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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놓고
그루 | 부모님 | 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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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전태련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놓고』(도서출판 그루)를 냈다. 「띄어쓰기」, 「마사이마라 아까시나무」, 「강물도 그리움이 깊으면」, 「길은 창을 가진다」, 「사막은 밤에도 별빛으로 운다」, 「엄마의 화단」, 「죽은 시들의 세상」 등 세 번째 시집 『붉은, 그리고 흰』 이후의 시 60여 편을 실었다. 유려한 감성적 언어와 겸허한 사유로 더 나은 삶을 한결같이 꿈꾸고 지향하며, 세상살이의 온전한 인간관계와 그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한다. 특히 자연에 따르고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는 깨달음과 믿음을 가치관의 중심과 가장 높은 곳에 두면서 영성靈性으로 나아가는 도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출판사 리뷰

겸허한 사유에서 영성으로
순응, 깨달음, 믿음 일깨워


전태련은 유려한 감성적 언어와 조신하고 겸허한 사유로 더 나은 삶을 한결같이 꿈꾸고 지향하는 시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살이의 온전한 인간관계와 그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띄어쓰기와 절제, 배려와 여지가 주요 덕목이며 염치와 지혜가 따라야 한다고 일깨우기도 한다.
자기성찰과 자성으로 귀결되는 그의 시편들은 다채로운 빛깔과 무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삶의 파토스와 정신적인 목마름, 세월이 안겨주는 무상감을 뛰어넘으려는 완곡한 길 트기에 주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자연에 따르고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는 깨달음과 믿음을 가치관의 중심과 가장 높은 곳에 두면서 영성靈性으로 나아가는 도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웃 사람에 대해 각별하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와 ‘여지’가 필요하다고 일깨운다. 또한 있을 곳에 함께 있어야 그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상에 둘도 없을 꽃’을 피우고, 서로의 마음이 석류알같이 저절로 붉게 익는다는 사실도 환기한다. ‘여지’와 ‘여유’에 대해서는 ‘그냥’이라는 말의 상징적 의미를 떠올려 보이는 「그냥」이라는 시에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그냥…’
전화했다 말하면 화를 내던 사람이 있었다
 
노을 같은 마음이 ‘그냥’ 속에
들어 있는 줄도 모르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 있었지
‘그냥’ 안에 갇혀있던 그 많은 망설임이
수십 번 애끓던 그리움이
속절없이 뭉개지던 그때

노란 불빛 지키던 안개꽃 한숨이
무지갯빛으로 떴다 진 별이
‘그냥’ 안에 피고 진 줄도 모르는
보고 싶단 말보다 더 붉은 꽃을 피우는
‘그냥’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먼 그대
—「그냥」 전문

가장 가깝고 싶은 사람(그대)을 향한 시인의 말 ‘그냥’은 다의성을 지닌, 말하지 않는 말의 공간(여지)이다. 그 공간에는 “노을 같은 마음”, “많은 망설임”, “수십 번 애끓던 그리움”과 “보고 싶단 말보다 더 붉은 꽃을 피우는” 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 놓고」는 ‘그대’(가장 가깝고 싶은 사람)를 향해서는 완곡한 표현을 거쳐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하나가 되고 싶은’ 심경을 “뜬금없이 오지 말고/오려거든 이인칭으로 오시라”고 하다가도 “일인칭으로 오시라”고 비약하는 염원을 간절하게 그려 보인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조금씩 다가온다면
​거기, 길이 꺾인 골목 그 너머 내가 서 있으리니
모퉁이를 도는 마음까지 그대가 가닿을 수 있다면
그곳에서 일인칭으로 기다리는 나를 만나게 될 거라는
​투명한 햇빛 그물 감치는
싱싱한 잎맥으로 살아나는 푸른 날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의 씨줄과 날줄을 짜 올릴 거라는
​ 
그러니, 오시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 자리까지
그대가 올 수 있다면
일인칭으로 오시라
—「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놓고」 부분

