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유일한 헌정사(憲政史)인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고대 아테네 170여 년의 정치 변천을 기록한 작품으로, 그저 단순한 역사 기술서가 아니다. 권력의 재편, 제도의 전환, 그리고 시민이 정치에서 이탈할 때 벌어지는 일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실제 적용례이자 민주주의가 제도의 형식을 갖추었을 때조차 어떻게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집이라 할 수 있다.
선동, 족벌화, 책임 회피, 무관심 등 고대 아테나이의 정치는 오늘날 우리의 거울처럼 읽힌다. 이번 출간은 단지 고전의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냉소와 제도적 피로에 깊이 잠긴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시민이 스스로를 통치자이자 책임자로 여겼던 시기의 기억을 불러낸다.
“정치는 누구의 것인가?”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출판사 리뷰
시민이 정치를 포기할 때
역사는 어떻게 쓰이는가
“뭔가 명확히 매듭지어지고 있지 않다. 이어지는 논의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어떤 주장을 덧붙이고 싶었을까? 영원한 숙제다.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텍스트가 발견되지 않는 한!”
김재홍,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그린비, 2023)의 마지막 주석
‘헬라스 158개의 정치체제’의 자료 집성집!
내란을 기도하거나 헌정 질서를 유린한 자는 사형에 처했다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이 표준적으로 인용하는, 벡커(Immanuel Bekker)가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수사가 키케로, 역사가 플루타르코스, 사전 편찬가 하르포크라티온과 폴룩스, 비잔틴의 문인 포티오스 등 여러 저술가에 의해 언급되고 인용되어 왔음에도, 대략 6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혼란기에 텍스트가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된 이후 근대까지 겨우 「단편」의 형태로만 그 내용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라는 제목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은 하르포크라티온 등에 의한 인용으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을 뿐이다.
3세기경의 인물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언급된 143개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서 목록에는 『158개 도시(국가)의 정치체제: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 및 참주정』이라는 저서가 나온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논의의 대단원을 마치는 가운데(제10권 제9장 1181b15~24) ‘정치학’ 프로그램을 예고한다. ‘다양한 법과 정치체제에 대한 자료 수집’, 즉 ‘정치체제의 집성’에 근거해 정치학의 과제 연구를 실행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체제의 자료 집성’은 앞서 언급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저서 목록에 나오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가 고대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본격적으로 학문적 입장에서 정치체제를 다룬 ‘정치체제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고대에 이런 종류의 저작은 아주 드물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된 “기록 수집된 여러 국가의 정치 제도들”이 플라톤의 『법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현실적 정치체제’를 둘러싼 선행 연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실증적인 연구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분야를 미개척 분야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도’ 아래 편찬된 ‘158개의 헬라스 정치 제도들’에 관한 저술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단편으로만 확인되던 고대의 텍스트
1400년 이후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다!
이 책을 비롯한 158개의 정치체제를 논한 작품은 이후 여러 곳으로 파편적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고대의 저작 여기저기에 많은 인용으로 남았으며, 그중 68개국의 223편에 달하는 인용 단편은 로제(V. Rose)가 편찬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 책으로부터의 인용으로 여겨지는 「단편」은 91편에 이르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고대 문헌 학자들은, 이러한 몇 개의 「단편」에 의지해서 이 책의 전체 모습을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879년에 이집트 파이윰(Fayum)에서 하나의 파피루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파피루스가 베를린 국립이집트박물관에 의해 취득되고, 다음 해에 공표된 사본이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의 일부임을 밝혔던 사람은 베르크(T. Bergk)였다. 하지만 이 베를린 파피루스(P. Berol. 5009)는 불과 두 장으로 앞뒷면에 쓰인 것이 전부여서, 책의 전체 모습을 보여 주기에는 너무 단편적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891년 1월 19일자 영국 일간 신문 「타임스」는 최근 이집트에서 대영박물관이 입수한 파피루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사본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런던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이 사본(P. Lond. 131)의 발견으로 단편으로만 알 수 있었던 이 책의 텍스트가 놀랍게도 대부분 온전한 모습으로 1400년이란 시간을 건너뛰어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텍스트가 발견되지 않는 한!”이란 말이 현실에서 실현된 셈이다.
아테나이 민주정의 성립과 제도 운용이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속속들이 기록되어 있는 책
고대 헬라스 역사 연구의 필수 사료!
