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개인적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가족과 교회, 학교, 사회를 거쳐 역사적 사건까지 포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잊힌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사람들과 교감하며, 구체적 사례와 인터뷰, 자료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사랑의 흔적을 기록했다.
저자는 사랑과 미움, 생과 사의 경계에서 흔적을 더듬으며 ‘경천애인’의 가르침을 중심에 놓는다. 신앙과 삶의 체험 속에서 사랑은 공허이자 십자가였고, 동시에 치유와 관계 회복의 길이었다. 그 속에는 5·18과 같은 역사적 고통, 청춘들의 항거와 희생, 그리고 일상의 애증이 함께 담겨 있다.
‘스쳐간 사랑’과 ‘남겨진 사랑’을 지나며 발견한 진실은 사랑과 증오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이다. 집과 학교, 교회를 오가며 걷고 또 걸은 길 위에서 저자는 사랑을 찾는 구도자가 되어,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삶과 정치, 공동체를 성찰하는 기록으로 남겼다.
출판사 리뷰
신앙이란 언어로 풀어낸 ‘스쳐간 사랑’과 ‘남겨진 사랑’
하고 싶은 사소한 말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이 사소한 이야기는 결코 개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를 스쳐간 여러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가족의 이야기, 교회와 학교의 이야기, 식이가 속해 있던 국가 사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 잊힌 이야기였으나 되살아나 그분들과 교감을 시도해 본다. 그 대화를 기억으로 더듬어 하나로 모아 『사랑이 스쳐간 자국』을 열어 보련다.
이 책은 장마다 지닌 사건의 내용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마치 퍼즐을 맞추듯 내용의 흐름을 잡아 사건을 재구성하였다. 일부는 인터뷰를 통해 간접 체득하고, 다양한 자료를 참조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식이의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울면 왜 우느냐고 지적하는 모진 사회다. 그래서 식이는 사도 바울의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 12:15)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이면 나와 다른 사람이다. 하나가 되면 가족이다.” 결혼식에서 흔히 듣는 청춘 남녀의 격려사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 영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사랑이다. 주면 받고, 받으면 주어서 남는 것이 없는 그것이 사랑이다. 더해도 빼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불변의 사랑, 이것이 참사랑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허’(空虛)라 했을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십자가’(十字架)로 보여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 밑에서 눈물을 흘리는 거룩한 모성애를 결코 잊지 마라. 총부리를 겨누며 탱크를 앞세우고 살육을 자행하던 그 무지막지한 5·18 계엄군과 군화 발의 짓밟힘 속에서 항거하던 꽃다운 청춘들이 되살아난다. 겁에 질려 말 한마디 못하고 숨소리조차 내쉬지 못하던 주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그곳에 사랑의 숨결이 있었다는 말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누군가가 하얀 소복을 입고 가벼운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날리는 것이 사랑의 증표다.
식이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자신이 먼저 치유되기를 기대하며 살았다. 무엇이 치유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식이의 이야기는 일관되게 ‘사랑이 스쳐간 자국’으로 가득하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가 바라는 ‘치유’란 사랑이 주는 폭넓은 이해와 관계 회복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식이는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엄마가 물려준 하나의 교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데, 이는 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랑이다. 처음에는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훗날 하나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식이는 커가면서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고,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던 미움과 증오,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강렬한 사랑을 알고 싶었다. 자기 주변에서 스스로 묵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롭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이 있다. 알 수 없는 자신의 감정 뒤에 가려진 참된 사랑이 언제나 본인 곁에 있는데, 이를 왜 뒤늦게 깨닫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는 말이다.
“미움은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미움에 들어 있다. 미움의 사랑은 죽음이다. 죽어야 다시 산다. 살아야 죽는다.” 사랑과 미움, 미움과 죽음, 생과 사는 결국 하나란 말인가? 철이 들면서 사랑의 이면에 숨겨진 증오와 애증이 다른 또 하나의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스쳐 지나간 사랑’이었다. 어느 때는 식이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의 깊은 상처가 흔적으로 남기도 했다. 이는 ‘남겨진 사랑’이었다. ‘스쳐간 사랑’과 ‘남겨진 사랑’의 터널을 지나서야 남은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랑과 증오는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에는 분명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힘이 있다. 그런데도 식이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식이의 생활 터전은 집과 학교, 그리고 교회였다. 그곳을 오가며 그저 걸었다. 사랑을 찾는 하나의 구도자가 되어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걸으며 외웠다. 걸으며 내일을 설계했다. 그래서 대학에 갔다. 격전지 대행진도 했다. 정치가 왜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서술하려 한다.
