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1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W. G. 제발트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세계 문학계는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이 “기묘하고 불가해한 작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기억의 유령』은 제발트가 1997년부터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의 심층 인터뷰와 유명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책이다.제발트는 오늘날 어떤 작가보다도 새롭게 글을 썼다. “굽이치며 최면을 거는 듯한 문장은 뒤엉킨 불안뿐 아니라 무기력을 동반한 현대적 감성의 패러다임 그 자체다.” 제발트는 현대 소설에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하여 ‘산문 픽션’이라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고안했다. 그리고 “유령 사냥꾼”이 되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과 그 일의 불가능성을 다루는 데 헌신했다.이 책에서 제발트는 알프스 고산 지대에서 꽁꽁 언 시신과 함께 지내곤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에 불만을 품고 독일을 떠난 이유, ‘산문 픽션’의 탄생, 애완견을 보고 배운 글쓰기 방식,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 조국의 “집단 기억상실”과 기억하는 일의 압도적 중요성을 신랄하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기억의 유령』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상,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금언에 배치되는 “진정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제발트 면모를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출판사 리뷰
구병모 소설가 강력 추천!
“한번 제발트를 읽어버린 작가가 제발디언이 되지 않기란 가능한가?”
20세기의 가장 암울한 악몽이 거주하는 저승이 있다면 제발트는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뱃사공일 것이다. 2001년 12월 14일,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제발트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세계 문학계는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이 “기묘하고 불가해한 작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기억의 유령』은 제발트가 1997년부터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의 심층 인터뷰와 저명한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책이다.
최근 수십 년간 제발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오늘날 어떤 작가보다도 새롭게 글을 썼던 그는 장르를 초월하는 자신의 작품을 ‘산문 픽션(prose fiction)'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현대 소설에서 독일의 산문 전통을 부활시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한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다. 제발트는 모든 작품에서 기억과 망각, 예술과 현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과 그 일의 불가능성을 다룬다. 이 책에서 제발트는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제발트가 남긴 소설은 단 네 권이 전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스스로를 ‘제발디언’이라고 부르는 추종자들을 낳았을 정도로 그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추종자’라는 말은 귄터 그라스, 잉에보르크 바흐만, 하인리히 뵐을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도 붙지 않는다. 카프카의 경우 ‘카프카에스크’라는 용어가 생겼지만 그 의미가 변질되었고, ‘오웰리언’이라는 말도 관료주의적이거나 압제적 또는 기이한 무언가를 가리키는 애매하고 평범한 용어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제발디언’이라는 용어는 그의 추종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형용사로 쓰이며 순수하게 제발트 특유의 산문체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영어권이나 프랑스어권에서도 마찬가지다. 2001년 제발트가 불시에 사망한 뒤로 지금까지 산문에 이만큼 큰 영향력을 미친 작가는 아직 없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거든요. 파시스트 지지자들은 아주 오래 삽니다.”
1944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제발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와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제3제국 당시 나치 당원이었던 교수들이 가까운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스물두 살에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그리고 사망할 때까지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30년이 넘도록 학생들을 가르쳤고, 브리티시 문학번역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기억의 유령』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상,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금언에 배치되는 “진정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제발트의 면모를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스스로 기억 상실을 유도한 독일 사회에서 성장한 제발트는 기억하는 일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전쟁에 대한 부모의 침묵, 대학 시절 과거를 회피하고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에 대한 좌절감, 더 나아가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과 “모의된 침묵”을 혐오한다고 여러 번 언급한다.
