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한인 청년들은 왜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호주국립대학교 교수가 시대별로 추적한 청년들이 고국을 떠난 이유!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호주로 이민 간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 무슨 이유로 갔을까? 일제강점기인 조선 말기에 처음 호주로 떠난 존 코리아라는 한국인 청년이 있다. 그 이후 호주 장로교의 힘을 빌려 멜버른대학교로 수학하러 간 최초의 한인 유학생인 김호열이 있다. 이주 경로조차 찾기 힘들었던 그 시절, 이들은 왜 고국을 떠날 생각을 했는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가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저자이자 호주 로위연구소에서 이민정책실장을 거쳐 현재 재호한인을 연구 중인 호주국립대학교 송지영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초의 한인 이민자 존 코리아의 발굴부터 시작해 호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민 1세대부터 현재 워킹 홀리데이 중인 젊은 청년들까지 인터뷰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폭넓은 현장 연구를 정리한 이 책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9세기 말인 조선 후기부터 오늘날까지 근 1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가난, 독재, 차별, 교육 등 자기 자신 혹은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호주로 떠나 정착한 이들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엮었다.
《이민의 진화》는 최초의 한인 이민자 존 코리아를 찾아낸 연구부터,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난리 속에서 자의 혹은 타의로 나라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리고 세계여행 자유화와 호주와 체결한 워킹 홀리데이 등의 시대적 변화가 이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본다.
이민 연구에 있어 핵심은 바로 ‘배출 요인’과 ‘유입 요인’이다. 배출 요인은 왜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지, 자의 혹은 타의로 떠나게 만드는 부정적 요인을 말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가난과 식량 문제가 가장 큰 배출 요인이고, 지금은 차별, 경제적 한계, 교육 등이 주된 배출 요인이다. 유입 요인은 해당 국가로 유입하게 되는 긍정적 요소를 뜻한다. 근로 조건, 비전, 거주 및 자연 환경 등이 포함된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청년들이 느끼는 배출 요인과 유입 요인은 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민의 진화》는 호주 이민의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의미 있는 작업일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굴곡과 사연이 깊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종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기록이다.
호주 이민의 첫 번째 문을 연 선구자들
최초의 재호한인 존 코리아와
최초의 호주 한인 유학생 김호열호주 내 한인 사회 역사는 생각보다 꽤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재호한인을 연구 중인 송지영 교수팀이 발견한 ‘존 코리아’가 있었다. 1876년, 조선 말기는 특히 하층민에게 더욱 힘든 시기였다. 굶주림과 가난, 턱 밑까지 찾아오는 죽음에 늘 시달렸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절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존 코리아는 당시 호주의 골드러시를 노리고 뉴사우스웨일스주로 향했다. 하지만 소수민족이자 고작 17세에 불과했던 그가 이미 금광을 차지하고 있던 백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호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양털을 깎거나 선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03년에 광산권을 취득한 이후 존 코리아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가 61세가 된 해인 1920년에 결핵으로 애들레이드병원에 입원한 기록을 찾았다. 아마 광부로 오래 일하면서 병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입원 전후로 구세군이 운영하던 노동자 대상의 매우 저렴한 숙소에 머물렀다. 당시 병원 기록에는 존 코리아의 출생지가 ‘일본Japan’으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은 1910년에 주권을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출생지는 일본으로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존 코리아가 이탈리아인이 아닌 조선인임을 확신했다. (48쪽)
물론 존 코리아가 호주에 귀화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렸다는 행적을 현재로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와 그 연구팀이 그의 행적과 고문서를 뒤져 찾아낸 귀화증명서에 기재한 출신국을 비롯해 자신의 이름을 ‘코리아’로 지은 것을 보면, 그 나름대로 호주에 조선을 알리고자 하는 선구자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존 코리아 이후, 호주에 발을 디딘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멜버른대학교로 수학하러 간 최초의 유학생 김호열.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의 후원을 받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여권을 들고 호주에 입국한 김호열은 당시 유색인종을 배척하던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가치관을 세우려 노력했다. 특히 식민 지배라는 현실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그를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가 도왔다.
