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밤이 되면, 박물관의 유물들은 어디에서 잠들까요? 대부분은 불 꺼진 전시실이나 잠긴 수장고를 떠올릴 겁니다. 유리 진열장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천 년의 시간을 견디는 모습이 익숙하지요. 하지만 프랑스 작가 질 바움과 그림 작가 레지 르종크는 박물관의 밤》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박물관 관리인 에드송 아란치스가 종을 울리며 마지막 관람객들에게 다가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뜻밖의 제안을 하지요. “박물관은 이제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가장 사랑하는 전시품을 하나씩 집으로 가져가세요.”
잠시 뒤, 박물관은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유물들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품에 안겨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며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조각상은 구멍가게 앞에 놓이고, 화려한 항아리는 골목길 한쪽에 자리 잡으며, 가면은 아이들의 놀이 속에 들어옵니다. 진열장을 벗어난 유물들은 더 이상 손닿을 수 없는 ‘보물’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존재로 바뀌지요.
이 기발한 발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201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가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자연사·인류사 박물관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약 2천만 점의 소장품이 사라졌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인골 ‘루지아’, 브라질 고유의 공룡 화석 ‘막사칼리사우루스’, 라틴아메리카 최대 곤충 표본 500만 점, 이미 사라진 원주민 언어의 마지막 녹음 자료까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인류와 브라질의 정체성을 증언하는 귀중한 기억이었지요.
이 화재는 사실상 ‘예고된 재난’이었습니다. 재정 지원 삭감, 노후한 전력 설비, 고장 난 소방 시스템…. 박물관 직원들의 경고는 묵살되었고, 결국 ‘지식의 궁전’은 국가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희생되었습니다. 《박물관의 밤》의 헌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을 기억하며.”
그림책 속 관리인은 유물을 안전한 곳에 옮기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국가와 제도가 독점해 온 예술을 공동체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행위에 대한 묵직한 은유로 읽힙니다. 사실 유럽의 유명 박물관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입니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을 ‘국가의 보물’로 전시하며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화려한 전시품의 그림자에는 약탈과 불평등의 흔적이 늘 드리워져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문화재 반환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밤》에서 불타 무너진 건물과 흩어진 유물은, 그런 독점 구조가 무너지고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처럼 읽힙니다.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예술의 해방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만약 집 근처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어 가장 아끼는 책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다면?” “박물관의 공룡 화석은 원래 누구의 것이었을까?” “예술은 진열장 속에 있을 때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할 때, 언제 더 빛날까?” 이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예술과 제도의 본질을 되묻게 합니다. 박물관 진열장 안에 갇힌 예술은 우리의 골목과 교실, 광장에서 더 생생히 살아날 수 있을까요?
박물관 지킴이의 이름이 ‘펠레’인 이유관리인의 이름이 ‘에드송 아란치스’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브라질 축구 전설 펠레의 본명이지요. 변두리 빈민가 소년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펠레는 브라질에서 가장 민주적인 문화, 즉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작가는 마지막 관리인에게 펠레의 이름을 주며, 예술 또한 특정 계급이나 제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해야 할 대중의 것임을 전합니다. 오늘날 박물관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싼 입장료, 도심에 집중된 입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화적 장벽…. 여전히 많은 것들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가로막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오늘날 세계 곳곳의 박물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박물관은 ‘박물관 힙’이라 할만큼 화제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뜻밖의 이유로 젊은 세대의 ‘핫플’이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아이돌 문화가 결합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덕분이지요. ‘케데헌’을 통해 유물과 아이돌 세계관이 연결되자, 박물관은 단숨에 살아 있는 무대로 바뀌었습니다. 팬들은 전시실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유물을 스토리 속 캐릭터처럼 소비하며, SNS를 통해 경험을 확장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오늘날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이제 관람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닙니다. 참여하고, 공유하며, 경험 속에서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냅니다. 《박물관의 밤》 속에서 유물들이 일상으로 흩어지는 장면이, 한국의 박물관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박물관의 밤》은 불타 무너진 박물관을 보여주면서도, 그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상상을 피워 올립니다. 그것은 박물관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다시 묻고,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입니다. 이러한 제안은 아이들에게는 흥미롭고 조금은 낯선 상상으로, 어른들에게는 제도와 권력의 그림자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로 다가옵니다.
《박물관의 밤》이 던지는 질문은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술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호흡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박재연 (번역자, 아주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 수상 및 도서 Prix Libbylit 2021 – Mention du Jury (심사위원 스페셜 멘션)
벨기에 아동문학 비평가협회(IBBY Belgique francophone) 주관의 아동문학상. 2021년 심사위원 특별언급
Selection Ricochet (리코셰 선정도서)
프랑스 청소년·아동문학 전문 플랫폼 Ricochet(Institut francais de l’education – Centre national de la litterature pour la jeunesse) 추천 도서 목록에 공식 등재.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2022년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
◎ 독자들의 찬사 “읽어주다가 내가 먼저 울었어요. 박물관의 불은 꺼졌지만, 인간의 온기가 느껴졌어요.” (we****21)
“책 뒷부분에 박재연 교수님의 설명글을 보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 참 좋았어요.” (esd****)
“아이에게 읽어주던 남편이 ‘이거 어른 책인데?’라고 하더라구요.” (jh****2)
“그림이 압도적이다! 레지스 르종의 강렬한 색감이 이야기의 감정을 완성한다” (mo*****)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며 ‘잃어버린 것과 다시 살아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책.” (h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