이 책의 제목 속 ‘정치체제’(politeia)는 ‘시민의 권리, 시민권’, ‘시민의 공적인 삶과 정치가의 일로서 정부와 행정’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가의 공적인 제도와 조건’을 말한다. 오늘날로 치면 한 나라의 공적 질서와 행정, 시민의 권리, 사법제도, 통치 구조 전반을 규정한 ‘헌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제제의 질서’를 파괴하는 내란(內亂)을 기도하거나 일으키는 경우, 또 공적 질서를 해치는 정해진 법률을 위반하게 되면 사형을 당하는 예가 이 책에도 여러 번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체제를 파괴하거나 헌정(憲政) 질서를 어지럽히면 최고형에 처하는 점은 변함이 없다.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라는 작은 작품이 고대 헬라스 역사 연구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19세기 말에 ‘런던 사본’이 발견된 것을 기점으로 해서 아테나이 역사뿐 아니라 헬라스 정치체제 전반의 연구가 크게 변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아테나이 민주정의 성립과 그 제도 운용의 실제를 극명하게 기록한 이 책은 다른 사료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야코비(F. Jacoby)에 따르면, 고대의 정치체제론(politeia)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체제비판이나 정치개혁의 선전을 목적으로 쓰인 정치적 정치체제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 국가를 논한 철학적 정치체제 이론으로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기존의 정치체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서술한 학문적 정치체제론이다. 그러한 구체적·현실적 경험의 바탕 위에서 쓰인 책이 바로 이 책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유일한 헌법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병리를 묻는다!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유일한 헌정사(憲政史)이다. 고대 아테네 170여 년의 정치 변천을 기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기술서가 아니다. 권력의 재편, 제도의 전환, 그리고 시민이 정치에서 이탈할 때 벌어지는 일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실제 적용례이자 민주주의가 제도의 형식을 갖추었을 때조차 어떻게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선동, 족벌화, 책임 회피, 무관심 등 고대 아테나이의 정치는 오늘날 우리의 거울처럼 읽힌다. 이번 출간은 단지 고전의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냉소와 제도적 피로에 깊이 잠긴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시민이 스스로를 통치자이자 책임자로 여겼던 시기의 기억을 불러낸다.
“정치는 누구의 것인가?”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고 무너진 체제의 내부를 보여 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묻게 만든다.
솔론은 국정의 전권을 장악하자 신체를 저당 잡는 대부를 금지하고, 그로 인해 현재에서뿐 아니라 장래에도 인민을 자유롭게 했다. 또 여러 입법을 실행해서 사적이며 공적인 부채의 탕감[끊어 냄, 무효화]을 단행했다. 이것은 [부채의] 무거운 짐을 떨쳐 냈다고 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 내려놓기’라고 불리고 있다.
솔론은 국가가 당쟁을 일삼으면 시민 중에 무관심으로 해서(dia rhathumian) 벗어나는 자가 있는 것을 보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가 당쟁에 있을 때 [양쪽 중] 어느 당파에도 가담하지 않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박탈하고 시민의 권리를 상실케 한다고 규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페이시스트라토스가 호위대를 요구했을 때, 솔론이 반대 의견을 말하며, 자신은 어떤 사람보다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보다 용감하다고 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정을 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보다 지혜로우며, 눈치채고도 묵과하는 자보다 용기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민회를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택 문 앞에 병장기를 내걸고, 자신은 지금까지 힘이 닿는 한 조국을 도와 왔고(이때 그는 이미 상당한 고령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동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북동부 칼키디케 반도 스타게이로스(Stageiros) 출생. 별칭으로 ‘스타게이로스의 사람’으로 불렸다. 마케도니아의 왕 아뮨타스 3세의 시의(侍醫)였던 아버지 니코마코스 덕에 어린 시절 펠라의 궁전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7세가 되던 기원전 367년 아테네로 간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플라톤이 죽는 347년경까지 20년 동안 플라톤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한다.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아의 새 원장이 되자 몇몇 동료와 아테네를 떠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에 의해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위탁받은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원정을 준비하던 335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아폴론 신전 경내에 뤼케이온이라는 학원을 설립한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아테네에 반 마케도니아 기운이 감돌기 사작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 칼키스로 갔고, 이듬해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저술들을 주제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논리학적 저작으로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 『토피카』,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등이, 이론철학적 저작으로 『자연학』, 『형이상학』, 『혼에 대하여』 등이, 실천철학적 저술로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대도덕학』 등이 전해진다. 또한 언어학적 철학 저작인 『수사술』과 예술 이론적 저작인 『시학』이 전승되었고, 생물학 관련 작품으로 『동물 탐구』,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동물의 운동에 대하여』 등도 전해진다.