시인은 우리 삶과 관계를 돌아보게 일깨웠던 존재인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그대’가 조금씩 다가온다면 자신은 길이 꺾인 골목 그 너머에 일인칭(나)으로 서 있겠다고 한다. ‘너’가 ‘나’와 하나(일인칭)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일인칭으로 오시라”고 터놓기에 이르는 그야말로 간절한 기다림이다. 이 시는 적당한 거리, 여지, 띄어쓰기라는 덕목을 포용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사랑을 소망하는 최상의 인간관계를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일련의 시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역경을 이겨내려는 방법 찾기로서의 지혜와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며, 주어진 여건에 따르려는 순응의 마음가짐만은 완곡하게 견지한다.

역경은
나무도 낮은 포복으로 자라게 한다 

너무 높이 올랐나? 
황매산 정상 부근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라는 소나무  

하늘이 좀 더 가까이 내려와 있는 곳
차마 쳐다볼 수 없어
엎드려 자란다
올라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을
너무 높이 오른 걸 몰랐다

상처를 덜 받으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가슴에 바짝 붙여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가다 보면
어떤 끝 간 데까지 간 자만이 맛보는
그런 평화가 온다는 걸
나무도 아는 걸까
뿌리를 걱정하며 낮은 포복으로
숨죽여 살아간다

더 이상 엎드릴 데가 없다
—「끝 간 데 서다」 전문

황매산 정상 부근의 바위 틈새에 뿌리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역경 속에서 낮은 포복으로 숨죽여 살아간다는 사실에 천착하는 이 시에서 기실은 그 소나무에 빗대어 절제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쩔 수 없이 주어져 버린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의 지혜와 겸허한 자세에 대해서도 일깨운다.
빛깔은 다르지만 「능소화 유감」도 무절제의 사랑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다. 아무 담장이나 거침없이 넘나드는 능소화에 빗대어 뿌리째 담장을 건너갈 수도 없는 한 남자의 무절제한 사랑 행각과 그로 인한 한 여자의 대책도 대안도 없는 반평생의 가슴앓이와 불면不眠, 저지른 사달들의 뒤치다꺼리, 그 긴 여운 몸살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반복되는 “늙지도 철들지도 않는” 몰염치를 희화적戱畵的으로 그리고 있다. 사랑에는 염치와 절제,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새기게 하는 것으로 읽힌다.
시인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법에 대해서도 지혜의 눈을 뜬다. 「마사이마라 아까시나무」는 아카시나무에서 시선을 가까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면서는 “이웃집 그도 내 곁의 그녀도 자신의 약함 때문에/살기 위해 가시를 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더 나아가 “세상엔 내가 미처 알 수 없는/그만의 마사이마라 아카시나무 한 그루쯤/누구나 키우고 있다”는 데로 보편적인 생존 방식으로 시선을 가져가기도 한다.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늘 멀리할 수 없이 밀접한 관계에 놓이는 그림자와의 사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 관계를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리얼리티라는 보편적인 차원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림자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붙잡힌 ‘집착의 공포’이기도 하고, 자신의 어두운 자아로 샴쌍둥이 같은 존재이며, 이 세상의 누구나 공유하게 되는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납작한 모습의 그림자의 형상을 거느리고 살 수밖에 없다는 숙명宿命을 비껴설 수는 없다는 순응과 관용적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염치는 시인이 소중하게 받드는 덕목 중의 하나이며,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거나 본래의 길은 잃고 떠도는 사람들의 덧없는 삶에 대해서는 비판해 마지않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시인에게는 겸허한 자기성찰과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이를 일깨우고 받쳐주는 지렛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초월을 향한 영성에의 길 트기로 나아가게 한다.

