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국립극단 희곡선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은 175편 가운데 선정된 대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묶은 희곡집이다. 1957년부터 동시대의 언어로 삶을 탐구해 온 창작희곡공모의 성과를 담아, 한국 연극의 현재를 가늠하는 지표를 제시한다. 여성, 퀴어, 노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각기 다른 형식과 시선으로 풀어낸다.
대상작 「모노텔」은 고립된 인물들의 읊조림을 통해 단절의 감각을 형식 실험으로 응축한다. 「옥수수밭 땡볕이지」는 세대를 건너 반복되는 노동의 구조를 직시하고,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는 게임 형식과 SF 설정으로 기억과 관계를 복원한다. 하나의 답 대신 서로 다른 질문이 공존하는 동시대 희곡의 지형을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희곡은 세상에 대한 대답이자, 세상을 향한 질문입니다.”
어느 모텔에 고립된 이들의 읊조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
옛 연인의 기억을 복원해 가는 어느 요리 연구가의 이야기…
국립극단 희곡선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출간
지난해 출간된 『2024 창작희곡공모 선정작』에 이어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이 출간되었다. 국립극단이 개최한 ‘2025 창작희곡공모’를 통해 선정된 세 편의 수상작을 엮은 희곡집으로, 해당 공모에는 175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포함한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세 차례에 걸친 심사를 통해 대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선정하였다.
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1957년부터 동시대의 언어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희곡을 발굴해 온 공모 사업으로, 2024년 새롭게 개편되어 한국 연극의 현재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어 왔다.
이번 공모를 통해 드러난 작품들은 하나의 질문이나 경향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여성, 퀴어, 환경, 예술, 역사 등 지금 우리 곁에 놓인 주제들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응시하며, 전통적인 극 구조를 밀도 있게 따라가는 작품과 낯선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 나란히 논의되었다. 이는 동시대 희곡이 지닌 질문의 스펙트럼과 표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대상작 「모노텔」(이용훈)은 과감한 형식적 선택과 밀도 높은 언어가 돋보이는 희곡이다. 어느 모텔에 고립된 이들의 읊조림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스팸 메시지, 진술 조서, 편지 등 다양한 텍스트 형식을 희곡의 구조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장치들은 동시대의 극단적인 고독과 단절된 감각을 함축적인 장면들로 응축해 낸다. 익숙한 틀을 벗어나면서도 드라마적 개연성을 놓치지 않으며, 형식적 실험이 서사를 압도하지 않는 균형 또한 이 작품의 강점이다. 낯선 형식의 희곡인 만큼 무대화에 대한 염려도 제기되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지점이 무대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 「옥수수밭 땡볕이지」(윤미현)는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희곡이다. 작품은 과거의 고통을 재현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그 고통이 세대를 건너 오늘의 현실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전승되는 폭력과 침묵 앞에 ‘관’이라는 상징적 장치를 놓으며, 개인의 삶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서의 노동을 사유하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잘 맞물린 단단한 극적 구성과 안정적인 무대적 상상력이 확인되었으며, 동시대 노동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우수상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김정윤)는 옛 연인의 기억을 복원해 가는 한 요리 연구가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이 언제나 또 다른 타인들을 경유하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한다. ‘게임’은 단순한 소재에 그치지 않고 서사를 이끄는 구조로 기능하며, 설정된 SF 세계관 역시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동시대적 감각과 실험적인 형식이 긴밀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희곡이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질문과 태도가 공존하는 동시대 희곡의 지형을 드러낸 희곡집에 가깝다. 수록된 모든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말을 걸고 있으며, 그 질문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는 앞으로도 동시대 작가들의 질문을 기록하고, 한국연극이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희곡선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담고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할 독창적인 창작희곡을 발굴합니다.
