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서정적 산문”이라 규정했습니다. 그 순간, 한국 문학은 세계사의 중심에 당당히 이름을 새겼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품어 온 아픔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끈질기게 붙잡아 온 문학의 힘이 세계인의 가슴에 닿았음을 확인하는 벅찬 역사적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소식에 마냥 기분 좋았던 저는 교사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한강의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세계가 인정한 이 작품 세계를 초등과 중등 교실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느 날, 뜻밖에 제 휴대폰에 울린 짧은 알림에서 벼락처럼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채식주의자』 책 사주세요!”
제가 운영하는 독서인문 동아리에서는 한 달에 한 권, 학생이 스스로 고른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교사가 책을 선물합니다. 자발적으로 고른 책을 읽으며 세상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이 활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평소 조용히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따르던 아이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그 한 문장은, 저에게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교사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교실에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주변의 목소리는 기대보다는 걱정과 의문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 아이들 정서에 무거운 짐이 될까 봐 걱정돼요.” “주제가 민감해서 초등학생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저 역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제 안에는 더욱 또렷해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좋은 책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며, 언제나 다양한 해석의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세계가 감동한 작품을 정작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 희미하면서도 단단한 확신을 따라 한강의 전작(全作)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초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한강 작가의 유일한 그림책 『천둥 꼬마선녀, 번개 꼬마선녀』와 동화 『눈물상자』, 『내 이름은 태양꽃』을 발견하고 교실에 조금씩 스며들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은 우리들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초등 1학년에게 ‘노벨문학상’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강 작가의 그림책은 아이들이 부담 없이 세계적인 작가의 감성을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1학년 아이들의 특성을 살려 한강 작가의 그림책을 함께 읽고 세계적인 작가의 감성을 느끼며 그림책 만들기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림책 속 삽화를 활용하여 『선녀의 마음 하늘의 날씨』를 만들고, 작가의 의도에 주목해 『무서워도 괜찮아』를 완성했습니다. 두 개 학교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담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강 작가 작품 수업 요청은 전라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의 독서문화 체험 행사라는 귀한 자리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본 과정은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서 단원 8시간 운영에 발맞춰 6차시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2시간은 담임교사의 교실 연계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학생들과 만나기 전, 수업을 희망한 담임교사들과 네 시간에 걸쳐 프로그램의 의도와 지향점을 깊이 공유하는 연수 과정을 먼저 거쳤습니다. 이후 전남 지역 아홉 개 학교, 총 416명의 학생들과 그림책 『눈물상자』로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등장인물의 마음에 다가섰고, ‘나의 눈물상자’를 글로 쓰며 자기 삶의 경험을 용기 있게 꺼내 놓았습니다. 그림자 연극 활동은 작품을 생생하게 체화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강 수업의 가치를 알리고 더 많은 교실로 확산시키기 위해 공개수업과 수업나눔을 마련했습니다. 놀랍게도 1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함께했고, 이를 통해 수업 고민을 깊이 나누며 수업의 일반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귀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로써 한강 작가의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문장이 초등 교실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충분히 깊은 성찰로 확장될 수 있음을 명확히 확인했습니다. 특히 한려초 학생들은 6시간 프로그램 후에도 담임교사와 꾸준히 글쓰기를 연계하여 『우리들의 눈물상자』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는 결실을 맺었으며, 구례 지리산 자락의 작은 학교는 『눈물상자』에 이어 『내 이름은 태양꽃』 동화까지 독서인문선도교실 수업으로 구현하고 그 사례를 주변 교사들과 활발히 공유하는 아름다운 확산의 물꼬를 트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한수선(노벨문학상 한강작품으로 수업하는 선생님들)’ 연구회를 조직하여 초ㆍ중ㆍ고등학교는 물론 싱가폴 IB국제학교의 수업 사례까지 모아보면서 문학 교육의 보편적인 힘을 절감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1~3학년이 함께 하는 무학년 독서동아리 학생들과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정당한 걸까?
예술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파괴할 수도 있을까?
만약 영혜가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살았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상처와 상징으로 가득한 한강 작품에 대해 토론할 내용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교실에서 다루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과연 아이들이 이 무거운 서사를 감당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은 교과서 속에서는 날짜와 사망자 수로만 남아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고통 받는 개인의 목소리와 생생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소설 속 묘사의 수위가 높다는 우려가 있었고, 그 무게를 짧은 시간 내에 아이들과 함께 짊어질 수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코로나 이후 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이처럼 쉽지 않은 책을 읽고 깊이 사고하며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 두 가지 고민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업의 방향을 알려 주고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교사의 수업의도를 담은 안내문을 공지하고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책 내용을 충분히 읽은 후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와 연결되었나요?
역사적 사건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문학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그것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문학이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다른 매체와 비교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질 수 있을까요?
