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정희의 장기 집권이 갑작스럽게 끝나고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등, 격동의 연속이었던 한국. 국제 정세 또한 소련이 흔들리고 중국이 급부상하는 등, 세계 정치 지형이 뒤흔들리는 격변기였다. 그 와중에 한국의 외교는 놀라운 성과를 연이어 일궈냈다. 1988년 올림픽 개최, 1990년 소련과 국교 수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992년 중국과 국교 수교 등을 이루어 내며 6.25전쟁의 폐허로나 기억되는 나라에서 번듯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격변하는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외교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 신명을 바친 직업외교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윤보선 대통령 때 외교부에 들어간 저자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까지 38년 간 외교관으로 일했다. 얼핏 순탄한 공직생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시해와 쿠데타를 비롯해 국가부도사태까지 연이어 일어났던 당시 한국 상황을 돌이켜보면 결코 쉽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웅산 폭탄 테러로 가까운 동료 공직자들의 죽음을 봐야 했던 사례만 떠올려봐도 그러하다.그러나 한시도 조용하지 않은 모국 상황에도 불구하고 외교의 최일선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낸 노장의 회고담은 오히려 담담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막후의 혼잡 같은 것은 절대 내비치지 않는 외교관의 모습과도 같다. 한 외교관의 방대한 비망록을 빌려 읽는 듯한 이 책은 격동기인 20세기 후반의 한국 외교사를 가볍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나는 1960년 봄 22살의 나이에 외무부에 들어가서 38년을 보내고 환갑이 되어 물러 나왔는데, 그동안 외교관 생활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어린 시절 꿈의 결실이기도 했다.강산이 네 번 변하고 정권이 여덟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직업외교관이라는 외길을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걸어왔다.외교관이라는 어찌 보면 좀 색다른 길에서 내가 했던 일과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나는 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으면서 나라를 위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보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공직에서 물러나서 조용히 되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이바지한 것보다는 훨씬 많은 혜택을 나라로부터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외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참고라도 될 수 있다면 내가 받은 혜택에 대한 나름의 보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노창희
1938년 경남 합천(慶南 陜川)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 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59년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1960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무부에 들어가서 직업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외교관으로서 제네바, 캐나다, 스웨덴에서 경력을 쌓았고 본국에서는 과장, 국장의 과정을 착실히 밟았다. 주미국 공사, 주나이지리아 대사를 거쳐 1988년 대통령 의전 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어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측근에서 정상외교를 도왔다. 1991년에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초대 주유엔 대사로 임명되었으며, 1992년에는 외무부 차관으로 돌아와서 한·중 회담 수석대표로 수교 교섭을 마무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1993년에는 주영국 대사로 자리를 옮겨 한영 관계 증진에 헌신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서대학교 초빙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고문, 아시아―유럽재단 한국 대표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