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를 첫 책으로 극지동물 이야기를 해온 지 8년, ‘펭귄 박사’ 이원영이 『와일드: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로 돌아왔다. 이번엔 펭귄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극지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미생물에서 유인원까지 종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집 앞 가로수에서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깊은 바다(마리아나해구)까지 서식지도 가리지 않는다. 제목부터 『와일드』인 이 책은, ‘야생’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를 현장 삼아 그곳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온갖 동물의 분투기를 다룬다. 그 각양각색의 삶은 진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꿰어진다. 이 관점 아래선 생김새 하나 행동 하나가 모두 질문하고 해석할 코드가 된다.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동물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을 애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동물의 삶에 심정적으로 깊이 빠져들어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다. 연구 대상인 동물을 마주할 때면 늘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관계는 연구자와 연구종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여기엔 서로를 만나 관련을 맺는 과정이 수반된다. 나도 연구를 이어가다 보면, 구달이 그랬듯 관계를 맺게 된 동물들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가 있다. 과학 연구를 하는 사람이 동물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물행동학자가 동물과 관계를 맺지 않고 제대로 된 관찰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와 같이 펭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펭귄의 미래를 걱정한다. 남극에선 지구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펭귄 개체군도 변화를 겪고 있다.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의 밀림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극지동물을 연구하는 이들은 남극해 보호를 외치는 보전생물학자가 되기도 한다.
경쟁에서 승리한 암컷은 여러 수컷을 차지하는데, 짝을 지은 암컷은 둥지에 알만 낳아주고 곧 자리를 떠난다. 남겨진 수컷은 둥지에서 홀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운다. 그린란드 현장 조사 때 야외에서 처음 붉은배지느러미발도요를 보았다. 새끼와 돌아다니는 성체를 보고 당연히 암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캠프로 돌아와 도감에 실린 삽화와 설명을 보니 새끼들과 함께 있는 칙칙한 깃털을 가진 개체가 수컷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속으로 ‘도감에 오타가 났구나! 저자가 암컷을 수컷이라고 잘못 적었네’ 하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는 걸 확인한 건, 붉은배지느러미발도요의 생활사에 대해 알고 난 뒤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여러 동물을 관찰하며 다양한 형태의 짝짓기를 숱하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계에서 성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생물이 겪어온 진화의 역사이자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이며,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원영
야외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관찰과 기록을 직업으로 삼아 동물행동에 담긴 진화의 시간과 과정을 연구한다. 서울대학교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에서 까치 연구로 박사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동물을 지켜보고 있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새를 관찰하는 이가 되어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지은 책으로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물속을 나는 새』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 『펭귄의 여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