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열다섯 살에 중2병 대신 보드게임병에 걸린 후 영혼의 일부가 보드게임에 흡수되어 각종 보드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열혈 보드게이머의 초대장이다. 보드게임은 매일 하는 달리기와 비슷하다고 믿으며(기록과 상관없이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며 그 충일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친구는 소중하고 보드게임 같이 하는 친구는 ‘심히’ 소중하다고 여기는 저자는 보드게임이 구한 자신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이제 “보드게임이 당신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하여 들려준다. “게임은 진짜 인생을 누리도록 도와준다. 게임 속 경험이나 성취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아니라서 명료하고 매혹적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마법이 힘을 발한다. 다양한 게임이 삶을 다양하게 채색한다.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게임은 그 자리에 남아 우리를 배웅한다. ‘마치 내가 그간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길을 걸었든, 우리가 어떤 다툼을 했든, 모든 일들은 세월에 마모되고 윤색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만이 이 자리에 남아 빛나고 있다고 말하듯이.’”나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보드게임이 (기본적으로는) 타인과 직접 교류해야 하는 종류의 놀이라 그렇다. 보드게임을 좋아하려면 타인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약속을 잡고, 게임을 고르고, 여가 시간을 소모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뜻을 모은다. 게임 안에서는 경쟁하더라도 총체적으로는 하나의 합의를 이룬다. 사람을 만난다는 수고를 들일 만한 놀이를 하자는 합의다. 홀로 즐길 만한 매체와 콘텐츠가 넘쳐 나는 지금 시대에 굳이 보드게임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혼자서는 누리기 힘든 밀도 높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즐기려면 어느 정도는 타인에게 우호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믿기에는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영혼의 일부는 보드게임에 흡수되었다. 보드게임은 직업과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내게는 독서보다 더 순수한 취미다. 더 심각하게 중독됐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독서와 보드게임은 내게 뿌리가 같다. 둘 다 타인이 품은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만남은 때때로 고충을 낳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즐거움과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두 번째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그렇다면 보드게임이 어떻게 즐겁고 어떻게 의미가 있는지 쓰고 싶었다. 더불어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지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꿔 말하면, 보드게임이 당신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도.
처음 ‘훌라’를 배웠을 때 생각이 난다. 초등학생 시절에 참가한 교회 여름 수련회 날이었다. 잠이 안 와서 숙소 지하의 휴게실에 내려갔더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3명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판돈은 물이었다. 점수를 잃은 만큼 작은 물병을 가득 채워 물을 마셔야 했다. 그날 대판 깨진 사람은 한 번에 7병을 마셨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건전한 놀이판이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초등학생 여자애를 기꺼이 게임에 끼워주었다. 같이 놀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하는 듯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것”은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심완선
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 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열다섯 살에 중2병 대신 보드게임병에 걸렸다.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우리는 SF를 좋아해』, 『SF는 정말 끝내주는데』 등을 썼고,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취미가』 등을 함께 썼다. 『아무튼, 보드게임』으로 더 많은 게임 친구를 확보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