등 다양한 토의 토론을 거쳤습니다. 제목에 대한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학생이 “소년이 ‘온다’는 건, 그 소년이 지금 우리에게 걸어와 참상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문학이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역사의 고통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 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이라는 구체적인 역사를 다루면서도 ‘우리는 무엇과 작별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 묵직한 질문에 답을 찾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 달에 걸친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했습니다.
아이들이 제주의 아픔에 천천히 스며들고 자신의 삶과 연결하며, 마침내 자기만의 언어로 답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주로 비경쟁 토론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실에서의 뜨거웠던 대화는 『소년이 온다』 독서토론 대회라는 새로운 무대로 이끌었습니다. 단순한 교실 활동으로 끝내기에는 아이들이 보여준 성찰의 깊이가 너무나 값져서였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온다』와 같은 역사 문학 작품이 학교 역사 교육에 미치는 긍정적ㆍ부정적 영향”이라는 예선 주제부터 “국가 폭력에 대한 개인의 저항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본선 주제까지 학생들은 책과 함께한 성찰과 성장의 경험으로 전남독서토론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역사는 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질문”이라는 깨달음을 몸으로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나아가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 언어로 표현한 한강의 시집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시를 읽는 일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느낌을 인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임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작품을 선정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감각적 언어의 밀도’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가장 적합했습니다. 제목부터 시각ㆍ후각ㆍ촉각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이미지 간의 연결이 구체적이면서도 열린 구조를 가집니다. 특히 ‘서랍’이라는 사물과 ‘저녁’이라는 시간이 결합 된 제목은 이미 오감의 상징체계로 작동합니다.
시 수업은 현대시의 기본 구조와 구성 요소를 이해하는 이론 중심 수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를 오감으로 읽고 감각지도를 만드는 참여형 활동과 작품 속 화자와 인터뷰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수업의 핵심 목표는 시를 ‘감각의 언어’로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학생들이 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초ㆍ중ㆍ고 교실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수업은 점차 심화되고 폭넓게 연결되어 갔습니다. 특히 지난 여름방학, 2030연구회의 국제교류 활동으로 싱가포르 국제학교 IB 문학 선생님을 만나면서 저희가 진행해 온 ‘노벨문학상 씨앗수업’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IB 교육 현장에서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수년 전부터 이미 문학적 가치와 보편성을 인정받은 『소년이 온다』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외국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영어로 번역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토론했으며, 더 나아가 수많은 탐구학습 사례와 학생 글쓰기 작품까지 활발하게 연구되고 공유됨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강의 작품은 IB 교육과정의 MYP(Middle Years Programme:중등교육 과정)와 DP(Diploma Programme:고등교육 과정)를 아우르며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사례입니다. 『채식주의자』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규범의 갈등을 통해 학생이 인간성과 공동체의 문제를 탐구하도록 이끌고, 『소년이 온다』는 집단적 폭력과 기억, 인간 존엄이라는 더 깊은 주제를 다루며 비판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두 작품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자유, 인권, 기억, 치유 같은 글로벌 이슈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국제적 교실에서도 공감과 토론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희 연구회가 진행한 수업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 현장의 집단적인 노력과 깊은 성찰이 담긴 결과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서평 한강 작가님은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을 바빠서 못 읽는 시기엔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껴요. 책에 대한 허기가 져서 며칠 동안 정신없이 책을 몰아서 읽으면, 어느 순간 충전됐다, 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자신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읽고 나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다시 모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이 고백이야말로 아이들과 함께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가장 깊이 있게 말해 준다고 믿습니다. 한강은 책을 쓰는 사람인 동시에 평생 책을 읽은 독자였기에 그의 문장은 우리 마음을 움직입니다. 교실에서 한강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도 평생 독자로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과 토양을 마련해 주는 일입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이들이 언젠가 문학을 통해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경험을 하기를. 부서졌던 마음이 다시 모아지는 치유의 순간을 만나기를. 그리고 교실에서 시작된 독서, 토론, 글쓰기가 아이들의 평생을 관통하는 독서와 성찰의 길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노벨문학상은 단지 찬란한 영광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문학은 왜 이토록 절실한가?
문학은 어떻게 연약한 우리를 지켜내고, 인간의 존재를 가장 깊은 곳까지 이끌 수 있는가?
교육과정에서 한강 작품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위대한 성취를 넘어, 우리 교육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이 질문을 가슴속에 다시 심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 씨앗은 언젠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밀어 올리며, 마침내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이 되어 세상에 흩날릴 것입니다. 아이들의 가슴에 자란 문학의 씨앗이 결국은 서로를 연결하고 세상을 품는 단단한 숲으로 자라나기를 믿습니다.
우리 연구회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한강의 문학 작품이 아이들의 영혼에 작은 씨앗으로 심어지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먼저 경험했습니다. 이 책을 펼치는 모든 선생님과 독자님들의 가슴에 저희가 발견한 작은 씨앗을 소중히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