거리에 나다니기 불편한 요즘
집을 짓다 짓다 이제는 동굴까지 파고 들어앉는다
각자의 동굴에서 사이버 집 짓고 
얼굴 없는 사람들과 수화도 아닌 손 대화를 하다가
사이버몽에 빠져 비몽사몽
AI인지 자신인지 

입을 틀어막고 
외로 외로 간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현대판 장자몽」 부분

이 시는 현대인들이 사이버 세계에 빠져드는 양상을 동굴까지 파고 들어앉아 비몽사몽과도 같은 사이버몽에 빠져 자신인지 AI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외로 외로 간다”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현대판 장자몽莊子夢’이라고 격조 높은 장자몽마저 비하해 놓는다.
하지만 이같이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시인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기성찰로 귀결되는 시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은 바이러스에도 맥을 못 추는 죄 많은 인간, 나는/짐짓 윗전인 양 피운 거드름이 부끄러워/입을 틀어막는다”(「신 홍길동전」)든가 기계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비정하고 단절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는 어디에 있는가/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착한 사마리아인처럼」)라고 성서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처럼 살겠다는 마음자리를 암시해 보이는 대목은 주목해야 한다. 이 같은 자성은 「거울」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까지 대동한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참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같을뿐더러 처음 볼 때부터 낯설었으며, 자신을 “자신의 얼굴만 영원히 볼 수 없는/가엾은 고등동물”이라는 자괴감과 자책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자괴감에 함몰되지 않고 자책에서 초극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가톨릭신자인 그에게 이 의지는 “영원을 사는 신의 영역에 한 발을 빠트린/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일으키는//내 마음속 빅뱅”(「빅뱅」)이라는 우주의 대폭발과도 같은 마음속의 체험이 추동했을는지 모른다. ‘때는 오후 네시쯤이었다’라는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오후 네 시」는 안드레아 사도가 예수를 만났던 시간에 초점을 맞춰 그 시간이 “어머니 자궁 같은 시간”이며 “영혼이 영원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노래한다. 정신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좀비나 수인들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 다니는 ‘두 시와 세 시 사이’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오후 네 시는 등허리 따뜻해지는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 같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어 뒤돌아봐지며, 일생을 저당 잡히고 싶어질 뿐 아니라 영혼이 영원을 만나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영성과 그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전태련의 시에는 ‘어머니’와 ‘강’이 적잖이 등장하며, 어머니와 강이 삶을 조신하게 성찰하게 해 여러 가지 빛깔과 무늬로 변주되게 한다. 「엄마의 화단」은 어머니의 꽃에 얽힌 소망을 곡진하게 부각시킨다.

허리가 꺾어지도록 가꾼 그녀의 꽃들
눈 감고 갈 수 없이 아렸던 그녀의 딸들
그녀는 죽어서도 자신의 화단을 돌보고
—「엄마의 화단」 부분

오죽하면 어머니가 죽어서도 자신의 화단을 돌보고 눈 감고 갈 수 없이 아릴 것이라고 하겠는가. 더구나 평소 어머니는 딸들도, 꽃들도 허리가 꺾어지도록 가꾸고 키우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기희생으로 일관했던 어머니인데도 같은 길의 대물림이라는 그 ‘주술呪術’을 피하고 싶었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시인은 세월이 흐르고 나니 “엄마 모습을 한 내가 보인다”는 구절은 생애의 막바지에 다다른 어머니를 “그믐으로 향해 가는 달의 왼쪽 등허리”(「하현달」)라고 하현달에 비유하면서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흐릿한,/자꾸 서쪽으로 기우는 몸/고요하다/그 고요로 온 하늘이 장엄하다”(같은 시)고 한 대목과 함께 절절한 짝을 이룬다. 그 무상감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그 섭리를 깨닫고 순응해 기쁨(위안慰安)을 얻으려는 심경은 「어머니의 코헬렛」에서

나도 뭔가 이 생生에서 애석한 그 무엇이 있어
뭔가를 빼앗긴 듯 허망하게 울고 있는
내 어린 영혼이 있는 고향 빈집으로 찾아가
같이 울다 오는지 모르겠다

