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푸드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를 운영하며 맞춤 케이터링, 팝업 매장과 각종 강연 등으로 대안적 먹을거리를 탐구하고 제시해온 안아라 요리 연구가의 산문집 《바지런한 끼니》가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안아라의 산문은 계절을 탐색하는 데 진심이다. 우리의 몸은 계절을 기억한다. 계절의 순환은 몸의 순환과 다름없다는 믿음으로 안아라는 제철 식재료를 다루고, 시절에 어울리는 끼니를 만든다. 그렇게 삶의 날씨를 음식으로 기억하고자 한다.인생의 날씨가 언제나 맑음일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던 동물을 잃을 수도 있고, 팬데믹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앞날이 캄캄해질 수도 있다. 그때마다 정성을 다해 만든 끼니는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바지런한 끼니》에는 계절과 요리가 담겼다. 그의 정갈한 글과 다정한 요리법은 독자에게 “한가로운 마음을 선물”(장기하)해주고, “갑자기 집밥을 먹고 싶”(노석미)게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를 더 다정하고 더 건강하게 할 것이다.정신을 못 차리고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온 나물을 펼쳐놓고 심호흡한다. 나물 다듬기만큼 묵은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일이 없다. 사이사이 낀 흙을 털고 잔뿌리와 질긴 섬유질을 벗겨내 반짝반짝해진 나물을 가지런히 할 때면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들은 풋풋하고 싸한 풀 내음에 금세 잊힌다. 풀 맛이 궁금해져 고운 연두색을 툭툭 털어 입에 넣는다. 보기보다 씁쓸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까, 시급한 봄에 하는 느긋한 고민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은 늘 ‘무엇을 먹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까지 나아가게 한다. 먹고 싶은 것은 체면과 격식 없이 기분 좋은 ‘온기’와 ‘인상’을 남기는 식사다. 산, 들, 바다의 재료를 적절히 배합해 맛을 끌어낸 음식도 좋고 그것을 맛보며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명쾌함, 균형 있는 풍미도 좋지만 매일의 식사는 우리에게 분명 온기와 인상을 남긴다. 내게 온기와 인상을 남기는 음식은 단연 김밥이다. 심지어 김밥과 닮은 음식을 만든다면, 요리의 목적에 절반 이상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차에서든 길에서든 식탁에 앉아 오물거리든 김밥이라는 일상식은 우리에게 한결같은 편안함과 따스함을 준다. 매일 이어지는 고된 노동으로 일상을 기꺼이 채우고 있을 김밥 요리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각종 나물과 갓 볶아 짠 참기름이 지천인 시장이야말로 맛있는 비빔밥이 탄생하기 적합한 곳이다. 국수가 유명하지만, 실은 보리비빔밥이 더 맛있는 집을 찾아냈다. 주방을 중심으로 네모나게 놓인 바 형태의 식탁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가게에는 손을 뒤집개 삼아 전을 굽는 등이 굽은 어르신이 있다. 그의 두툼한 손을 구경하며 밥을 기다린다. 보리밥에 콩나물, 부추, 도라지무침, 상추, 오이절임, 무생채 등을 잔뜩 얹고 노른자가 살아 있는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깨와 참기름을 휘휘 두른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인데 모두 모이면 기똥찬 맛이 난다. 맛의 일등 공신은 고소한 참기름이다. 잘 볶아 고소한 향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착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기름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아라
생물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시각디자인을 공부해 디자이너로 짧게 일했다. 2013년 경리단의 ‘장진우식당’에서 식당 운영의 걸음마를 배웠다. 2015년 푸드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를 시작했다. 맞춤 케이터링, 팝업, 강연,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식문화 행사를 만들고여러 사람을 위해 밥 짓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음식이 주는 기운과 즐거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경험하며 쓰고 말해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