두 물로 씻은 듯 깨끗했다. 한숨을 길게 토해낸 나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주차장에는 검은색 승용차와 흰색 승용차가 한 대, 그리고 빈 트럭이 한 대 누워있을 뿐 조용했다. 주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산소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잡초를 뽑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서는 그러나 초조한 빛 따위는 엿볼 수가 없었다.
주영이가 올까?
글쎄 기대하지 말라니까. -「길과 길」 중에서

딸이 오겠다는 연락을 할 적마다 나는 가슴이 뛰곤 하였다. 객지에 나가 있는 딸자식이 다녀가겠다고 하면 응당 반가워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았다. 왜, 또 무슨 일 때문에 온다는 걸까, 불길한 예감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상은 딸이 아파트 문을 들어설 때 이미 적중한 셈이었다. 딸은 숨넘어가지 않으니까 좀 앉아서 차근차근 얘기하라고 일렀으나 내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항상 하던 대로 그날도 본론부터 꺼냈다.
나, 이번에 결혼하기로 했어. 며칠 뒤에 인사시키러 그 사람 데리고 올 테니까 준비 좀 해줘. 보통 사람 아니니까 은미랑 아빠한테도 단단히 일러주고……. -「든든한 집」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수남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국학대학 국문과 졸업작품집으로 『분실 시대』 『타성의 새』 『별은 한낮에 빛나지 않는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시계탑이 있는 풍경』 『길에서 길을 보다』 『앉지 못하는 새』 『아주 이상한 가출기』 『생명의 기원』 『개들의 전쟁』 장편 『행복아파트 사람들』시집으로 『병상 일기』 『너, 지금 어디 있니?』 『희망 사항』 등과 산문집 『시 한 잔의 추억(1)(2)』, 글짓기 책으로 『정수남 선생과 함께 떠나는 365일 글짓기 여행(1)(2)』 등 20여 권이 있다.자유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경기도 문학상, 이범선 문학상, 시선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현재 (사)한국소설가협회 이사. 고양작가회의 고문, 창작21작가회 고문 등을 맡고 있으며, 파주에서 ‘정수남 문학 공작소’를 운영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목차

그는 일어날까? / 7
길과 길 / 53
든든한 집 / 81
수수께끼 / 117
정상청은 죽었다 / 149
미혹 / 191
부끄럽지 않은 사랑 / 219
서쪽 하늘, 붉은 노을 / 255
잃어버린 시간 / 281

해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짝사랑 _ 임철균 / 327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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