어느 여름, 당신이 허망하게 앉아 있던
그 대청마루에 당신 닮은 얼굴을 하고 앉아 묻는다
한 생에 건진 건 십자가의 그분
그것이 온 생을 가로질러 걸러진 금이었다는 어머니
이생 건너 그곳에선 지금 좀 재미지는지요
—「어머니의 코헬렛」 부분

라는 시구들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는 꽃보다도 가치관의 중심과 가장 높은 곳에는 어머니도 자신도 ‘한 생에 건진 건 십자가의 그분(예수 그리스도)’이 있으며, ‘온 생을 가로질러 걸러진 금’이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다. 마지막 행 “이생 건너 그곳에선 지금 좀 재미지는지요”라는 구절에는 이 지상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어머니의 천상복天上福을 기구하는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인에게 강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강을 끼고 있는 고향 마을, 어머니가 겹쳐 다가오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시인은 흐르고, 흐르면서 곡절도 겪으며, 지우기도 하는 강물을 자신의 삶과 겹쳐 들여다보면서 감정과 사랑마저 흘러야 한다는 너그러운 순응의 서사를 펴 보이기에 이른다.

물은 흘러야 하고
시간은 가야 하고
흐르지 않는 바람은 이미 바람이 아니듯
흐르지 못한 구름이 땅에 이마를 짓찧듯
흐르지 않는 물 고인 물은 무서워
<중략>
흐르다 보면 바위에 부딪혀 깨지기도 하고
어딘가 진창에 처박히기도 하지만
흐르면서 지워가는 것이라고
<중략>
어제의 감정들은 이미 흘러간 물결이라고
강물처럼 우린 이만큼 흘러왔다고
세월의 강물이 너와 나 옆구리 사이를 무수히 흘렀다고
흐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해 두자
—「강물은 흘러야 한다」 부분

이 같은 마음자리에서 시인은 너그럽게 “호수에서 함께 여울지던 물결/다른 개울로 갈라져/저 너머 멀리 흐르는 그대,/이름 한 번 부르는 것으로/오늘의 일용할 양식 삼는다”(「우리 서로 강물이기를」)는 깨달음에 다다르며, 그 사랑에 대해 “흙탕물 맑은 물/흐르고 흐르다 보면//어느 먼 훗날/숱한 물고기 떼 키우는/크고 작은 배들을 띄우는/한바다에 가닿으리”(같은 시)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미련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일까. 「강물에 하늘이 들어올 때」에서 “내 맘의 강물이 출렁인다/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에/하늘이 들어온다”고 해도 잘게 쪼개지고 부서지며 구겨진다고 한다. 하늘이 굽어보며 자신을 다 주려 기다려도 강물에게 조금씩 자신을 먹일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우리 서로 강물이기를」과 「어머니의 코헬렛」은 하늘을 따르고 받들며 지향하는 전태련 시인의 정신적, 영성적 극점極點을 시사하는 시편들이 아닐 수 없다.

그대,
 
삼월에 오는 눈처럼 뜬금없이 오지 말고
오려거든 이인칭으로 오시라
무리에 섞여 삼인칭으로 오는 건
삼월에 내리는 눈만큼 객관적인 것을
성가심만 보태는 것

눈빛으로만 피우는 눈꽃은
허공중에 자취를 모르고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조금씩 다가온다면
​거기, 길이 꺾인 골목 그 너머 내가 서 있으리니
모퉁이를 도는 마음까지 그대가 가닿을 수 있다면
그곳에서 일인칭으로 기다리는 나를 만나게 될 거라는
​투명한 햇빛 그물 감치는
싱싱한 잎맥으로 살아나는 푸른 날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의 씨줄과 날줄을 짜 올릴 거라는
​ 
그러니, 오시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 자리까지
그대가 올 수 있다면
일인칭으로 오시라
---「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놓고」 전문