목차
일러두기┃5
『정치학』은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에 의존하는가?┃7
_ 정치학과 윤리학의 연결고리┃7
_ 런던 사본의 발견에 대하여┃10
_ 문체상의 몇 가지 특징┃14
_ 작품의 연대에 대하여┃15
_ 이 책의 저자에 대하여┃17
제1장 퀼론의 음모와 실패. 알크메온 가문의 추방┃30
제2장 솔론 개혁 전야의 당쟁. 헥테모로이의 어려운 처지┃33
제3장 고대의 정치체제┃36
제4장 드라콘의 정치체제┃41
제5장 솔론이 조정자가 되다┃45
제6장 부채의 탕감의 단행┃48
제7장 솔론의 재산정치┃51
제8장 솔론의 입법┃58
제9장 솔론의 정치체제의 평가┃63
제10장 도량형과 화폐의 개혁┃66
제11장 솔론 국외로 떠나다┃69
제12장 솔론의 시와 그의 정치사상┃71
제13장 솔론 이후의 3당파에 의한 정쟁┃76
제14장 페이시스트라토스 최초의 참주정. 그 추방과 복귀┃81
제15장 페이시스트라토스 참주정 확립. 시민의 무장 해제┃85
제16장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정치와 인격┃88
제17장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죽음과 아들들 ┃92
제18장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히파르코스를 암살┃94
제19장 힙피아스의 참주정이 타도되다┃98
제20장 민중의 봉기와 정권 장악. 클레이스테네스 민중의 지도자가 되다┃102
제21장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새로운 부족제와 500인 평의회┃105
제22장 도편추방의 제정과 그 사례. 테미스토클레스의 해군 건설과 살라미스의 해전┃111
제23장 아레오파고스 평의회 국정 지도. 델로스동맹의 성립┃118
제24장 아리스테이데스의 정책. 해상 지배와 인민들의 식량 공급┃121
제25장 에피알테스의 개혁. 아레오파고스 평의회, 실권 박탈당함┃124
제26장 국정의 이완. 아르콘 선임 자격의 변화. 페리클레스의 시민권법┃127
제27장 페리클레스의 정책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재판관의 수당 도입┃131
제28장 페리클레스 사후 정치의 타락. 아테나이의 정치 지도자들┃134
제29장 400인의 정권. 국가 구제안의 초안┃138
제30장 정치체제의 기초. 장래의 정치체제안┃143
제31장 당면한 정치체제안. 400인의 평의회┃147
제32장 400인의 과두정파와 전권을 가진 장군에 의한 지배. 화평 교섭 실패┃150
제33장 400인의 정권 붕괴. 5000인의 정치체제┃154
제34장 민주정의 회복. 패전과 30인 정권의 성립┃157
제35장 30인 정권의 독재와 공포정치┃161
제36장 테라메네스의 항의┃164
제37장 트라쉬불로스의 민주파, 정권에 반기를 들다. 테라메네스의 처형┃166
제38장 30인 정권의 해체와 10인의 지배. 파우사니아스에 의한 화의와 화해 ┃168
제39장 화해의 조건. 과두정파 시민의 엘레우시스 이주 규정┃171
제40장 아르키노스의 정책과 그 평가. 화해의 최종적 성립과 민주정 재건┃176
제41장 고대 이래의 국제 변혁에 대한 총괄. 민회 수당의 변천┃179
제42장 시민권 등록과 견습병의 훈련┃182
제43장 500인 평의회. 민회의 일정과 의사┃186
제44장 당번 평의원과 의장단┃192
제45장 평의회의 재판권과 자격 심사권. 예비적 심의의 원칙 ┃195
제46장 평의회에 의한 군선 건조와 공공건축 심사┃198
제47장 아테나 여신 회계관. 계약관과 국가의 세입┃200
제48장 수입 관리와 국가 재정. 회계 검사 위원. 집무 심사관┃204
제49장 평의회에 의한 기마, 기병, 신체장애인의 자격 심사┃207
제50장 신전 수축관. 시역 감독관┃211
제51장 시장감독관. 도량형 감독관. 곡물 감독관. 거래소 감독관 ┃213
제52장 ‘11인’. 소송제기관. 매달 소송┃216
제53장 40명의 재판관. 중재원. 동료단의 조상┃220
제54장 도로건설관. 회계 검사관과 집무 심사. 각종 서기. 희생 위원. 살라미스의 아르콘과 페이라이에우스의 구장(區長)┃226
제55장 9명의 아르콘과 그 자격 심사┃231
제56장 우두머리 아르콘의 직무┃235
제57장 바실레우스의 직무┃242
제58장 폴레마르코스 직무┃247
제59장 테스모테타이의 직무┃250
제60장 경기 위원. 올리브의 성목과 판아테나이아 축제의 상품┃256
제61장 장군. 부족 보병 지휘관. 기병 장관. 부족 기병 지휘관┃260
제62장 관리의 추첨 방법. 각종의 일당. 재임 규정┃265
제63장 인민재판소 재판관의 자격과 그 명패┃269
제64장 추첨기를 담당하는 자의 선출. 재판관의 법정의 분배┃274
제65장 재판관의 입정┃277
제66장 주재 관리와 법정의 조 추첨. 물시계와 투표구 담당자들┃280
제67장 심리의 개시. 물시계에 의한 변론 시간의 계측┃283
제68장 합동법정. 투표구를 이용한 판결 투표┃288
제69장 투표의 집계와 판결. 양형 판정. 일당의 지급┃292
상실된 첫머리의 단편┃295
헤라클레이데스에 의한 발췌┃301
참고문헌┃305
찾아보기┃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