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개인주의자 선언』 10년 후,
첫번째 삶의 끝에서 써내려간 결심結審
법복을 벗기까지 결정적 장면들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쾌락독서』 등의 저서로 우리 사회와 법조 문화에 대해 예리하고도 균형 있는 시선을 전해온 문유석. 1997년부터 판사로 일해온 그는 2020년 23년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라마작가로서 삶을 택했다. 하지만 사회적 존경을 받는 판사라는 직업, 특히나 안정된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업하기까지 고민의 두께는 만만치 않았다. 두번째 삶으로 한 발을 내딛기까지 그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간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등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문유석은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로서의 삶을 강조해왔다. 여기서 ‘개인’은 근대적 개인, 즉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자로, ‘개인’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바탕이라는 생각이 자리한다. 동시에 법관으로서 그가 개인을 강조한 것은 법관의 독립성이야말로 재판의 공정성을 이루는 바탕이자 법치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토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법원장 재판 개입,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사법농단을 목격하며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무엇보다 스스로 몸담았던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세를 축소하기 위해 그를 ‘어용연구회장’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문건이 발견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내부에서 법원을 비판해왔되, 문제적 사건들의 당사자는 아니었던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당사자가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고, 이 ‘막다른 곳’에서 결심하기에 이른다. “주제에 맞지 않는 무거운 옷을 벗고” “온전한 한 개인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책임지는 삶을 살기”로.
‘결심’에는 마음을 먹는다는 뜻의 ‘결심決心’ 외에도 재판을 마무리한다는 뜻의 ‘결심結審’도 있다. 재판을 종결하면 더이상의 주장도, 증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직 판결만 있을 뿐이다. 1년 넘게 법원에 대한 미련 때문에 고민하고 망설였지만, 이제는 결심해야 할 순간이었다. 슬프게도 더이상 법원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남은 인생은 어린 시절의 꿈인 글쓰기를 하며 온전한 한 개인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나는 2020년 법원을 떠나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았으니 법조인조차 아니다.
_「프롤로그」, 11~12쪽
두번째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1부 「첫번째 삶과의 작별」은 오늘날의 사법개혁 이슈와 겹쳐지며 언뜻 사법부 수난사로 읽히기도 하지만, 한 조직에 오랫동안 헌신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작업 일지이기도 하다. 절대적 신뢰와 원대한 이상을 품고 조직에 입성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의 분노, 부속품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무력감, 이후에도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우려 등이 동시에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했고 바꿔놓고 싶던 법원을 “첫사랑”을 잃듯 떠나보낸 그. 두번째 삶에서는 뜻한바 온전한 개인으로서 삶을 실현할 수 있을까.
자유 vs. 의무, 해방 vs. 불안……
온전한 나로 분투중인 오늘의 순간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맞으려 한다”법관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칼럼 연재와 책 출간을 이어가며 작가의 삶을 병행해왔지만, 그런 그도 판사들의 일상적 고민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연재한 『미스 함무라비』가 드라마로 제작되고, 그 각본 작업까지 맡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문유석에게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즐거운 놀이”일 따름이었고 그는 ‘결정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평생 법관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 의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작가로의 전업은 순전히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였을까? 살인, 강간, 사기 등 수많은 범죄 사건을 마주하며 그는 다양한 인간의 삶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고민이 드라마작가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고백한다. “판사든 작가든, 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야기꾼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법관의 삶이 작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판사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수많은 ‘진짜 이야기’를 평생 들여다보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
세상에는 내가 상상조차 못한 끔찍한 빈곤과 폭력이 가득했다. (…) 첨예하게 다투는 살인 사건의 유무죄를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고민할 때는 정말이지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오판하면 합법적인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직이 판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겪은 진짜 경험이, 나를 뒤흔든 진짜 감정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작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_「나는 왜 전업작가가 되었나」, 174~175쪽
첫번째 삶을 이어받은 두번째 삶이었음에도 23년간 출퇴근 생활자, 월급 생활자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작가로 사는 삶은 모든 것이 예측 불허 그 자체였다. 재무, 시간관리, 노화, 창작 스트레스, 슬럼프 등의 문제가 닥쳐왔고 모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2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에서는 이 모든 시행착오가 펼쳐지는데, 프리랜서 창작자로서의 삶을 꿈꿔본 이들을 위한 예습 목록과도 같다. OTT 중독으로 긴 시간을 허비하고, 주식투자로 일희일비를 반복하며, 잠 못 이루는 갱년기를 통과하는 가운데 그는 점차 자신만의 생존법을 정립해간다. 고군분투 끝에 비로소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맞으려 한다”는 일성을 내뱉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바로 솔직한 인정이었다. “실패와 좌절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것. 조직 안에서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온전한 개인으로 살기란 만만치 않았고 드라마작가가 자리한 ‘사회’ 속 분투는 끝나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첫번째 삶에서는 없는 시간을 쪼개 글도 쓰고 여행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무의미하게 낭비하다가 결국은 또 마감에 쫓겨 바쁘게 산다. 첫번째 삶에서는 꽉 짜인 삶 속에서 자유를 희구했는데, 지금은 넘치는 자유를 감당 못해 스스로 타율과 구속을 만들려 한다.
