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1930년대 『매일신보』에 실린 독자 투고 괴담의 제목이다. 장지문에 비친 문어 그림자 때문에 누명을 쓴 며느리가 시댁에서 쫓겨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귀신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며느리가 너무도 쉽게 내몰린다는 점에서 충분히 괴이한 이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 각본을 집필해 온 오유경 작가의 손을 거쳐 더욱 서늘한 분위기와 탄탄한 구조를 갖춘 소설로 재탄생했다.
새롭게 쓰인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일가족이 실종된 후 기억을 잃은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을 혼인시켜 새 며느리를 맞이하면서 집안의 비밀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담아낸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에 경계를 짓다가도 어느 순간 경계를 허물어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경계와 관계 사이를 오가는 우리에 대한 우화로도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외 존재가 등장하는 괴담으로서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이 작품은 ‘읽어 나가는 즐거움’과 ‘의미를 새기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출판사 리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괴담 기획 개발 캠프’ 프로젝트 선정작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콘텐츠&필름 마켓 참석자 투표로 ‘괴담 캠퍼스 피칭’ 최고상 수상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1930년대 『매일신보』에 실린 독자 투고 괴담의 제목이다. 장지문에 비친 문어 그림자 때문에 누명을 쓴 며느리가 시댁에서 쫓겨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귀신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며느리가 너무도 쉽게 내몰린다는 점에서 충분히 괴이한 이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 각본을 집필해 온 오유경 작가의 손을 거쳐 더욱 서늘한 분위기와 탄탄한 구조를 갖춘 소설로 재탄생했다.
새롭게 쓰인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일가족이 실종된 후 기억을 잃은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을 혼인시켜 새 며느리를 맞이하면서 집안의 비밀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담아낸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에 경계를 짓다가도 어느 순간 경계를 허물어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경계와 관계 사이를 오가는 우리에 대한 우화로도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외 존재가 등장하는 괴담으로서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이 작품은 ‘읽어 나가는 즐거움’과 ‘의미를 새기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괴담 기획 개발 캠프’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동 영화제의 ‘괴담 캠퍼스 피칭’ 시상식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콘텐츠&필름 마켓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들의 투표 결과로 주어진 상이니, 책으로 엮이기 전부터 매력을 널리 인정받은 이야기가 드디어 독자들을 만나게 된 셈이다.
경계 안을 지키려는 자,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
‘경계’에 대한 이야기인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에는 다양한 층위의 경계가 등장한다. 광복 직후의 우리나라에는 호열자(콜레라)가 유행했다. 작품의 무대인 남부 지방의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미군과 경찰에게 가로막혀 바다로도 마을 밖으로도 나가지 못한다. 마을 곳곳에는 금줄을 친 집들이 있는데, 집 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니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는 의미다. 선천적으로 병약한 아들을 15년째 돌보고 있는 신씨 가문의 며느리 서천댁은 집을 둘러싼 담장을 경계로 삼았다. 그는 그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외부인을 집 안에 들이지도 않았다. 서천댁은 15년 전 하인들을 비롯한 집안사람들 50여 명이 사라진 사건의 몇 안 되는 생존자인데,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다. 그러니 기억에도 경계선이 쳐져 있는 셈이다.
서천댁이 아들을 위해 오랫동안 지켜 온 경계는, 역설적이게도 아들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무너진다.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존재인 아들 영휘의 건강이 너무 나쁘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자 서천댁의 당숙인 일호는 신씨 가문의 영속을 무엇보다 중시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영휘가 하루빨리 결혼해 자식을 보아야만 한다. 일호의 부름에 따라 영휘와 혼인하게 된 새 며느리, 거동이 불가능한 영휘 대신 혼례일에 대역을 서 준 청년, 영휘와 며느리의 건강을 살필 간호사가 신씨 가문의 문지방을 넘는다.
