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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롬 이야기 1
북방문화·몽골어에 힌 오롬들
열린출판사 | 부모님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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ᄃᆞ랑쉬오롬(月朗峰)
소들이 어우러 노는 들판 가운데 오롬

ᄃᆞ랑쉬오롬은 이원조가 『탐라지초본』에서 ‘대랑수악大郞秀岳’이라 표기 하였다. 이는 제주어 ᄃᆞ랑쉬를 한자로 음차하였다. 월랑봉이란 명칭은 도랑쉬라는 말의 ᄃᆞ(ᄃᆞᆯ)를 달月로 표기하여 월랑봉月朗奉이라하였다. 그래 서 “ᄃᆞ랑쉬 굼부리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면 알에서 태어나듯 아름답다.” 라고 한다. 그러나 ᄃᆞ랑쉬오롬을 ‘월랑봉月朗奉’이라는 한자어를 만들어 낸 것은 기발하지만 전혀 아니다.
ᄃᆞ랑쉬오롬의 오류는 민속언어학자 김인호부터다. 그는 “ᄃᆞ랑쉬는 고 구려어 ‘달수리’의 변화로 ‘달’은 높다·귀하다 ‘쉬’는 봉峰의 뜻을 가진 수 리에서 ㄹ이 탈락되어 쉬로 변하여 ‘높은 산봉우리’ 뜻인 ‘달수리가 달 쉬’가 되었고 이유 없이 ‘랑’이 덧붙여졌다” 한다. 『오름 나그네』에서 이 를 인용하며 제주도·표지판·부로셔 등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으나 전 혀 근거 없는 엉터리다. 또한, 전문가를 자처하며 방송(교통방송 2021.10.4. 07시)에서 H라는 제주대 교수조차 위의 스토리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전 한다.
오창명 교수는 “대랑수악大郞秀岳은 ‘다랑쉬오롬’의 차자 표기로 ‘월 랑봉’ 또는 ‘다랑쉬’이며 ‘다랑쉬’는 고유어로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 학자적 양심을 밝힌다.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ᄃᆞ(ᄃᆞᆯ)’는 제주어 들판 이란 말이다. 제주에서 제일 산골인 ᄃᆞ리송당(조천읍 교래리, 구좌읍 송당리) 이다. 역사에서 ᄃᆞ리(ᄃᆞᆯ)는 곧 제주어 들판이며 대구를 ‘달구벌大邱’이라 고 할 때 ‘달’과 같다. 달을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한 것이 월月이다. 또한 ‘ᄃᆞ리’는 한자로 ‘다리 교橋 자’로 썼다. 충청도 삽교는 삽다리, 전라도 학 교는 학다리라 하는데 이곳들은 평야(들판) 가운데 마을이다.
ᄃᆞ랑쉬오롬은 순수한 제주어이며 고구려어가 아니다. 필자는 1995년 도부터 만주에서 20여 년간 대학교수로, 그 후 타이완·태국에서 중국어 로 한국어를 10여 년간 가르쳤다. 은퇴 후 필자는 제주오롬을 탐방하는 중에 오롬의 명칭·어원·유래와 해설이 잘못된 곳들이 많음을 보고 2020 년부터 제주 일간지에 ‘오롬스토리’를 6년째, 연재하고 있다. ᄃᆞ랑쉬의 ‘ᄃᆞᆯ/ᄃᆞ리’는 들판으로 고구려 ‘높다, 귀하다’는 뜻이 아니다. ‘쉬’는 ‘오 롬’이 아니라 ‘소牛’다. 제주어로 ᄆᆞ쉬(마소)의 ‘쉬’는 ‘소’이다. 또한 ‘랑’은 한어[中國語]사전에 ~격조사格助詞, ~적결합的結合, 어울릴 화和의 의미和的 意思였다. 즉 ‘ᄃᆞ랑쉬오롬’은 ‘소들이 어울려 노는 들판 가운데 오롬’이란 말이다.
