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격랑의 시대를 건너온 ‘이름 없는 자’들의 삶을 기록한 정강철의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출간되었다. 1980년 5·18과 군부독재, 참교육 운동의 한복판을 지나온 세대의 기억을 더듬으며, 기억에 의존한 글쓰기의 한계를 고백한다.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시대를 통과해온 이들의 시간이 절제된 언어로 되살아난다.
1부 ‘빗물의 온도, 문장의 습도’는 유년과 청춘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2부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은 군 시절과 오월 광주의 체험을, 3부 ‘일탈도 힘이 된다’는 37년간 국어교사로 살아온 교육 현장의 성찰을 담았다. 오월의 경험은 삶의 방향타이자 등불로 남아,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을 비춘다.
정강철은 1987년 오월문학상,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하며 등단했다. 『블라인드 스쿨』, 『신·열하일기』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목포문학상 수상과 우수문학도서 선정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산문집은 그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질문을 응축한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격랑의 시대를 함께 건너온 세대
‘이름 없는 자’들의 기록
“기억나지 않는 것들까지 쓰지 못했다. 감출 수 없는 진실이나 소중했던 가치는 오히려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묻혀 있을지 모르겠다.”(「책머리」)
중견 소설가 정강철 씨가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문학들 刊)을 펴냈다.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한계를 고백하며 진실이나 가치는 오히려 기억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에는 여러 복선이 깔려 있다.
고교 3학년 때 1980년 5·18을 겪었고, 군부독재와 싸우며 대학을 다녔으며, 참교육 운동의 한복판에 서야 했던 세대. 하지만 중심에 있지 못하고 늘 주변을 떠돌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 이 책에는 격랑의 시대를 함께 건너왔으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온 자들의 삶이 절제된 언어와 진지한 사유로 빛을 내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격랑의 현대사 속으로 던져졌던 우리 세대가, 시대의 강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되돌아본다.”(정채웅 변호사,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 대표)
“사연이 세태를 향할 때 그의 문장은 추상처럼 엄하다. 그 사연이 자신을 향할 때 그는 냉정할 정도로 자조적이고 자성적이다.”(김형중 문학평론가, 조선대 교수)
이 책의 1부 ‘빗물의 온도, 문장의 습도’는 첫 경험처럼 인상적인 기억들로 엮였다.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해 친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나섰다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비박(Biwak)한 이야기, 191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 멈추어져 있는 하얼빈역의 시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어머니의 손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왔던 배냇저고리에 대한 기억, 형과 누나 들의 글 쓰는 재주를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흉내 내었던 추억 등이 눈물자국처럼 남아 있다.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있나. 그럴 때마다 들었던 회의는 깊었다. 글은 왜 쓰는가, 존재의 서슬 퍼런 확인이라는 팻말을 걸었다면 그거야 자신의 작업을 미화시킬 수 있는 방편일 수는 있겠지만 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가 무슨 업보나 운명쯤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치장이기엔, 그간의 나의 세월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긍정과 타협보다는 투쟁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소설 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취미생활도 거두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아왔나?
- 「동녘이 어떻게 붉어졌는지」 부분
2부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은 군대 시절에 만났던 경기도 안양 출신의 선임병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선임병의 친구는 시를 쓰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기형도 시인이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다”던 박인환의 시도 머무르고 있다. 한자 외워 쓰기를 못해 아버지께 혼쭐이 났던 기억. 엄정한 한자 교육이었지만 그것이 평생에 걸쳐 먹고 살 수 있는 자산이 될 줄, 그 시절의 저자는 몰랐다. 이제는 “옛날처럼 무섭지 않은 아버지가 슬프”고 “어머니의 굽은 등허리가 가엽”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나 한사코 잊고 싶은 기억도 있다. 벚꽃 이파리 날리던 봄날, 저자는 광주서석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몽매한 나이였으나 세상이 뒤숭숭한 것은 알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구와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정읍 내장산으로 놀러를 갔었다. 그리고 해 질 무렵 광주로 돌아왔는데, 멀리 군용트럭과 군인들이 보였다. 5월 18일이었다. 그날부터 광주는 소문으로 감금된 도시가 되었다.
오월 광주로부터 자유로운 자 누구랴. 스물을 앞둔 고3 시절, 미완의 나이에 겪었던 오월의 경험이 평생을 이끌었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음울한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살아나는 오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모두 그랬다. 저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불편부당함을 거부하며 기득권과 맞서 싸웠다. 편안한 길은 외면하고 험지를 전전하며, 손해도 보고 불이익도 당하며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그랬어도 후회하지 않았을 삶을, 그해 오월이 가르쳐 주었다. 오월은 스승이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라. 오월은 등불이었고 정신이었으며 우리 삶의 방향타였다. 우리는 그렇게 오월을 보며 살아갈 것이다.
