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삶의 위기를 둘러싼 빤한 허들을 가뿐히 넘어
흥미진진한 서사의 트랙을 내달리는 작품.
단언컨대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다!20년간 한국 장편문학에 새 바람을 일으켜온 세계문학상의 스물한 번째 수상작인 전석순 작가의 『빛들의 환대』가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은 한 소도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임종 체험관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펼쳐지는 소동극이다. 삶에서 죽음을 경험하려던 시도가 어느 순간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아내야 하는 혼돈의 체험으로 변하며 소설은 흥미로운 서사의 트랙을 내달린다.
심사위원단은 “일장춘몽을 기획했으나 악몽이 되어 버린 ‘죽음 체험관’은 피상적인 삶과 죽음에 ‘진짜’를 대입해 삶과 죽음을 다시 보게 만든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묵직한 질문이 남았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인 전석순 작가는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기성 작가다.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 쓴 소설들을 돌이켜보니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왔다”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너무도 많은 경계에서 괴로워하고 비틀거리는 인물들을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그들에게 건네는 ‘환한 빛’이다.
죽여주는 데 가자더니 여기였어요?‘임종 체험’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멀리하고 누군가는 살면서 한번쯤 해볼 만한 의미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 지자체에서 자살률 감소를 통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흉물로 방치된 빈 건물을 활용해 임종 체험관을 개관했다. 사업 책임자는 관장을 중심으로 안내와 예약을 담당할 미연, 영정 사진 촬영을 담당할 유영, 묘비명과 유서 작성을 도울 가령, 관(棺) 관리와 저승사자를 맡을 승인으로 구성원을 꾸렸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낙담하던 관장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 대상이 되는 임종 체험관에 큰 기대를 걸었다.
체험관은 차별화되는 특별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로 성황리에 운영되었다. 나만의 부고 문자 만들기, 수의 구매 시 할인, 전문 상담, 공동묘지 투어, 관 속에서 경직되었던 몸을 풀어줄 아로마 마사지, 기념품 및 실제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육개장 제공 등의 서비스는 만족도가 높아 친목회, 회사 워크숍, 인성 교육 담당자, 이혼을 앞둔 부부, 중독치료센터 등에서 문의가 빗발쳤다. 그러자 야간 체험,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1인 체험, 가상현실로 미리 보는 나의 장례식, 산속에서 진행되는 리얼 임종 체험 등 더 기발한 기획도 논의되었다. 사업 책임자는 그만큼 자살 예상 효과도 뚜렷할 것으로 자신했다. 폭우를 뚫고 낯선 방문객이 들이닥치기 전까진.
수상한 체험객은 없었습니까?폭우가 쏟아져 한산하던 체험관에 들이닥친 방문객은 지난 화요일 3회차 임종 체험객 중 한 명이 체험 이튿날 자살을 시도했다고 소리친다. 미연과 유영, 가령과 승인, 네 명의 구성원은 그날 수상했던 체험객들을 차례차례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수상한 건 체험객뿐만이 아니었다. 네 명 모두 평소 거추장스럽다고 꺼리던 가면을 꼼꼼하게 챙겨 쓰고 헤드 마이크를 통해 변조된 목소리로만 소통했다. 정체를 들키면 안 될 체험객이라도 있는 것처럼.
색다른 이벤트를 즐기듯 죽음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언어유희를 섞어가며 실감 나게 묘사하던 소설은 본격적으로 자기 삶의 중요한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인물들의 사연을 죽음의 의례 과정과 교차하여 보여준다.
미연은 화요일 3회차 체험 때 자신을 성추행하고, 돈을 찔러주며 관계 회복을 종용했던 학교 선배 한빛을 한눈에 알아봤다. 한빛이 임종 체험을 마친 다음 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까.
보육원 출신으로 보호자 없이 불안정한 삶을 살아오던 유영은 보육원 동기의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도록 도와줬던 기종을 그날 체험객으로 다시 만났다. 유영과 기종은 서로 장례 주관자가 되어주기로 할 만큼 한때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사소한 문제로 균열이 생겨 사이가 완전히 끊어진 터였다. 그동안 기종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빌려준 돈을 못 받아내 쪼들리던 가령은 채무자인 계옥이 그날 임종 체험을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도 언니 곤란하게 할 수 있어”라던 협박까지. 계옥이 임종 체험관에 온 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언니 때문에 죽을 것 같다던 말에 대한 증명이거나.
화요일 3회차 체험 때 염습 시범을 보이던 승인은 자신의 어머니 현숙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매로 생긴 인지기능 저하 증상으로 주간보호센터에 있어야 할 현숙이 불쑥 임종 체험관에 들어선 것이다. 입관 체험실에서 관을 열었을 때 현숙은 과거의 어떤 사건을 떠올린 것처럼 울부짖었다. 승인은 센터에서 벗어난 현숙이 스스로 죽음을 결심했을 가능성을 따져봤다.
구성원들을 괴롭히고 전전긍긍하게 만든 사람들이 정말로 체험 이튿날 스스로 삶을 끝내려고 했던 것일까? 각자의 사정을 헤아려보는 과정에서 임종 체험관의 실체와 운영 목적뿐만 아니라 관장의 정체, 구성원들이 임종 체험관에서 일하게 된 이유까지 밝혀진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묵직한 질문이 남는 소설소설에서 체험관은 이벤트의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서 인물들은 마주하기 힘든 자신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구성원과 체험객, 방문객이 여러 겹으로 얽힌 죽음의 제의는 삶을 이야기하는 장치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힘에 맞서 아픔의 호소에서 아픔의 공유로 이야기의 기울기가 조금씩 움직여나갈 때 우리는 희망 없이 희망을 말하는 이 소설의 특별한 능력에 기꺼이 설득”(심사위원 정홍수, 문학평론가)되며,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 숨겨진 아픔을 집요하게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몫이며 이 소설은 그 모범답안으로 불릴 만하다. 단언컨대 새로운 장르의 소설”(심사위원 하성란, 소설가)이라는 찬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죽어야 한다는, 죽어볼 방법이 없겠냐는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한참 머뭇거렸다. 며칠만 더 사시다가 다음 주에 죽어보면 안 되겠냐고 능청스럽게 물으려다가 겨우 입을 다물기도 했다. 예전 어느 때던가, 안타깝게도 죽어볼 기회를 드리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다가 민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우 체험관에서 예약 안내나 하는 주제에 네까짓 게 뭔데 그따위 소릴 지껄이냐고.
뒤풀이가 늦게까지 이어진 날 이후 한빛은 사소한 행동이나 표현 하나하나까지 문제 삼았다. 미연이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흙 묻은 바지를 털어준 행동에도 주목했다. 뒤풀이 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며. 그날 한빛은 미연을 세게 끌어안았다. 한빛의 거친 숨결은 미연의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미연이 비명을 지르며 밀어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너 분명 웃었잖아. ……오리엔테이션 때처럼.”
그때부터 미연은 밖에선 절대 웃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