『연변취담』이란 책에 “훈춘시 경신진 두만강 하류의 제일 높은 ‘운대 산(460.3m)’은 수리(수리개·솔개/제주어: 소래기)가 산 정상에 유유히 날아다녀 서 만주족들이 운대산이라 한 것을 조선족들은 ‘수리봉’이라 부르게 되 었다”고 한다. 필자의 이모님은 90세인데 도랑쉬오롬에 대해서 묻자 “옛 날 ᄃᆞ랑쉬에는 나무가 없었고 너나없이 소를 방목하고 테우리[牧童]들이 말 타고 ᄆᆞ쉬를 살폈다.”고 한다. ᄃᆞ랑쉬는 세화리 남쪽에서는 좌우대칭 으로 여인의 젖무덤같이 곱다. 그러나 동쪽에서는 뒤통수가 나오고 서쪽 에서는 앞이마가 튀어나오고, 남쪽에서는 한쪽이 높은 미군 베레모처럼 보인다.
ᄃᆞ랑쉬 탐방로 입구에는 관리소와 오롬을 소개하는 전시관과 주차장, 화장실, 정자도 있다. 탐방로는 나무계단·마닐라삼패드가 깔렸다. 해발 382.4m, 비고 227m로 제주 동쪽에서 가장 높은데, 초보자들이 멋모르 고 오르다 고생한다. 원형 굼부리 깊이는 115m로 오롬 높이의 절반인 셈이다. 산굼부리(132m), 백록담 다음으로 ᄃᆞ랑쉬 굼부리는 세 번째로 깊 다. 어느 날 젊은이들이 굼부리로 뛰어내리자 노루들이 사방으로 뛰어갔 다. ᄃᆞ랑쉬 굼부리는 노루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ᄃᆞ랑쉬 정상 우쪽(西向)으로 보면 평대리 비자ᄀᆞᆺ과 돗오롬이 보인다. 앞 쪽(南向)으로 보면 송당리 주구물(죽은물) ᄀᆞᆺ자왈과 높은오롬이 보인다. 좌 쪽(東向)으로보면 ᄀᆞ는ᄀᆞᆺ(세화리) 넘어 종달리 용눈이가 보인다. ᄃᆞ랑쉬에 서 보는 능선은 곧 제주의 속살이요 신들의 거실이다. 제2전망대는 정상 북쪽 산불감시초소 부근에 있는데 김녕~한동 해변의 풍차들과 둔지오롬 이 보이고 앞에는 세화항구다. 맑은 날에는 바다 건너 추자도·완도·여서 도·거문도까지 보이고 돌로 만든 망배단望拜壇이 보인다. 숙종이 승하하 자 북쪽을 향하여 초하루 보름마다 분향하고 애곡했다는 홍달한의 전설 이 전해진다.

둔지오롬
몽골어 궤ГYВЭЭ 리 언덕 끝의 둔지дYнг

둔지오롬은 구좌읍 한동리 산40번지로, 해발 282.2m, 비고 152m, 면적 360,185㎡의 작지 않은 오롬이다. 이웃의 돗오롬은 비고 129m, 면적 430,425㎡에 비해 둔지는 뾰족하고 제법 가파르다. 그래서 생김새가 말굽형이라 하여도 남쪽이 조금 깎였을 뿐 원추형 같은 한라산 화산체 중의 하나인 측화산側火山이다. 제주오롬 분화구는 기저의 마그마가 약한 둔지봉 저녁 지반을 뚫고 나와 분출되어 생성된 것들이다. 제주오롬들은 이같이 화산 의 분출로 생겨났는데 둔지오롬은 북풍이 불 때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 마그마 흔적을 찾기는 어렵고 남쪽은 오롬이 파이며 마그마가 흘러 내렸다.
둔지오롬 입구는 비탈진 둘레길을 따라 오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 파른 북쪽 능선을 따라서 오른다. 이 오롬을 북쪽에서 오르며 내려다보 면 뱅듸坪岱里가 평평하게 해변까지 거침없이 쭉 뻗어 나간다. 서쪽으로 는 높은 구릉의 한동리가 보인다. 제주오롬 어디나 무덤들이 많은데 둔 지오롬도 그렇다. 둔지오롬 북쪽에는 필자의 외조부-외조모 묘가 있어서 낯익다. 둔지의 둔屯은 둔전·둔답을 말하며 주둔병의 군량미 자급을 위해 받은 논밭·땅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만주에서는 동네 지
19명으로 많이 쓰이며 지형적으로는 ‘도독한 동산’을 이루는 곳들이다. 또 한 아일랜드어 du′n, 스코틀랜드-게일어 du`n은 요새(성)로 모두 언덕 위 에 있다. ‘둔’은 그 자체가 요새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어에서도 이 말 의 의미는 유사하니 태초의 언어가 하나였음을 실감케 한다.