외부인일 수밖에 없는 며느리를 옥죄는 배척의 고리
외부인들 중 서천댁의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건드리는 사람은 새로 온 며느리다. 귀기 어린 그림 속 여인처럼 오싹하도록 아름다운 며느리는 시종일관 초연하다. 시댁 식구들이 집안의 비밀스러운 사정 탓에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언짢은 기색 하나 없어 오히려 기이하다. 며느리가 온 이후 간밤의 꿈을 15년 만에 떠올리게 된 서천댁은 몽유병이 도져 대문 앞까지 걸어 나온다. 신씨 가문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있으니 혼몽한 상태로 조금만 더 걸었다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을 터다. 서천댁이 자기 발로 경계를 넘게 만드는, 15년 전 일가족이 사라져 버린 바닷가로 이끄는 꿈이 며느리의 등장 이후 힘을 키웠으니 서천댁 눈에 며느리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서천댁은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외부인인 며느리를 두려워하지만, 사실 서천댁 또한 신씨 가문의 며느리이고 시댁 입장에서는 외부인이다. 심증만으로 며느리를 물리치려 하는 것은 그 점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온갖 집안에서 대물림되었을 며느리 배척의 역사에 한 줄을 더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등장으로 이 경계의 고리를 끊어 낸다. 초월적인 영물은 눈앞의 일에 연연하기 십상인 인간이 종종 빠지는 함정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의 경계가 느슨했던 시대
일제 치하를 막 벗어난 작중의 시대에는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의 경계가 느슨했다. 보름날에는 바다의 신들이 물고기로 변해 바닷속을 노닌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기에 마을 사람들은 보름밤 조업을 꺼린다. 간절한 바람이나 깊은 고민이 생기면 신내림을 받은 무당을 찾아가 적절한 해결책을 듣는다. 신씨 가문의 일호는 영휘가 실종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나마 살아남은 것이 돌아가신 조상들의 보살핌 덕이라 여긴다.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세계관이 일반적이었다. 그들에게서 깨달음을 얻는 일 또한 보편적이었다.
2020년대를 사는 우리의 눈에도 저 시대는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가 저 시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유경 작가가 꼼꼼한 자료 조사와 풍성한 어휘 구사를 통해 몇십 년 전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름을 발라 닦아 둔 사랑채 바닥,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치맛자락, 무당이 든 방울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선명하니 사랑채를 오가는 신씨 가문 식구들, 바닷가를 몰래 걷는 며느리, 무당의 예언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의 마음결까지도 선명한 것이다. 시대의 경계를 넘은 이야기는 우리가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지혜를 일깨워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준다.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가 바로 그렇다.
“이곳처럼 바다를 가까이 둔 마을에선 종종 문어가 사람 사는 집 안까지 들어오기도 한대. 신기하지? 먹을 걸 찾아 들어오는지, 그냥 재미로 들어오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 문어가 어느 날은 타지에서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의 방에 들어갔던 모양이야. 며느리는 호롱불을 켜 둔 채로 잠들어 있었고 말이야.”
오래전 누군가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다음이 어떻게 되었더라. 서천댁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머리가 떠올리기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문어가 호롱불 앞을 지날 때 그 그림자가 문에 비쳐 보인 거지. 문어의 머리는 매끈하고 동그래서, 밖을 지나가던 하인의 눈엔 그게 꼭 중의 머리처럼 보였던 모양이야. 그래서 중과 내통한 것으로 오해받은 며느리는 쫓겨났단다.”
사람들은 새 신부가 귀신의 질투를 사기 쉽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부의 가마는 신랑 집에 들어가기 전 불 위를 지남으로써 신부에게 붙은 귀신이며 액운을 모두 떼어 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젠 많은 이들이 생략하는 미신적인 의식 중 하나지만 이 집안에서는 챙겨서 할 모양이었다. 그런데, 병신 소리 듣는 신랑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가는 신부를 대체 어느 귀신이 질투한단 말인가?
달이 차오르면 몸이 점점 나른해지고 둔갑한 상태로 지내기가 어려워진다. 모든 영물들이 그렇다. 수면 아래를 환하게 비추는 달빛에는 숨긴 본모습을 내보이는 힘이 있다. 보름밤에는 뿌연 기운 하나 없이 맑아진 바다에서 집채만 한 게가 집게발을 움직여 엉킨 파도를 풀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산갈치가 헤엄치고, 거대한 암초인 듯 가만히 있었던 거북이가 몸을 뒤집어 색색깔의 산호 군락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유경
202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괴담 기획 개발 캠프’에 지원한 프로젝트가 선정되면서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를 쓰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콘텐츠&필름 마켓에서 열린 괴담 캠퍼스 피칭 시상식에서 ‘ㅤㅍㅘㄴ상’을 수상했다. 영화 및 드라마 각본을 주로 쓴다. 소설은 처음이다.이름의 한자로는 머무를 유에 빛 경 자를 쓴다. 빛이 머무른다는 뜻을 담은 이름을 갖고선 왜 자꾸 어둡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런 것들에 관해 써 나가고 싶다.
목차
며느리·40p
루명·126p
그림자·166p
문어·208p
작가의 말 · 246p
프로듀서의 말 · 2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