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독일문학의 거장 괴테가 1774년에 발표한 서간체 소설로, 스물다섯 무명의 청년 괴테를 일약 유명인으로 세운 작품이다. 고등법원 견습생활 시절, 짝사랑한 괴테의 실제 경험이 녹아든 이 소설은 그래서 사랑앓이의 애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낭만 지식인 청년 베르테르는 어느 날 무도회 참석을 계기로 아름다운 여성 로테를 알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지적이고 우아한 데다 상냥하기까지 한 그녀와 교감하며 급속도로 동화하고 사랑이라는 열병에 휩싸인다. 그러나 사랑이 꽂힌 그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녀는 진즉 알베르트라는 건실한 남자의 약혼녀인 것이다. 그는 그녀를 간절히 품지만 실제로는 품을 수 없기에, 홀로 사랑앓이를 하다가 끝내 그녀를 떠난다. 그러나 새로운 거처에서 신분 차이에 따른 귀족들의 소외로 상처를 입고, 그럴수록 그녀를 향한 열병은 더욱 거세진다. 결국 그는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유부녀가 된 그녀를 사랑하면 할수록 불행이 시나브로 그를 내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이라는 감정선에 독일의 ‘질풍노도의 시대’적 비극을 장치함으로써 인간의 원초적 감정, 그 순수를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18세기 전 유럽을 들끓게 했을뿐더러 오늘날에도 즐겨 읽히는 명작이 된 이유다.
출판사 리뷰
질풍노도의 시대, 청년 괴테가 쓴 희대의 비극
참을 수 없는 끌림,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앓다
“아, 이렇게 공허할 수가!
그녀를 한 번만 가슴에 안을 수 있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문학의 거장 괴테가 1774년에 발표한 서간체 소설로, 스물다섯 무명의 청년 괴테를 일약 유명인으로 세운 작품이다. 고등법원 견습생활 시절, 짝사랑한 괴테의 실제 경험이 녹아든 이 소설은 그래서 사랑앓이의 애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낭만 지식인 청년 베르테르는 어느 날 무도회 참석을 계기로 아름다운 여성 로테를 알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지적이고 우아한 데다 상냥하기까지 한 그녀와 교감하며 급속도로 동화하고 사랑이라는 열병에 휩싸인다. 그러나 사랑이 꽂힌 그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녀는 진즉 알베르트라는 건실한 남자의 약혼녀인 것이다. 그는 그녀를 간절히 품지만 실제로는 품을 수 없기에, 홀로 사랑앓이를 하다가 끝내 그녀를 떠난다. 그러나 새로운 거처에서 신분 차이에 따른 귀족들의 소외로 상처를 입고, 그럴수록 그녀를 향한 열병은 더욱 거세진다. 결국 그는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유부녀가 된 그녀를 사랑하면 할수록 불행이 시나브로 그를 내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이라는 감정선에 독일의 ‘질풍노도의 시대’적 비극을 장치함으로써 인간의 원초적 감정, 그 순수를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18세기 전 유럽을 들끓게 했을뿐더러 오늘날에도 즐겨 읽히는 명작이 된 이유다.
독일문학의 거성, 괴테의 자전적 소설
사랑의 열병, 인간의 원초적 순수를 돌아보다
낭만주의자 괴테가 청춘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스물다섯 청년 시절의 괴테가 1774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로, 2년 전인 1772년 베출라 고등법원에서 견습생활을 할 때 알게 된 여성 샤로테 부프를 짝사랑한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 샤로테 부프는 케스트너라는 외교관의 약혼녀였으므로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였다. 괴테는 홀로 사랑앓이를 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이 소설의 중심 모티브가 되었다. 여기에 유부녀를 사랑하다가 끝내 권총 자살한 친구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의 사건 또한 핵심 모티브가 되었다. 말하자면 괴테는 괴테 자신과 예루잘렘을 주인공 베르테르로, 샤로테 부프를 짝사랑 로테로, 케스트너를 연적 알베르트로 치환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스토리를 비극적 결말로 휘몰아친 것이다.
총 2부로 구성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서간체 형식을 취하면서 사랑의 환희와 애틋함, 그리고 상실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여기에 2부 속 편자(編者)의 독자 보고 형식은 베르테르의 안타까운 행적에 깊은 연민과 슬픈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발표 직후 주인공의 파란 연미복에 노란 바지와 조끼를 유행시켰고, 자살하려는 이른바 ‘베르트르 효과’라는 사회적 문제도 불러오며 유럽 전역을 들끓게 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비극적 연애담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연애 스토리를 넘어 ‘질풍노도의 시대’적 정신,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인으로서의 원초적 감정, 충동을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명작이다.

온 마음으로 즐기는 달콤한 봄날 아침과도 같은 환희가 내 영혼을 온전히 사로잡았다네. 마치 내 영혼을 충만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 같은 이곳에서 혼자 지내는 맛을 만끽하고 있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네, 친구여. 고요한 존재의 감각에 빠져 지내느라 그림 그리는 일에는 소홀해진 것 같아.
_<1부 5월 10일> 중에서그녀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으며 조용히 말했어.
“클롭슈토!”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흐르고 있을 그 찬란한 송가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녀가 암호 같은 외마디 말로 나에게 쏟아붓는 벅찬 감정의 물결에 잠겨버리고 말았다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머리 숙여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환희의 눈물을 흘렸어. 나는 다시 그녀의 눈을 보았지. 고결한 시인이여! 그녀의 눈빛에서 당신을 우러르는 마음을 보았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로테 외의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모독하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_<1부 6월 16일>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