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은 왕이나 귀족 등 지배 계급만을 위한 음료가 아니었다. 평민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와인을 마시며 와인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와인을 즐겨 마시고 수준 높은 와인 문화를 발전시켰을까?’ 여기에는 ‘지리’, 즉 고대 그리스의 독특한 지형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대 그리스는 입지 조건 면에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확연히 달랐다. 이 지역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이나 이집트의 나일강 같은 큰 강이 없을 뿐 아니라 비옥한 평야도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산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독특한 지형에 달마티안의 검은 점처럼 좁은 평야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왕, 귀족 등의 지배 계급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토지를 독점한 채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좁은 평야를 소유한 평민 계급의 농민들이 천민이나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농사를 지어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바로 그 풍요로운 농민 계층의 사람들이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와인을 양조하고 즐겨 마시며 와인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가 발달했다. 지형 특성상 절대군주가 존재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에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 등 걸출한 철학자, 수학자, 의사를 배출하며 전대미문의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런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은 하나같이 와인을 좋아했다. 실제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 누구 못지않게 와인을 좋아하고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도 유명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와인을 약으로 썼는데, 해열・소독・이뇨・피로 회복 등 다양한 용도로 구분해서 사용했다.
― 본문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철인들은 왜 ‘물을 탄 와인’을 즐겨 마셨을까」 에서
여기에 더해 가나안 혼인 잔치 일화는 후세의 와인 생산과 제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유럽 중세 시대에 와인의 품질 향상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이들은 프랑스 부르고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가톨릭교회 수도회 중 하나인 시토회였다.
예수가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로 모든 하객이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낸 사실을 전제로 생각해보자.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냈다면, 무릇 예수의 뜻을 따르는 이들 역시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이들은 예수를 본받아 좋은 와인을 양조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정신이 훗날 시토회 수도회에 깃들어 수도사들은 와인 품질 향상에 모든 힘과 시간, 지식과 경험을 쏟아부었다. 시토회 수도회의 종교적 열정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최고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인 부르고뉴의 위대한 포도밭이 개척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본문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은 왜 그토록 와인 양조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까」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나이토 히로후미
1961년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역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양사에서 동아시아사, 지리, 문화,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집필하고 있다. 저서로 『지정학으로 읽는 근현대사』, 『제대로 이해하는 영국의 역사』,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