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경복궁에서」
비 오는 날의 궁궐은 참 좋았다. 비의 소리가 폭신폭신 귀를 감쌌다.흙 풀 나무 향을 섞은 비의 내음이 물씬 코를 물었다.비를 쓰는 기와와 비를 입는 돌담과 비를 신는 박석과 비를 벗는 우산들까지, 옷을 갈아입히는 비의 진한 농에 걸으며 보는 내내 웃었다.누구의 말처럼 궁궐 관람은 가히 우중 궁궐(雨中 宮闕)이 제일일 것이다.
「오로라」
오로라는 불쑥 나타났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단걸음에 문을 박차고 나가 위를 보니, 세상에! 오로라가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도깨비불 같다고 해야 할까 광선검이라고 해야 할까. 불꽃들이 정신을 잃은 듯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중략)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그들에게 그 불은 조상의 영혼이었고, 신의 속삭임이었으리라. 지금 우리는 오로라가 어떤 현상인지 잘 알고 있지만, 혼을 쏙 빼놓는 그런 불을 가만히 빤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그때에도 지금도 없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규섬
모든 것을 귀찮아하지만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다고 여기며, 돌아가는 세상일에 심드렁하지만 살아내는 시공을 그대로 사랑한다. 규섬은 별이 반짝일 때 들리는 소리 없는 인사를 담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