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인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식민지 지배의 기억과 역사 인식의 충돌, 독도 문제, 과거사에 대한 책임 공방 등으로 인해 양국의 감정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인 2025년, 오랜 대립과 갈등을 넘어 한일관계에 변화의 가능성이 감지되는 지금, 서울대 역사학부 박훈 교수가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를 출간했다.박훈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의 근대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이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일본의 역사를 읽고, 그 안에서 한국의 오늘과 미래를 되돌아본다. 그는 말한다. “진정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표면적 화해를 넘어, 서로의 역사를 배우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 이 책은 동아시아 지정학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나침반을 제공한다.18세기 일본은 전체 인구도 많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시 인구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3대 도시로 일컬어지는 에도(100만 명), 오사카(38만 명), 교토(34만 명) 외에도 각 번의 수도인 조카마치도 인구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18세기 중엽 베이징의 인구는 100만 명, 런던 65만 명, 파리 55만명을 헤아렸고, 서울은 30만 명을 밑돌았다. 에도는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1장 페리 함대의 출현과 막부의 대응)
페리가 떠난 후 아베 마사히로는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먼저 나가사키에 해군학교를 열었다. 그다운 혜안이다. 바다에서 물고기나 건져 올려서는 나라의 명줄까지 내놓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교관을 모셔와 조선술, 항해술 등을 가르치게 했다. 막부나 번을 막론하고 우수한 가신을 입학시켜 미래의 해군 인재를 기르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외국인을 최고 대우로 고용해 일본인 제자를 양성하게 하는 것은, 이후 근대 일본이 채택한 발전 전략의 출발점이다. 이로부터 불과 50년 후인 1905년에 일본 해군은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궤멸시켰다(러일전쟁). (1장 페리 함대의 출현과 막부의 대응)
막부와 사무라이들이 천황과 신하들을 ‘긴 소매 입은, 유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업신여기며 자만에 들떠 있는 사이, 교토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변하고 있었다. 막부가 통상 조약 칙허를 얻기 위해 홋타 마사요시를 파견했던 1858년에 고메이 천황은 재위 12년째를 맞는 27세의 청년 군주였다. 이상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학습해온 이 젊은 천황과 신하들이 개항이라는 국가의 대위기를 맞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눈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오래 누적된 변화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세상이 경악하는 일은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2장 천황의 등장과 반막부 세력의 대두)
작가 소개
지은이 :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