이번 희곡선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을 모아 더 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소개하고, 한국연극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시내 나갔다가 지나가는 길에 로또 명당 자리가 있다 해서… 일부러 찾아다니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로또 한 장 구입했지요…. 하하, 이게 한 장으로 보이지는 않죠? (직원은 누군가의 눈치를 살핀다. 손에 로또 용지 뭉치를 들고 있다. 그중에 한 장을 뽑아 로또 번호를 맞춰 본다.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꽝이네.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다 멈춘다)
로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 일 년이면 열두 달, 십수 년 넘게… 나를 실망시켰죠. 나와 로또는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질 않네요. 그렇다 보니 이건 짝사랑인가? 싶다가, (사이)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아요. 애증인가? 싶다가, 로또 또한 나를 염두에 두고 있거나, 좋은 감정 변치 말자! 서로서로가 존재는 알고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라, 그것도 아닌 듯….
희망이라 말하고 고문받고 있다 생각 드네요.
― 「모노텔」
늙은 모텔은 그런 것입니다요, 꽃무늬 커튼은 오래되어서 세탁은 언제 했는지 빛바랜 듯 색 빠진 듯 커튼을 이리저리 흔들면 20년 전 숙박업의 호황기만을 기억하는… 먼지가 후드득, 하고 떨어지는 것입니다요, 그렇다고 이 먼지들이 무조건 더럽고 불결하냐? 그리 생각하시면 큰 오해십니다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빛이, 방 안 가득 흩어지는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소독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떠도는 먼지를 보듬는 저 햇빛을 바라보고 있자면, 지나간 세월들이 문득 떠오르는데요, 피식하고 웃다가 이내 찾아오는 침울함에 젖어 들기도 합니다요, 참 단순한 것이 오묘하지 않습니까, 하찮은 먼지 알갱이와 쏟아지는 햇빛이 사람 기분을 오락가락 조종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변두리 소도시 모텔을 비추는 햇빛은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촌스럽지만 따듯하고, 또 서글퍼지고 한없이 외로워서 멀뚱한 표정을 짓는 저 벽지 같은 그런 거 말입니다.
― 「모노텔」
엉망이 돼서 돌아왔어. 지겹다, 지겨워. 저럴 거면 나가질 말던가. 이곳을 들락날락한다는 건 말이야, 사회에 대한 복수라던가 가족에 대한 복수로는 적절하지 않아, 최대한도로 오래 살아서 버티라고, 그리고 잘 살아, 그게 가족이라던가 사회라던가 몸담았던 곳에 대한 복수야, 그래 맞아, 사람들은 모르겠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왜냐구? 각자의 삶을 살기엔 버겁거든. 누군가를 챙겨 준다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야, 힘들다고 술 마시고 조금 나아졌다고 술 마시지 말고, 나자빠지지도 말고 살아가도록 해 봐, 알코올 중독자는 오랜 시간 병동에 있어서, 밖으로 나간다는 게 무섭고 두렵다고, 그러다 사회에 적응 못 하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저 상황이 돌고 도는 거야.
― 「모노텔」
작가 소개
지은이 : 윤미현
소설가 겸 극작가. 2004년 민음사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중편소설 「통조림」이 당선되었고, 2012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에 희곡 <우리 면회 좀 할까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희곡 <텃밭 킬러> <철수의 亂> <평상>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장판> <크림빵을 먹고 싶었던 영희>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텍사스 고모> <목선>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양갈래 머리와 아이엠에프> <갈수록 가관이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두산연강예술상, 동아연극상 희곡상, 벽산희곡상, ASAC 희곡 공모전 대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희곡아 솟아라 선정, 창작산실 대본공모 당선,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대전창작희곡공모전 우수상, 부산창작희곡공모전 금상, 청주창작희곡공모전 우수상 등을 수상하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극작가, 봄 작가 겨울 무대 작품,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었다.
지은이 : 이용훈
시인 겸 극작가.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시 부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희곡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 시집 『근무일지』를 발표했다.
지은이 : 김정윤
극작가. 희곡 <웨이 투 와이키키> <쿠스코의 신성한 협곡>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를 발표했다. <웨이 투 와이키키>로 국립극단 2024 창작공감:희곡 공모에 당선되었다.
목차
대상 모노텔 - 이용훈
우수상 옥수수밭 땡볕이지 – 윤미현
우수상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 – 김정윤
심사 총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