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한 이래 SF, 호러, 미스터리, 만화, 에세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해 온 작가 전혜진이 13년 전 네이버 <오늘의 문학>을 통해 발표한 후 단행본 『홍등의 골목』에 수록했던 ‘이시나’ 시리즈를 개작과 신작을 더해 처음으로 완결된 형태로 선보인다. 외계 문명 슈슬리사가 지구에 도착한 후, 지구는 진화 가속 기술 아래 새로운 질서로 재편된다. 전쟁은 사라지고 기아와 환경파괴도 제어할 수 있는 사회. 하지만 인간의 출생과 사회질서는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진화 가속 기술을 통해 인간을 여러 세대에 거쳐 진화시킨 후 진보한 생명체로 만들고자 하는 슈슬리사의 통제 속에서, 희박한 확률의 자연 출산을 통해 태어난 이사나는 이 시대의 이질적 존재로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이사나를 둘러싼 사회 속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이 연작은 진화 이후의 세계를 조망한다.“외계인이 우리를 어떻게 한다고 치면, 우리처럼 잔병만 많은 출판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지질하게라도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슈슬리사는 고용을 보장하고 일자리를 확충하며, 사람이 사람다운 삶과 여가를 누릴 수 있을 만큼의 급여를 제공하고, 노동 시간을 줄이는 한편, 아이나 가족을 돌보거나 무언가를 연구할 수 있도록 충분한 탄력성을 부여했다. 공부할 마음이 있다면 누구라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안정되고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졌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늙고 쇠약해진 뒤에도 고된 노동으로 아슬아슬하게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복지 정책도 제공했다. 노인들을 보호하고 어린이들을 지원했다. 의무 교육도 전 지구적인 사업이 되었다. 점진적으로 세금을 조정했고, 부의 재분배라는 오랜 이상이 마침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었다.
“세금을 거두거나 자원을 약탈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구인을 발전시키기 위해 온 겁니까. 저는, 대체 당신들이 무엇을 위해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우리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라나요?”필라투사는, 푸른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고, 당신들에게서 무언가를 앗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것뿐입니다.”“진화라고요?”“당신들 지구인뿐 아니라, 이 우주의 모든 지적 생명체들이 함께 진화하고 도약을 이루어 내는 것.”“그러니까 우리를, 소위 ‘문명 개화’하기 위해 왔다는 말입니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전혜진
SF와 스릴러, 사회파 호러 작가다. 2007년 라이트노벨 『월하의 동사무소』 로 데뷔한 이래 이야기와 기록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써왔다. 소설 『달의 뒷면을 걷다』, 『족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 『마리 이야기』, 『바늘 끝에 사람이』, 『280일』, 『아틀란티스 소녀』, 논픽션 『규방의 미친 여자들』,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책숲 작은 집 창가에』, 『김밥천국 가는 날』 등과 다양한 앤솔러지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