1921년, 한반도는 1919년부터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대된 3·1 독립운동을 2년째 이어가고 있었다. 지식인이자 교사 생활을 한 김호열이 당시 본인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입국신고서 국적과 인종 란에 당당히 ‘Corea’와 ‘Corean’이라고 표기했다. (62쪽)
저자는 김호열에 대해 연구를 ‘초국사적 연구’라고 말한다. ‘초국사’란 국가가 임의로 지정한 국경을 넘나드는 생각, 사물, 인간 및 관습에 관한 연구로, 국경 간 이동과 이주 자체만으로도 주요 연구 대상이 된다. 김호열의 사례를 통해 국경을 넘어서는 문화의 전달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는 이민과 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이렇게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타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한 것은 한인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진화를 만들어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존 코리아와 김호열이 호주로 향한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을 통해 본격적인 국가 간 수교가 이뤄지기 전부터 한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깊은 뿌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최초’라는 호칭이 붙은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본격적인 세계화가 불러온 흐름
청년이 향하는 곳을 알면
사회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1970년대 베트남 전쟁 이후 호주 내 백호주의가 공식적으로 철폐되면서 많은 이가 새로운 미래라는 희망을 안고 호주로 향했다. 당시 호주 이민성 장관이었던 알 그라스비는 아시아 국가를 순방하며 이민을 장려했는데, 한국은 호주가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호주 입국을 금지했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원하던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떠났다. 그중 호주에 불법체류 중인 사람도 많았는데, 곧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이 이뤄지면서 호주로 이민 가는 한국인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특히 영주권을 얻으면서 가족을 불러들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사슬 이민’ 형태로 호주 내 한인사회는 몸집을 불려나갔다.
세계화는 점점 막을 수 없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도 1990년대에 세계여행 자유화를 실시하면서 엘리트층의 조기 유학이 눈에 띄게 늘었다. 비단 호주뿐만 아니라 동일한 아시아 국가로 유학을 간 한인 청년들은 가난이나 굶주림 등의 이유가 아닌 더욱 다양하고 개인적인 이유로 2차 이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해외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같은 1980년대생으로 조기 유학을 경험한 혜린과 로제는 상반되는 결정을 했다. 혜린은 호주의 직장 문화가 마음에 들어 그곳에 정착했는데 반대로 로제는 소수민족 여성의 한계를 느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저자는 둘의 케이스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없으며 그저 본인이 겪고 느끼는 환경에 대한 판단이 이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호주와 체결한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다수의 한국 청년이 지금까지도 호주로 향하고 있다. 저자가 현장 조사를 하며 만나 인터뷰한 이들 중, 워홀 제도를 이용해 호주의 시골 마을인 밀두라에 있는 오렌지 농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남준은 영주권을 취득한 후 부동산을 사들여 호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다. 반면 아버지의 기술 이민 비자로 고등학생 때부터 호주 생활을 시작해 10년째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한 민지 같은 케이스도 있다.
20~40대는 가장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나이다. 학력과 경력, 외국어 실력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투자함과 동시에 최저임금과 연봉, 근로 시간과 여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150년 전, 존 코리아가 일자리를 찾아 호주까지 왔던 것처럼 지금도 수많은 한인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호주로 향한다. 양털을 깎으며 광부로 일했던 존 코리아와 달리, 현재 한인 청년의 직업군은 단순 노동인 농장부터 카페, 청소, 대학 교수까지 다양해졌다. (168쪽)
존 코리아와 남준, 그리고 민지 사이에는 150년이라는 세월이 있다. 그사이 이민을 가는 방법도 달라졌고 이유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세계화 이전에는 가난을 피하고 생계를 위한 생존 이주였다면 지금은 건강, 환경, 복지 등 ‘사람답게’, ‘나답게’,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요인을 중점에 둔 웰빙 이민으로 형태가 변했다. 20~40대 청년층은 경제력과 노동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다. 이 시기의 청년 이주는 사회의 발전을 예측하는 잣대가 된다. 청년이 유입되는 나라는 그만큼 다양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제공받아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발전해간다. 반대로 청년들이 떠나는 나라는 발전 동력을 잃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는 단순한 사회적 환경만을 이유로 이주와 이민을 결심하지 않는다. 저자는 호주 이민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앞으로 더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고, 어느 사회가 앞서갈지 알고 싶다면 청년들이 처한 환경과 문화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19세기 말부터 한반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로 나라를 잃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의 파병, 군부 독재를 거쳐 민주화운동으로 얻은 자유와 세계화로 빠른 발전을 이뤄냈다. 이 과정 속에서 국경을 넘었던 한인 청년들은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_ 〈머리말: 그들은 왜 국경을 넘었을까?〉 중
이주와 이민은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이주migration는 이민immigration보다 넓은 개념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을 뜻한다.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거나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단기 또는 계절 이주(특정 계절마다 특정 직업을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수확기에 추수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단기간 고용하는 형태)가 포함된다. 이민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영구적인 정착 또는 장기간 거주를 위한 이동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주와 이민을 연구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상이하다. 국제 이주 연구에 있어서는 국가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별 원인과 조건, 출입국 국경 관리, 비자의 종류 등을 보는 반면, 국제 이민 연구는 영구 정착이라는 목적 하에 현지에서의 적응, 시민권 획득, 인종차별 및 정체성 문제를 주로 다룬다. 이주와 이민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행해지는데, 이민의 경우는 일부 인도적 이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주자의 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된다고 볼 수 있다. _〈머리말: 그들은 왜 국경을 넘었을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