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언제나 두 가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더없이 학대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신음, 그리고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이기주의자들의 비웃음……. 덧붙여 잔혹함과 상냥함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그런 그들을 높은 곳에서 무섭도록 냉담하게 내려다보는 오만한 사람들의 기척도 느껴진다.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절대로 그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단지 선악(善惡) 관념만으로 그들을 단죄하고 내치지 않는다. 그 영혼 깊숙한 곳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은 ‘함께 살고 함께 괴로워한다’는 이른바 ‘동고(同苦)’ 정신이다.이 소설은 제목처럼 학대받고 상처받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한 편의 애가(哀歌)이며, 도스토옙스키가 초기 작풍과 결별하고 새로운 예술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눈물을 응집한 듯한 작품이다. 이렇게 볼 때 《학대받은 사람들》은 그의 과거의 총결산인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준비이다. 복잡한 플롯은 장편 형식에 대한 시도일 뿐 아니라, 나중에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 사상소설의 싹을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예감이나 점은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몇 차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 노인의 경우가 바로 그 예이다. 그 노인과 만났을 때, 왜 나는 그날 저녁 나에게 어떤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꼈을까? 하기야 나는 그때 병에 걸려 있었다. 앓고 있을 때의 느낌은 언제나 대부분 믿을 수 없다.
노인은 기계적으로 뮐러를 바라보았고, 이제껏 표정 없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어떤 불안의 징후가, 걱정스러운 동요가 나타났다. (…) 이 가난하고 노쇠한 노인의 겸손하고 고분고분한 서두름 속에는, 아담 이바니치를 비롯한 모든 손님이 이 일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꿀 만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노인은 그 누구도 모욕할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거지처럼 어디서든 쫓아낼 수 있다는 비참한 처지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나간 온갖 감정들이 지금도 이따금 나를 아프고 괴롭도록 흔들어 놓는다. 붓 아래에서 그러한 감정은 더 조용하고 조화로워질 것이며, 잠꼬대나 불안한 꿈 같은 느낌은 줄어들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기계적인 동작만으로도 이미 바람직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진정시키고 냉정해지도록 만들며, 내 안에 잠든 과거의 작가적 습관을 일깨워 나의 회상과 병적인 꿈을 일, 즉 직업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년 모스크바에서 의사였던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슬하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공병학교를 졸업하였다. 1842년 소위로 임관하여 공병 부대에서 근무하다 1844년 문학에 생을 바치기로 하고 중위로 퇴역한다.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들과는 달리,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거의 없었기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1849년 4월 23일 페트라스키 금요모임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집행 직전 황제의 사면으로 죽음을 면하고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한다. 1854년 1월 강제노역형을 마치고 시베리아에서 병사로 복무한다. 1858년 1월 소위로 퇴역하고 트베리에서 거주하다 1859년 12월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1857년부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함께했던 아내 마리야 이사예바가 1864년 4월 폐병으로 사망한다. 그해 6월 친형이자 동업자였던 미하일이 갑자기 사망한다. 1866년 잘못된 계약으로 급히 소설을 완성해야 했던 작가는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를 고용하여 《도박사》와 《죄와 벌》을 완성하고 이듬해 1867년 2월 속기사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1867년 아내와 함께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백치》, 《영원한 남편》, 《악령》 등을 쓴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난다. 작가가 46세일 때 태어난 첫 달 소피야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사망한다. 작가에게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안나 스니트키나는 작가의 마지막 날까지 든든한 옆지기로 남는다. 1881년 1월 28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도스토옙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1881년 2월 1일 장례식을 찾은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티흐빈 묘지에서 안식하고 있다. 대표작은 《가난한 사람들》, 《백야》, 《분신》,《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에서 쓴 회상록》, 《도박사》,《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