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소통’과 ‘죽음’이란 화두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천착해온 작가 정용준이 신작 산문집 『밑줄과 생각』을 선보인다. 2024년 오영수문학상과 젊은예술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대상에 대한 집요함, 세계에 대한 균형 감각, 정직함, 서사적 밀도, 뚜렷한 문제의식 등을 탁월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세 권의 소설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 두 권의 중편소설을 펴내고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뚜렷한 문학적 궤적을 남겨왔다.『밑줄과 생각』은 2009년 데뷔 후 15년간 소설의 안팎에서 활발하고도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온 작가 정용준이 “읽기와 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에 관해 적어 내려간 기록들의 모음으로, 문예지, 일간지, 단행본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산문 37편이 수록되어 있다. 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이라는 뜻의 ‘산문’이란 단어에 걸맞게 주제와 내용, 형식과 분량이 모두 일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고 다채롭다. 때론 자기만의 내밀한 고백이 담긴 일기 같고, 때론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을 담은 연서 같으며, 한편으로는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와 같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소설적인’ 글들이다.


깊은 밤 어둠과 고요에 젖는 것을 즐겼다. 심심하고 고독하기까지 한 그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을 불안이 아닌 평안으로 감각했다. 사느라 분주했고 관계 속에 지쳤던 나를 들여다보며 복잡한 마음을 살폈다. 날카롭게 일어선 감정의 결을 조심스럽게 더듬어봤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붐비는지, 내 감정은 무엇으로 인해 그토록 뜨거워졌는지, 찬찬히 헤아려봤다. 그러다 찾아오는 약간의 멜랑콜리도 나쁘지 않았다. _「스물셋의 올빼미」
목소리는 나에게 나의 많은 비밀을 알려줬다. 목소리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비밀을 탐하고 말을 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랑을 말할 때 사실을 말하는 이가 싫다. 팩트를 정의라고 믿는 이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일기와 편지를 미워하는 이들이 밉다. 소설책으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과 이야기를 거짓과 가짜라고 가르쳤던 화학 선생이 싫다. 번호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책을 읽으라고 했던, 읽지 못하는 나를 죽어도 포기하지 않던 송곳니가 뾰족했던 국어 선생이 싫다. _ 「내게 없는 내 목소리」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소나기마을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