_「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99~100쪽
주식시장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와 투자자들, 소위 전문가들이 그토록 장밋빛으로 예측했던 FDA 신청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 그날 나는 소싯적 읽었던 이문열 소설의 제목을 떠올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하지만 현실엔 날개 따위는 없었다.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자 날개가 녹아 떨어져버린 이카로스처럼 미친듯 오르던 주식 계좌는 그만큼이나 맹렬한 속도로 자이로드롭을 탔다.
_「경제적 자유 얻기2 #현실 편」, 123쪽
뼛속까지 프로 이야기꾼으로 살아간다는 것
드라마로, 흐려진 정의를 되묻는 여정을 시작하다!
첫번째 삶에 충실할 때만이 도래하는 두번째 삶에 관하여첫번째 삶이 두번째 삶을 열어주었듯 판사의 삶이 드라마작가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는 길다. 팔리는 스토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면서도 결국 작가 문유석이 향하는 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선의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는 이야기였기에. 곧 방영이 예정된 그의 드라마 「프로보노」(12월 초 tvN 방영)는 장애인 인권, 성폭력, 동물권, 이주민 인권 등 공익소송을 전담하는 공익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며, 이 역시 관련 사건을 재판하면서 대립하는 양쪽 입장을 고민했던 경험이 바탕을 이룬다. 법정을 무대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부딪치면서 힘겹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드라마로, 흐려진 정의를 되묻고자 한다.
이제는 헛된 욕심과 망상은 다 내려놓고 앞으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진 성실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여러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타고난 영웅보다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속물인 현실적인 인물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 느슨하지만 든든하게 연대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_「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쓸 것」, 188~189쪽
무엇보다 삶의 전환 과정에서 그가 내내 놓지 않은 질문은 ‘내 진짜 욕망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고, 첫번째 삶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도 ‘나 자신’이라고 토로한다. 양승태 대법원의 자신에 관한 인사 기록―“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공명심이 강하다”―을 두고, 과연 스스로 글을 써온 동력이 인정욕망은 아니었는지 자문한 끝에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그저 ‘이야기 속 멋진 캐릭터로 살아가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개인주의자 선언 10년 후, 나로 살 결심 뒤 문유석이 마주한 것은 ‘발가벗은 자신’이었다.
『나로 살 결심』은 대단한 두번째 삶의 모델을 제시하지도 않고,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을 담은 것도 아니다. 그저 삶의 후반부를 완전히 다른 서식지로 옮긴 한 사람의 자기인식과 고투, 성찰로 가득하다. 바뀐 삶의 자리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첫번째 삶과 두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문유석식 전업일지’라 할 만한 이 책은 두번째 삶은 첫번째 삶에 충실할 때만이 도래한다는 것을, 또한 두번째 삶의 실수와 좌절, 불안을 정직하게 쓸 때만이 새 삶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맡은 ‘일’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걸 하는 ‘사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닌데, 난 내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젊은 판사 시절의 나는, 실은 상당히 거창한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글로 적자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지지만, 아이고, 나이 오십 넘어서 창피할 건 또 뭔가 싶기도 해서 고백하노니,
나는 법원을 바꿔놓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를 바꿔놓고 싶었다.
_「나는, 바꿔놓고 싶었다」
그제야 비로소 진짜 내 주제를 파악했다. 나는 대법원장 앞에서도 웃으며 재치 있게 뼈 있는 충언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전해에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주최하는 한 행사에서 건배사를 하면서 농담처럼 “왜 자꾸 젊은 판사들한테 제대로 못할 거면 사표 쓰고 나가라고 무섭게 그러시냐, 그 친구들은 아직 뭘 잘못할 만큼 법원에 오래 있지도 않았다. 새해에는 나가라고 하실 거면 고참들부터 좀 나가라고 하셨으면 좋겠다”고 한마디하여, 참석한 고위직 판사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며 고소해하기도 했었다. 칼럼을 쓰고 책을 쓰고 드라마를 쓰는 것도 내 나름대로는 법원과 시민사회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여 법원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궁중의 광대였다.
_「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