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나는 마음일까, 몸일까?
우리가 마음과 뇌를 혼동하는 이유많은 사람들이 뇌가 진화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가치관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뇌는 ‘생물학적 기관’이지만, 마음은 ‘영혼’의 일이라는 오랜 믿음과 직관 때문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과학은 명확하게 말한다. “마음은 뇌가 하는 일(The mind is what the brain does).” 인공지능의 선구자인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의 이 말처럼, 마음은 초월적이거나 신비로운 무엇이 아니라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뇌의 작동 방식이다. 인간의 감정, 기억, 이타심, 직관, 편향 같은 현상은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운 미스터리가 아니다. 과학은 마음이 생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실체임을 점점 더 분명히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과 뇌를 혼동한다. 그 이유는 뇌의 작용을 의식하지 못하고 모든 감정과 선택을 ‘내가’ 주체적으로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반응이 무의식적인 뇌 회로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냥 느낌이 좋아서”, “내가 그렇게 결정했으니까”라고 말하며 설명을 덧붙인다. 예컨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뛴다. 우리는 ‘감정이 심장을 뛰게 한다’고 믿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반대로 맥박 변화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눈빛이 좋아서”라고 설명을 만든다.
뇌와 마음을 혼동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은 특별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정은 가슴에서 시작되는 것 같고, 생각은 영혼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은 단지 특별한 감정의 집합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선택된 생물학적 기능이다. 즉, 우리가 느끼는 충동, 공감, 공포, 기쁨, 판단력은 모두 자연선택을 통해 유리한 방향으로 전달되어 온 기능적 결과인 것이다.
《뇌과학의 마음 사전》은 이러한 인간 마음의 신비로움을 명확한 과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감정, 기억, 이타심, 지각, 편향, 상상력 등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마음의 작동을 뇌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설명하며,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생물학과 진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당신이 아는 것을 의심하라
일상 속 혼동하기 쉬운 마음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혼동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흔히 이성과 대립되는 감각, 즉 논리를 방해하는 본능적 반응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뇌과학은 감정을 전혀 다르게 본다. 감정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뇌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체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다. 다시 말해, 분노나 두려움은 무작위적 반응이 아니라 특정한 행동을 촉진하는 생존 메커니즘인 것이다. 접근 혹은 회피 반응을 유도해, 위협에서 벗어나거나 중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기억에 대해서도 오해는 많다. 우리는 기억을 과거의 재현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적으로 기억은 미래의 생존에 유리한 정보만을 선별해 저장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확인된다.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 전략을 세우기 위해 ‘잊는 것’ 또한 중요한 진화적 도구다.
이타적 행동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도덕 교육이나 사회적 훈련의 결과로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돕는 행동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실험에서는 한 살 영아가 낯선 사람이 펜을 떨어뜨렸을 때, 아무런 지시나 보상 없이 펜을 주워주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 실험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친사회적 동기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아기들은 자신과 비슷한 얼굴이나 말투를 가진 사람에게 더 신뢰를 보이고, 그런 이들을 더 도우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진화적 생존 전략의 결과다. 자기 집단과의 협력은 생존 확률을 높였고, 뇌는 이러한 행동을 강화해온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감정, 기억, 도덕성조차도 뇌의 작동 방식, 진화,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된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아는 일’은 단순한 내면의 성찰이 아니라, 뇌라는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뇌
더 나은 나를 향한 여정이 책의 저자 이상아 교수는 인간의 생애 주기별 뇌 인지 변화를 연구하는 뇌인지과학자다. 그는 우리가 단지 환경의 결과물이 아니라, 생애 초기부터 뇌의 민감한 변화에 따라 형성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훗날 손주인 나의 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스트레스가 태아의 뇌뿐만 아니라, 태아 내부의 생식세포(훗날 아이가 될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이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된다.
유아기는 감정, 주의, 기억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시기로, 반복적인 스트레스는 해마나 편도체의 구조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해마는 기억의 정확성과 관련이 있고,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데, 이 시기 스트레스는 두 구조의 기능을 왜곡시켜 향후 감정 조절과 학습 능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안정적이고 따뜻한 접촉과 양육은 후성적 변화를 긍정적으로 유도하며, 스트레스를 받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다. 단순한 스킨십만으로도 정서 발달에 유의미한 치유 효과를 준다는 연구도 있다.
청소년기에는 전전두엽이 완전히 성숙되지 않아 충동 조절이 미숙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와 환경 경험에 따라 전전두엽과 보상 시스템 간의 연결이 급격히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다. 이 시기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고, 어떤 삶의 방향을 선택할지를 결정짓는다.
노년기의 뇌는 어떨까? 많은 사람이 노년기의 뇌는 단순히 퇴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마는 노화에 취약한 구조지만, 뇌는 손상된 기능을 대체하거나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뇌 가소성(plasticity)의 힘이다. 많이 쓰는 회로는 강화되고, 덜 쓰이는 회로는 약화되지만, 뇌는 계속해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재구성한다. 노년기의 뇌 역시 여전히 학습할 수 있고,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며, 감정 조절에서 이전보다 성숙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현대의 인간은 단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생애의 각 순간마다 경험과 자극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뇌는, 마침내 ‘나’라는 존재를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능력을 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감정과 이성, 직관과 판단, 경험과 성찰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이끌 수 있다면,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인간의 뇌가 이룬 가장 깊고 따뜻한 성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