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으며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한 박설희 시인의 시세계는,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신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역사와 공동체,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세밀한 시적 언어로 엮어내고 있다. 시인은 한 생명이 떠나고 또 다른 생명이 오는 경계 위에서 우리 삶의 근원과 의미를 절묘하게 응시한다.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는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존재의 순환, 삶과 죽음의 교차, 그 사이를 머무는 간절함 등 인류 공동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박설희 시인은 침묵 속에서 다가오는 심장, ‘기척들’이란 표현을 통해 삶의 미세한 움직임과 자연의 소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내면의 고요와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의 초대를 건넨다.
출판사 리뷰
존재의 경계에서 건네는 초대장
일상과 사회, 역사적 맥락의 응답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으며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한 박설희 시인의 시세계는,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신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역사와 공동체,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세밀한 시적 언어로 엮어내고 있다. 시인은 한 생명이 떠나고 또 다른 생명이 오는 경계 위에서 우리 삶의 근원과 의미를 절묘하게 응시한다.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는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존재의 순환, 삶과 죽음의 교차, 그 사이를 머무는 간절함 등 인류 공동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박설희 시인은 침묵 속에서 다가오는 심장, ‘기척들’이란 표현을 통해 삶의 미세한 움직임과 자연의 소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내면의 고요와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의 초대를 건넨다.
박설희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와 밀도 높은 서정성에 있다. 시인은 일상과 자연, 가족을 언어의 재료로 삼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순간을 시적 공간으로 소환한다. 동시에 산문적인 흐름과 내레이션, 대화체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시적 언어를 완성한다. 이러한 특징은 시를 단순한 정서의 고백을 넘어 독자와의 내밀한 교감, 그리고 사유의 확장을 지향하게 한다.
시집 전체에 흐르는 정서 중 하나는 노동, 공동체, 역사적 상처 등 사회적·시대적 문제의식이다. 「법과 편」 「명령」 등에서는 1960~70년대 노동자와 민중의 삶, 그리고 전태일의 일기를 인용하는 등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발언과 연대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또한 「지바현 능소화」와 같이 한일 간의 역사, 억울하게 흘린 피의 기억, ‘이 자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에서 보이듯, 사회적 비극과 인간의 내면이 뚜렷하게 맞물려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와』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역사와 노동, 공동체와 자연을 넘나드는 입체적 시선으로 현대인의 깊은 내면을 어루만진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일상적 경험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의미, 사회적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독특한 이미지와 언어 실험, 그리고 공감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메시지는 각계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진창길을 헤쳐 너른 들판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합창
박설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농업적이고 생태학적 상상력도 이와 맞물려 있다. 일차적으로 박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하나인 “한강” “강물” 속에 “당뇨약”에 “중독된” “등 굽고/ 비늘이 흐물”한 “물고기가 늘어나고 있”(「물속의 사생활」)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시에 해발 “오백 미터, 천 미터, 천오백 미터”에서 자생하던 “구상나무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전 지구적인 기후 이상으로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수척해진 이유」)어진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그러면서 여기에 “너무 늦게 도착한” 깨달음의 “시간”일망정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전환할 “준비”(「늦게 도착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주장을 담아낸다.
박설희 시인의 시적 태반은 단연 ‘진창’이다. 과도한 물기로 질퍽질퍽해져 걷거나 활동하기에 불편한 땅과 같은 오늘의 현실이 그 시적 기반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우리는 평소 서로 우애하며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마치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泥田鬪狗)처럼 먹다 남은 뼈다귀 같은 사소한 이해관계 또는 생각의 차이 때문에 금세 돌변해 상대방을 증오하거나 죽기 살기로 서로 물어뜯기에 바쁘다. 격랑이 일어나기라도 할라치면 평소 잔잔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던 맑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진흙탕물이 수면으로 용솟음치듯이 언제든 진흙 벌 같은 시커먼 혼란과 갈등이 재현될 수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다.