「한 송이 흰 백합화」는 6·25 전쟁 때 대구 피난 시절의 작품으로 작사 김호(金湖), 작곡 김성태로 알려졌으나 김성태의 아호(雅號)가 김호(金湖)이기에 동일인이다.
식이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에 깊이 박혔고, 그 후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당시에는 남녀 합반을 하더라도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성별을 구분해 앉혔다. 식이는 통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천사처럼 보였다. 넓직한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예뻤다. 하지만 함부로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마음만 있다고 남녀 교제가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예배당에서 남녀가 눈이 맞으면 장로님들로부터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4장 _ <1. 더 넓은 곳> 중에서
“식이는 밀린 수업료를 언제까지 낼 수 있지?” 오늘따라 깡마른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한국인을 옥죄어 세금을 착취하는 일본 순사같이 보였다. 아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룹 과외를 하고 있는 당사자였다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오늘 오후 수업은 빼먹고 집에 가서 수업료를 마련해 갖고 오너라. 종례 시간까지 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무작정 집에 간다고 없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학교에서 식이가 살고있는 평화동 집까지 갔다 오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잘하면 종례 시간 전에 돌아와 한두 시간은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다 보니 식이 말고도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보통 한 반에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한 아이들이 7~8명은 되었으니….
“할머니이~ 나 왔어요!” “아니! 식이 아니냐?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책가방은 어데 두
고?” 할머니는 반색을 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식이는 수업료 때문에 쫓겨 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못했다.
4장 _ <3. 돈 없는 서러움> 중에서
“주여! 기도의 문을 열어주십시오”를 반복한 지 10여 분이 지났을까? 기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기도의 문을 통해 식이가 다른 식이의 참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바울이 말한 ‘내 안의 나’였다(Das ist Ich in mir). 식이 눈앞에 펼쳐진 기도의 활동사진에 보이는 그 자신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고 바리새인이고 위선자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오면서 교회 청소를 하여 최 전도사님께 칭찬받은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 일은 칭찬받기 위해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한 것들이었다. 드디어 자신을 제3자로 볼 수 있게 되었다.
4장 _ <5. 회개와 거듭남>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배경식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을 거쳐 은광교회 교육전담 목사와 영등포공업고등학고 교목으로 사역하다가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1980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독일어 어학연수, 괴팅겐에서 고전어 시험을 치른 후 튀빙겐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지도하에 1988년 “요한 토비아스 베크의 종말론”(Eschatologie bei J.T.Beck)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남부지방한인교회 협동목사, 에어링엔, 밤베르크 교회 담임목사 사역 후 귀국하여 호남신학대학교와 장로교신학대학교 강사를 거쳐 한일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조직신학회 학회장을 지냈으며 경건신학연구소의 총무, 봉상교회의 교육목사 그리고 캄보디아 선교사로 바탐방신학교 총장 사역을 했다. 현재 〈복된말씀〉 총무이며 세종주님의교회 협동목사이다.저서로 『신학과 응답 ― 우리가 만들어가는 신학』(2014), 『칼빈의 구원신학과 경건한 삶』(2009, 공저), 『라틴어 교재』(2008), 『신학과 성령』(2006), 『기다림의 신학』(2004), 『창조와 생명』(2002), 『경건과 신앙』(1998)이 있고, 칼빈과 조직신학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목차
소설을 쓰며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담아 저자 배경식
4╻장 걸으며 생각하기
1. 더 넓은 곳
2. 콩콩 팥팥
3. 돈 없는 서러움
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5. 회개와 거듭남
6. 삐빠빠 룰라(Be-Bop-a-Lula)
7. 군계일학
8. 꼬리가 아닌 머리
5장╻예와 아니오
9. 대학 사춘기
10. 눈감 땡감 선거
11. 10월 유신과 기독학생
12. 사랑의 흔적
13. 회장 선거와 쌍쌍 파티
14. 교회 쥐
15. 지도자의 외길
6장╻봄 봄 봄
16. 뿌린 대로 거두리라!
17. 격전지 순례 대행진
18. 처제여, 돌아오라!
책장을 닫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