강원도 창도군의 ‘솔둔지’는 소나무가 많은 둔지(둔치), 서울 둔지방屯 芝坊은 조선 영조 때 한성 남부 11방 중의 하나로, 용산4가에는 둔지산 이 있어 이들은 둔전을 일구며 수비하는 ‘둔병’이었었다. 만주 용정시 개 산둔开山屯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다. 개산툰은 ‘산이 열 리는 곳에 자리 잡았다’는 말이며. 여기에 돌문처럼 서 있는 도문시 석현 石峴을 지나면 ‘뫼[山]’가 열리어 두 팔을 벌려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한동 개판모루 언덕 너머에 있는 둔지오롬도 이와 같다. 만주 땅에 봄이 오면 필자는 백두산 일대로 산나물을 캐러 다녔다. 일제 말엽(1943년) 이민한 남한 촌 석문石門鎭에 들어가면 전북촌, 경남촌, 충청촌, 원주툰 등 여덟 개의 조선족 둔촌(마을)에는 지금도 우리 동포들이 살아간다.
둔지오롬 석문이라 할 개판 마루는 윗한동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그곳 에 붉은 마그마 돌 동산이 우측에 있다. 필자의 외조부(유향좌수·리장·동명서 숙장)는 그 높은 언덕 마을에 제주에서 가장 깊은 25m의 우물을 파는데 암반이 나오므로 일본서 구해 온 다이너마이트로 발파하여 우물을 완공 했는데 지금도 한동 우물터에 공덕비가 남아 있다. 『제주군읍지』 제주지 도에 ‘둔지屯池’, 『조선지지자료』에 ‘둔지屯池’, 『조선지형도』에도 ‘둔지’로 표기한다. 이는 만주어 ‘둔дYнг’을 음차하였기에 제각각 한자로 쓰였다. 한동리 옛 이름 ‘궤ГYВЭЭ’는 몽골어로 ‘둑, 언덕’이다. 고려 때 목마장(다 루치: 목마총관부장)으로 몽골서 온 좌형소左亨蘇의 아들 좌자이左自以는 이곳 을 ‘둔지’로 받아서 궤리를 최초로 설촌하고 좌가장(목장)도 만들었다. 그 러나 ‘목호의 난’에 연루되며 한경면으로 피신했는데 여명연합군을 끌고 온 최영 장군 휘하들에게 죽임당하여 용수리 앞바다는 피바다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1454년 세종실록 ‘한성 지리지’에는 둔지산, 둔지미 마을, 둔지방으로 소개된다. 용산기지 안의 해발 70m, 작은 언덕의 둔지산은 높지 않은 둔 덕과 같은 ‘산’ 또는 ‘둔전屯田’으로 군량미 마련을 위해서 받은 토지였다. 용산의 둔지는 영조 때 한양 서남쪽으로 확대된 큰 지방이 되었다. 한동 둔지의 몽골어 둔дYнг은 ‘~의 절정에서, ~중에, ~고도로, 결과, 결말’의 뜻이다. 이는 ‘둔지’가 ‘궤ГYВЭЭ의 끝’에 있다는 말이다. 일제 시 120년 전 함경도에서 이주한 개산툰 마을은 북한 땅을 바라보는 두만강변에 있 다. 두만강변의 개산툰[屯], 압록강변의 강원툰(영경향)은 모두 강언덕 둔지 에 촌락을 이루었다. 또한, 국경이나 다른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곳들이 기도 하다. 한동의 둔지는 평지보다 높은 둔덕인 오롬 분화구에 이류구 들로 인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문희주
제주에서 나고 자란 본토인으로 1970년대 외항선 기관사로 다년간 항해하였다. 폐 결핵 3기로 하선 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 고 중국 모 대학의 교수와 학장 재임시에 만 주와 내몽골에서 20여 년간 북방지역을 탐사 했다. 태국에서 10여 년간 거주하며 한국어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2021년 귀국 시까지 코 디네이터로 외몽골과 중앙아시아, 연해주 등 을 수개월 간 머무르며 탐사하고 《제주문학》 등에 발표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 6년여 간 ‘제 주오롬’과 문화에 대하여 일간지와 월간지 등 에 기고하였다. 현재는 사단법인 제주오롬문화 이사장과 제 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오롬문화탐구반 교수, <삼다일보> 제주오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제주문화 키워드』와 『오롬 부르는 소리』 등 30권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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