구체적으로 박설희 시인에게 그런 ‘진창’은 스스로가 적당히 견디고 극복할 만큼의 시련과 고난을 주는 땅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떨어져 “헛돌고 있는 바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도랑”(「바퀴」)과 같은 속수무책의 망연자실한 현실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한번” 문 “닭꼬치” 먹이를 “끝까지 놓지 않는” “자라”처럼, 이른바 “수저를 입에 문 이후” 시작된 인간의 “뜨거”운 욕망과 탐욕이 “가장 나중까지 식지 않는”(「목」) 삶의 아수라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설희 시인은 이처럼 모든 시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렇다고 해도 쉽게 얻어질 리 만무한, 명실상부한 말과 실재 또는 이름과 자신의 본성과의 일치를 꿈꾸는 시의 길을 염탐하고 있다. 시인은 결코 만만치 않을 앞으로의 시적 장도를 예고해 “너른 들판에서 혼자 비와 우박을 온몸으로 맞”(「들판에서」)고 있는 채. 아니면 아마도 영원히 해결할 방도 없는 진창의 진실에 닿기 위해 “괄호를 열”었지만, “끝내” 그 “괄호를 닫지”(「끝내 괄호를 닫지 못하고」) 못한 채. “돌”과 “칼”을 “삼키”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들을 넉넉히 “다 견뎌”내고 말, “정말 무서운 사람”(「무서운 사람)」 박설희 시인에게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올해 첫물이에요”
비닐봉지에 꽁꽁 싸맨
감자 몇 알과 상추를 내민다
까맣게 그을린 손등과 얼굴로
비닐봉지를 푸는데
씨를 뿌리며 흥얼거린 노랫소리 들린다
잎과 줄기가 피어나리라는 부푼 가슴,
긴 열기 견디고 스며드는 어스름이 고여 있다
울컥,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첫물의 시간들
풋내나는 걸음걸이
두근거리는 심장
시디시어 입에 침이 고이는
떫고 까끌거리는
첫 입학, 첫사랑, 첫 키스, 첫 월급, 첫 출산
첫 죽음까지
「첫물」 부분
우리 집에 놀러 와
감자밭 가장자리를 지나
시냇물 돌징검다리 건너
조팝꽃 쪼르르 피어 있는 오솔길
혼자 오지 말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심심한 구름을 데려와
정처 없이 나풀거리는 나비
맑고 서늘한 새소리와 함께 와
사심私心은 두고 와
가볍게 가볍게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나
소나무 우거진 숲으로
백 걸음쯤 걸으면
네 키의 열 배나 되는 바위가 졸고 있지
「우리 집에 놀러 와」부분
성남 씨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안 보이는 눈을 껌벅거리며 순녀 씨가 귀를 세운다
소란 씨는 휠체어에서 뒤틀린 몸을 버티며 간신히 눈을 맞춘다
이동 차량이 안 잡힌 대준 씨는 줌 화면으로 얼굴을 보인다
시 창작 첫 수업
내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가지가 앙상한 은행나무가 교실 안을 기웃거린다
은행나무는 사람보다 먼저 직립했다
나무의 체위를 보며 사람들도 직립을 꿈꾸었을까
물속에 서서 자는 고래의 체위를
날면서 자는 새들의 체위를 그려보다가
내 앞에 놓인 시를 더듬더듬 읽는다
「체위에 관한 단상」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설희
강원 속초에서 태어나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을을 재다』,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등이 있다.
목차
1부
다 되어 가 / 컵, 지워지는 / 진창의 노래 / 눈 / 척도 / 종 / 완전한 어둠 / 교착膠着 / 오늘의 불협화음 / 명령 / 법과 편 / 향기점占 / 11월 / 떡! 하니
2부
지구를 굴린다 / 겨울 들판에서 / 눈의 부족 / 첫물 / 바보숲 명상란 / 물속의 사생활 / 문어 / 아로니아밭 / 수척해진 이유 / 모래의 시간들 / 수박 / 만월 / 체위에 관한 단상 / 카니발
3부
환희 / 묵, 묵 / 관管 / 바퀴 / 식욕유 / 터 / 길 위에서 / 지바현 능소화 / 반쪽짜리 자화상 / 곰배령 / 아버지의 손가락 / 경주 남산 / 천년의 아침을 내다보다 / 입
4부
초대 / 비탈에 기대다 / 방 / 지나가는 비 / 목 / 끝내 괄호를 닫지 못하고 / 그림자 혹은/ 거품 / 한 개 촛불 앞이었다 / 무서운 사람 / 늦게 도착한 / 노을 진 자리 / 꽃의 심장에 도달하려면 / 돌멩이 하나 / 들판에서
해설 - 진창길을 헤쳐 가는 ‘눈의 부족’의 노래 | 임동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