어쩌라고
그 어려운 것을

너무 떨어져 있으면 소원하고
붙어 있으면 부담이 되는
그렇구나
너와 나 사이
그 '적당히'라는 걸 천하에  믿을 수 없는
마음에 맡겨 두었으니
정확한 띄어쓰기 그게 안 되는 것을

그러니까 그게
적당한 거리에서 너를 보면
그 간격 사이 지울 수 없는 의미 돋아나고
어쩌면 향기조차 품을 수 있다고
그러니, 그 거리라는 걸 한번 잘 재어 보자고
​너와 나 사이
 
있을 곳에 함께 있고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는 그런,
맞춤법에 맞는 띄어쓰기 한번 잘해 보자고
그 거리에서 세상에 둘도 없을 꽃 피워
붉게 익어 저절로 열어젖힌 석류알 같은 마음도 익혀보자고
말하고 싶은
환장하게 아름다운 가을날

평생 해도 어긋나는 그것
사람 사이 띄어쓰기 
---「띄어쓰기」 전문

내 맘의 강물이 출렁인다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에
하늘이 들어온다

뒤척이는 강물에 하늘이 들어오면
하늘도 잘게 쪼개진 채 흐른다

하늘이 부서지고 구겨지는 건 하늘 탓이 아니다
그렇다고 흘러야 하는 강물 탓도 아니다

강물에 하늘이 온전한 모습으로 내려온 적 있었던가

강을 굽어보며 자신을 다 주려 기다린 하늘인데
잠시 잠깐 흐름을 멈출 수 없는 강

강물이 호수가 아닌 바에야
하늘도 조금씩 잘게 부서지고 구겨진 채
자신을 줄 수밖에

강이 멈추기 위해 자신을 얼려 보아도
거기에 하늘을 담을 수는 없다

쪼개지고 주름지며 흐르는 강물에게
하늘은 조금씩 자신을 먹인다

언젠가 강물이 흐름을 멈출 때
하늘이 온전히 강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될 것이다

그때
강은 더 이상 강물이 아닐 것이다
---「강물에 하늘이 들어올 때」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전태련
경북 칠곡 가실 출생, 2003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바람의 발자국』, 『빵 굽는 시간』, 『붉은, 그리고 흰』 등 세 권의 시집을 냈으며,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인인隣人 13/그리고 거기, 모퉁이를 걸어놓고 14/그냥 16/마사이마라 아까시나무 17/띄어쓰기 18/끝 간 데 서다 20/일상의 돌연변이 22/존 말코비치 되기 23/제목 없이 24/봄, 잠깐 보다 26/그림자 28/능소화 유감 30/유월 31/숙이 32/여지 34/


강물도 그리움이 깊으면 37/강물이 부드러움을 버릴 때 38/강이 있는 마을 40/강물은 흘러야 한다 42/우리 서로 강물이기를 44/강물에 하늘이 들어올 때 46/삶, 유월이어라 48/낭비되고 있는 봄 50/누가 내일을 만난 적 있나? 52/신홍길동전 54/모르는 일 56/두 시와 세 시 사이 57/길은 창을 가진다 58/착한 사마리아인처럼 60/거울 62/바람의 집 64/


단풍 67/사막은 밤에 별빛으로 운다 68/빅뱅 70/하현달 71/꽃이 피었다 72/백 년 동안 읽는 책 74/어머니의 코헬렛 76/십 년 만에 피는 꽃 77/썸 타다 78/오후 네 시 80/엄마의 화단 82/밤에 쓰는 편지 84/처서 지난 즈음 85/그때 꽃이 피었는가 86/현대판 장자몽 88/소나무 빌런 90/


만추 93/그리움이 마른 풍경 94/늙지 않는 기차 소리 96/죽은 시詩들의 세상 97/푸른 신호등 98/겨울나무 99/바람의 넋 100/11월의 나무 101/냉장고는 억울하다 102/‘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104/이월에는 106/월아천 107/정처 108/가을 109/슬도瑟島의 바람 110/바위에 새긴 시 111

해설/겸허한 사유에서 영성으로---이태수(시인)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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