특히 기억과 망명, 죽음을 파고드는 놀라운 책인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는 유럽의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그의 이해도가 여느 독일 작가들보다 독보적임을 보여 준다. 저명한 비평가인 루스 프랭클린은 홀로코스트와 관련하여 “제발트처럼 도덕적 지위가 있는 작가만이 이런 책을 쓸 엄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하고, 전기 작가인 캐럴 앙지에는 “우울하고 가슴 아프지만, 아름답게 쓰인” 제발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낸다.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문학의 효용이란 “기억을 돕고 어떤 일은 인과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것”
제발트처럼 언어의 유혹적 힘을 의식하게 만드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의 문학이 지닌 유혹적 요소들은 과거를 회복하고 삼키고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극도로 파괴적인 혼란 상태는 더없이 정확하고 절제된 말로 표현된다. 한나 아렌트처럼 제발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일례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에 대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사실은 수감자들이 해방되었을 때를 담은 사진들이었고, 홀로코스트의 현장은 그 이전에 안 보이는 데서 신속히 처리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관리인 역할을 한 제발트는 역사의 참화와 희생자는 안개처럼 증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기억의 유령』에서 제발트는 알프스 고산 지대에서 꽁꽁 언 시신과 함께 지내곤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에 불만을 품고 독일을 완전히 떠난 이유, ‘산문 픽션’의 탄생과 개를 보고 배운 글쓰기 방식, 흐릿한 흑백사진을 쓰는 이유, 문학의 효용과 글쓰기의 윤리,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과 기억하는 일의 압도적 중요성을 신랄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여느 창작 이론서나 글쓰기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기억의 유령』은 인터뷰어의 자질과 실력에 따라 작가의 답변이 보물 같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제발트의 소설 특히 『현기증. 감정들』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관통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과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 및 글쓰기 어록을 새로 수록했으며, 아울러 번역가의 친절하고 세밀한 후기는 문학 애호가와 작가 지망생뿐만 아니라 제발트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제발트는 비통하리만치 서정적으로 정확하게 그 만성적인 빈곤과 퇴보를 재현해냈다. 그의 언어는 넓은 시야와 결합하여 서서히 타올랐고, 그렇게 타오른 불빛으로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이르렀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어둡고 예언적인 구절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_「서문: 상실된 것을 부활시키는 언어」 부분
그토록 우연의 일치가 많은 글을 읽고 그 배경이 심란하게도 자신의 삶과 같은 곳임을 알면 기분이 묘하다. 자신의 상상을 실어나를 형상과 일화를 찾는 일에 부럽도록 능숙한 제발트는 이제 내가 거의 20년 동안 살아 온 베로나에서 겪은 일을 말해 준다. [중략] 제발트의 글이 공연히 툭하면 불가해하게 모든 걸 집어삼키고 세상을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엄청난 대화재의 비유로 불타오르는 게 아니다.
_「사냥꾼」 부분
『이민자들』은 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나온 존트호펜의 학교 선생님이 자살했다는 전화였어요. [중략] 글을 쓸 때 타인의 삶을 침해하는 면은 저도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은 경우 저는 그들에게 물어 봅니다. 제가 쓴 것을 출판하기 전에 그들에게 보여 주죠. 누구든 반대하면 해당 내용은 뺍니다.
_「제발트는 누구인가」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W. G. 제발트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독일 작가 중 한 사람. 1944년 5월 18일 독일 남동부 알고이 지역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와 스위스 프리부르에서 독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1966년 영국으로 떠나 맨체스터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알프레트 되블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오스트리아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 뒤, 1988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독일어문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듬해 영국 문학번역센터를 창립했다. 첫 문학작품 『자연을 따라. 기초시』(1988)를 출간한 이후 『현기증. 감정들』(1990), 『이민자들』(1992), 『토성의 고리』(1995)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위대한 거장이라는 수전 손택의 찬사와 더불어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한편 문학연구가로서 『불행의 기술』(1985), 『급진적 무대』(1988), 『섬뜩한 고향』(1991), 『시골 여관에서의 숙식』(1998) 등의 학술서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1997년 취리히 대학 초청으로 진행한 작가 강연에서, 이차대전 당시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침묵해왔다고 주장하여 화제를 모았다. 『공중전과 문학』(1999)은 당시 강연했던 내용과 후기를 묶은 것으로, 출간되자마자 독일 사회에 민감한 반응과 거센 반론을 불러일으켰다.2001년 『아우스터리츠』를 발표해 다시 한번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그해 12월 노리치 근처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태 뒤 유고집 『캄포 산토』가 출간되었다. 제발트는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거론된 바 있으며, 베를린 문학상, 북독일 문학상, 하인리히 뵐 문학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하인리히 하이네 문학상, 요제프 브라이트바흐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사후에 브레멘 문학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옮긴이의 말│제발트와 언어의 힘
감사의 말
서문│상실된 것을 부활시키는 언어
사냥꾼
유령 사냥꾼
제발트는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시
서늘한 사치
제발트와의 대화
연기의 고리
모의된 침묵
경계를 넘다
연보
인용 출처 및 참고 문헌
부록
버지니아 울프│나방의 죽음
프란츠 카프카│사냥꾼 그라쿠스
글쓰기에 관한 제발트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