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우생학은 이런 존재들을 만들려는 일종의 인공생명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우생학은 ‘비정상-열등-부적격’ 존재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폭력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우생학-정상/비정상-우월/열등-적격/부적격-몸(신체)’을 연결하여 인간의 여러 실존적 조건을 살펴보는 것은, 누가 정상 인간인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국가·사회의 본질과 그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책머리에 중에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과학이 태생적으로 사회 속에서 배태되고, 또 변형되면서, 사회와 과학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은 자연스레 가치나 이념을 적재한 채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소홀하게 다루지 않아야 한다. 골튼의 우생학도 과학의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바탕에는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를 깔고 있었고, 필연적으로 우월과 열등 / 선택과 배제라는 이념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는 나치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학과 정치의 부정한 동맹은 양자의 상보성에 기초해서 살피는 것이 중요하고, 이로써 정치나 이념에만 주목할 경우, 자칫 과학이라는 지식의 본질적 특징과 과학-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올곧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2장 과학과 이념 사이의 우생학 중에서
새로운 유전학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강조하며 소비자 우생학으로 발전하면서 생명의 정치경제학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완전성에 대한 인간 욕망과 결합하여 트랜스휴머니즘 유행의 바탕이 되고, 생의학 기술이 인간 진화를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대중적 판타지를 만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아이슬란드(Iceland)의 전 국민 의료 데이터베이스화 작업(DNA 바이오뱅크) 시도나 한국 정부의 소비자 선택 유전자 검사(DTC) 허용,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생물정보의 상업화와 재생의학의 발전, 그리고 최근의 신경 기술 과학은 중층적으로 연결되어, 우리를 새로운 우생학적 세상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이룬 지식의 성과와 그것의 응용이 정의와 평등에 부합하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할 순간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3장 우생학의 변신 :홀로코스트(Holocaust) 이후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호연
한양대 교수. 인문대학 미래인문학융합학부에서 융합 교과를 개발하여 가르치고 있고, 융합 전공대학 고전읽기 융합전공 주임교수와 HY 과학기술 윤리.법.정책 센터 선임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화학, 서양사, 과학기술사를 공부하고, 우생학(eugenics)史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융합적인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 관심은 우생학과 연관하여 정상과 병리, 고통과 치유, 교육, 보건, 복지, 법률 등 인간의 행복 실현을 위한 주제들에 있다. 지식의 사회적 환류와 지식인의 실천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융복합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대상을 위한 대안적 교육・상담・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