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계옥 소설가가 등단 20년 만에 첫 소설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를 펴냈다. 지난 20년 동안 다듬어온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가난을 넘어선 실존적 궁핍과 결핍이 낳은 관계의 균열을 환상적 시선으로 직시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의 근원적 생명력을 다룬 「구회별(九回星)」, 일상의 붕괴와 실존적 공포를 그린 「일과(日課)」, 주거 문제와 소통의 부재를 다룬 「부유층(浮遊層)」은 현대 사회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파고든다. 표제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편의점 불빛 아래 놓인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도시의 슬픔을 담아낸다.
이어지는 작품들 또한 상실의 비극을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서사로 풀어낸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치매 검사지라는 형식을 빌려 기억의 소멸을 추적하는 「중력의 소실」, 가난의 끝에서 마주하는 비릿한 현실을 묘사한 「은벚나무」, 색을 잃은 소년의 상실감을 붉은 망토라는 환상으로 시각화한 「빨강」까지, 작가는 삶의 어두운 구석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응시한다.
가난이라는 중력 아래서 인간이 어디까지 비루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이 어떻게 관계를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그늘진 이면을 아프게 응시하게 한다. 유리창 너머, 우리가 외면했던 삶의 진실이 최계옥의 문장을 통해 비로소 우리 곁에 도착한다.
출판사 리뷰
가난의 세밀화, 그늘진 삶의 기록
1. 가난의 세밀화: 그늘진 삶을 가시화하는 윤리적 실천 최계옥의 첫 소설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는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초상화와 사회상을 담아내는 풍경화를 동시에 그려낸다. 평론가 김나정은 이 소설집이 "보이게 만드는 것, 들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문학의 윤리적 실천에 닿아 있다고 평한다. 작가는 생계가 흔들리는 자영업자, 소외된 노인과 아이, 도시 난민들의 삶을 뭉뚱그려 보여주는 대신, 냄새와 소음, 벌레와 곰팡이가 들끓는 생생한 감각적 재현을 통해 ‘가난의 세밀화’를 완성한다.
2. 머물 곳 없이 떠도는 삶, ‘부유층(浮遊層)’의 공간 이 소설집은 가난이 어떻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록작의 무대는 쪽방촌(「일과」), 임대 아파트(「은벚나무」), 옥탑방(「부유층」), 지하 단칸방(「구회별」) 등 주거 기준 미달의 열악한 환경들이다.
특히 「부유층」은 집 없이 떠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난민들을 조명하며, 이사의 연쇄가 누군가를 쫓아내야만 유지되는 비정한 구조를 폭로한다. 「일과」 속 노부부의 하루는 경제적 빈곤이 어떻게 윤리적 궁핍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며,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리꽂히는 삶의 막막함을 형상화한다.
3. 물질적 가난을 넘어선 실존의 궁핍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 결핍에 그치지 않고 관계를 망가뜨리며 영혼을 갉아먹는다. 「벌레의 눈」과 「빨강」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이 낳는 운명 주의와 무력감을 잔혹 동화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미래를 꿈꾸기보다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나태해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다. 「중력의 소실」 등에서 보여주듯,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거대한 경제적 중력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작가는 가난에 들러붙은 '게으름'이라는 낙인을 걷어내고,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될 수 없는 가난의 내력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4. 헐거운 안전망 속의 흔들리는 가족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을 잃은 노인과 아이, 병자는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힌다.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비빌 언덕은 오직 가족뿐이지만, 그 가족마저 경제적 결핍 앞에 위태롭게 흔들린다. 작가는 성기고 낡은 우리 사회의 노동과 복지의 그물을 이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폭로하며,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증언을 기록한다.
5. 알아차림, 감지(感知)의 윤리학 표제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는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을 포착한다. 화자인 여자가 편의점 유리 너머 방치된 아이의 상처에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발견하고 감싸 안는 과정은 새로운 관계 맺기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감지의 실천’은 "너는 곧 나"라는 윤리적 각성으로 이어진다.
최계옥은 가난을 죽음처럼 두려워하며 외면해온 도시의 그늘을 가시화하고 가청화한다. 캄캄한 삶의 말미에 배치된 별, 눈, 배꽃, 은벚나무는 비록 찰나적일지라도 돈 없이 누릴 수 있는 기묘한 위로를 건넨다. 이 소설집은 혐오와 공허한 연민을 넘어, 먼저 보고 들어야 한다는 알아차림의 미학을 통해 우리 시대의 통증을 함께 앓으며 긴 여운을 남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계옥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200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과 2025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목차
구회별 009
일과 037
부유층 065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 093
중력의 소실 123
은벚나무 155
벌레의 눈 181
빨강 207
해설 김나정 231
작가의 말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