- 「봄날, 기억의 저편」 부분
저자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37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사실 또한 잊힐 수 없다. 3부 「일탈도 힘이 된다」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들의 봄소풍 이야기로 시작된다. 봄소풍 장소를 택함에 있어 담임 교사의 욕심과 아이들의 선호가 맞부딪힌다. “봄날의 산천에 속절없이 피어 있는 이팝나무꽃 이파리가 열아홉 살 청춘들 가슴을 넘보며 살포시 내려앉”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성취는 개척하는 사람의 몫이다. 날마다 쉽게 걸어 다니는 길은 처음부터 닦인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걷다 보니 길이 된 것이다. 남이 걷지 않은 길을 떠올려 보고,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큰일을 한다. 자신이 꾸는 꿈이 남과 다를수록 그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남들이 걷는 길을 벗어나는 것에는 일탈도 있다. 자제하고 속박하는 힘을 버리고 한 번쯤 일탈하고 싶은 충동을 깃발처럼 내걸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불치병으로 도지기 전에 일탈해 보는 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지난날 내가 썼던 장편소설 『블라인드 스쿨』에서 고3 학생 ‘신화’가 등장하는데, 주인공의 목소리인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나는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
- 「일탈도 힘이 된다」 부분
정강철 소설가는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987년 <오월문학상>에 「타히티의 신앙」,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암행」,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거인의 반쪽 귀」가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 줄곧 사회성 짙은 소재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왔다. 국내 최초로 중국 텐진 조선족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신·열하일기』를 발표했고, 무명 독립영화인의 애환을 담은 『외등은 작고 외롭다』를 《전남일보》에 연재했다. 한국문화예술위 3천만 원 현상공모 당선작 『블라인드 스쿨』을 통해 서로 다른 교육 주체의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날 교육 현실을 들여다봤으며, 「바다가 우는 시간」으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수양산 그늘』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고,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으로 출간한 『원교』에서는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 이광사의 비극적 삶과 치열한 예술혼을, 집요한 고증과 절제된 문장으로 살려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7년간 모국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강철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987년 <오월문학상>에 「타히티의 신앙」,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암행」,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거인의 반쪽 귀」가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 줄곧 사회성 짙은 소재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왔다. 국내 최초로 중국 텐진 조선족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신·열하일기』를 발표했고, 무명 독립영화인의 애환을 담은 『외등은 작고 외롭다』를 《전남일보》에 연재했다. 한국문화예술위 3천만 원 현상공모 당선작 『블라인드 스쿨』을 통해 서로 다른 교육 주체의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날 교육 현실을 들여다봤으며, 「바다가 우는 시간」으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수양산 그늘』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고,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으로 출간한 『원교』에서는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 이광사의 비극적 삶과 치열한 예술혼을, 집요한 고증과 절제된 문장으로 살려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7년간 모국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웠다.
목차
책머리에5
1부 빗물의 온도, 문장의 습도
낙백落魄한 친구와 잠을 자며11|봄꽃 피는 이유17|굿바이, 원교22
아픈 사람, 송은명27|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30
보이는 그림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의미35|삼키는 울음이 더 아프다40
배냇저고리45|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51|파출소 출입기 약사54
좋은 중독은 없다63|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의 방식67
동녘이 어떻게 붉어졌는지74|우리 안의 이방인82|세상사 풍선 같구나88
행복의 다른 이름95|사상을 가둘 감옥은 없다101|비 온다106
금호타이어111|죽어도 가기 싫은 곳116|운명이니까126
몹쓸, 의기투합131
2부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
블라인드에 감춰진 질투의 눈139|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147|첫잔153
극장전159|새해 아침에165|세상이 망가질수록 쓸 거리는 많다168
휴간일174|문학 동인 유감178|봄날, 기억의 저편183
부끄러움, 고백192|조르바처럼196|전업 작가, 박혜강202
미황사 가는 길211|소설 속 주인공에게217
실수투성이의 어수룩한 사람225|손에 잡히는, 오월 문학232
휴가 아닌 휴가236|신춘문예 당선 공식243|흔한 달걀찜 레시피249
공원 이발관253|산간에 뜨는 달 맞으러, 백제의 돌담을 나서다256
3부 일탈도 힘이 된다
봄 소풍263|만우절266|계절이 바뀌듯271
벚꽃 질 무렵276|봄날, 교실에서283|숙제 없는 세상292
벽해를 바라보며295|남과 여301|일탈도 힘이 된다307
수시 마감 날313|다짐317|좋은 아침, 이라니322
봄 편지328|빗속, 지리산에서334|야구가 시민을 위로하다338
장래 희망은 선생님345|레드 아일랜드358|교단 일기362
휴교령367|황토를 추억하다371|첫눈의 조건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