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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4
왕PD의 토크멘터리,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
스마트북스 | 부모님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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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의 저자 왕현철은 KBS 공채 PD로 입사하여 <KBS 스페셜>, <역사탐험>, <TV 조선왕조실록> 등 30여 년간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퇴직 후에는 조선왕조실록 완독에 9년째 도전하며, 그 성과를 책으로 펴내고 있다.『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4권은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조 즉위(1623년)에서 경종 승하(1724년)까지 약 100년으로 17세기 조선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다. 17세기 동아시아의 큰 변화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명과 청의 교체라는 국제질서의 격변기 속에서 조선은 왕권의 약화, 붕당의 격화, 민생의 피폐라는 복합적인 난제에 부딪혔다. 이러한 격변기 속에서 조선의 왕들은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의 17세기 100년사를 밀도 있게 추적한다.

  출판사 리뷰

토크와 다큐로 만나는 역사책
조선왕조실록의 17세기 조선을
현장 중계하듯 깊이 있고 재미있게 전한다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의 저자 왕현철은 KBS 공채 PD로 입사하여 <KBS 스페셜>, <역사탐험>, <TV 조선왕조실록> 등 30여 년간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퇴직 후에는 조선왕조실록 완독에 9년째 도전하며, 그 성과를 책으로 펴내고 있다.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4권은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조 즉위(1623년)에서 경종 승하(1724년)까지 약 100년으로 17세기 조선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다. 17세기 동아시아의 큰 변화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명과 청의 교체라는 국제질서의 격변기 속에서 조선은 왕권의 약화, 붕당의 격화, 민생의 피폐라는 복합적인 난제에 부딪혔다. 이러한 격변기 속에서 조선의 왕들은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의 17세기 100년사를 밀도 있게 추적한다.
TV 다큐멘터리를 보듯 선명하고, 사관의 머릿속을 탐색하듯 깊이 있는 해석을 더해 17세기 조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양 전문 PD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쓴 책

역사는 사건과 인물을 만들고, 사건과 인물은 역사를 쌓아간다. 그 속에는 치열한 시대정신과 삶의 철학이 있다. 조선의 500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의 콘텐츠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맛깔나게 소개한다.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키워줄 뿐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넘긴 사건과 인물을 포착해 역사 읽기의 재미에 빠지게 한다. 30여 년 차 다큐멘터리 전문 PD였던 저자 왕현철은 KBS를 퇴직한 후 9년째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며 책을 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 많았고, TV 드라마 등에서 잘못 알려진 내용도 발견했다. 무엇보다 조선의 왕과 수많은 신하들과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며 희열을 느꼈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마치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조, 나라를 잘못 운영한 반면교사

“반정은 경들 덕이다. 금수의 땅이 다시 사람의 세상이 되었다.” 인조는 반정 성공을 신하들의 공으로 돌렸다. 그런데 그 과정과 마무리까지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광해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웠다. 인조가 명나라와 청나라의 세력 판도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폐기한 것은 오판이었다. 인조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으로 국토는 유린당했고 군사와 백성은 죽거나 끌려갔다.
<광해군에게 당한 3번의 억울한 가족사>, <돈 애비야, 돈 애비야!>, <화기도감 폐지가 아쉬운 이유>, <첫 시련, 이괄의 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소현세자 독살설> 등…. 26년 2개월여 어좌에 있었지만 임금으로서 실적이 거의 없었고, 아버지로서도 할아버지로서도 비정했던 인조를 되돌아본다.

효종, 북벌 의지에 불타다

효종은 청나라에서 8년간 인질로 있었다. 그 인질 생활 동안 청나라의 산천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고 군사훈련도 눈여겨보았다. 후에 세자에 오르자 술을 끊었고, 북벌을 본격적으로 결심한 후에는 부부관계도 끊었다. 10년 동안 10만 명의 군사를 양성해서 북벌을 하기 위해서였다.
<즉위 초기, 훈구파를 내치다>, <외교적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하다>, <북벌을 소리 소문 없이 준비하다>, <송시열과의 독대> 등 효종의 북벌 계획과 그 후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현종, 붕당은 용납하지 않은 병약한 임금
현종은 세자 시절 부왕과 송시열의 비밀편지 전달자였다. 부왕의 북벌의지를 잘 알았고, 즉위 초기에는 누구 못지않게 군사훈련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현종 역시 건강이 문제였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병약해서 점차 건강이 악화되며 북벌 의지를 접게 되었다.
현종은 19세에 즉위해서 15년 3개월, 비교적 긴 기간 재위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예송 논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예송 논쟁은 상복을 입는 기간이 3년인지, 1년인지, 9개월인지를 논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논쟁이지만, 성리학 세계관이 지배하던 당시는 자신의 학문과 인생철학을 담고, 서인과 남인, 그리고 임금까지 개입하여 치열하게 다투었다. 상복 입는 기간을 둘러싼 논쟁의 이면도 상세하게 다룬다.

숙종, 정치를 장악한 연출자

숙종은 세 번의 환국을 통해 붕당정치 속에서도 왕권을 강화한 정치 고수였다. 즉위 후 불과 15세의 나이로 거두였던 송시열을 내치기도 했다. 숙종은 45년 10개월 재위한 만큼 기록도 풍부하다. 세 번의 환국정치,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맞대결은 영화나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숙종실록』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아 TV에서 잘못 다룬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고자 했고,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보고자 했다. 또한 우리 국토를 지켜낸 안용복, 애매하게 세워진 백두산정계비, 남구만의 「성경도」를 통해서 영토의 중요성을 부각했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자 한 사육신과 단종의 복위 과정도 자세하게 그 의미를 짚었다.

경종,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임금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로서 조선의 최장 기간, 즉 30년 동안 세자로 있었다. 세자로서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키웠으나 재위 기간이 4년 2개월로 짧고 뚜렷한 업적도 없다. 너무 이른 2세에 세자가 되어 궁중에서 홀로 자랐다. 신하들 간의 참극과 어머니 장희빈의 비극을 목격했다. 경종은 신하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설령 만나더라도 좀처럼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신하들은 임금의 속내 파악이 어려웠고, 토론문화가 실종되어 비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17세기 조선을 자세히 돌아봐야 하는 이유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50년이 안 되어 또다시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유린당했다. 임금은 치욕을 당했고, 백성은 피란에 몰리고 생명을 내놓아야만 했다.
17세기 동아시아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 조선은 명과 청의 교체라는 격변기에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민생도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백성은 더욱 곤궁한 삶을 사는 악순환이 되었다.
역사를 교훈 삼지 않으면, 늘 그렇듯이 그 대가는 참혹했다. 오늘날 우리가 17세기를 자세히 살펴보고, 그 교훈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돈 애비야, 돈 애비야!
결국 능양군이 창덕궁에서 경운궁으로 갔고, 광해군을 뒤따르게 했다. 도성의 남녀는 모두 담장과 지붕에 올라가서 행렬을 바라보고 반정에 환호했으며, 이마에 손을 얹고 축수했다. 반면 광해군을 향해서 비난을 퍼부었다.
“돈 애비야, 돈 애비야, 거두어들인 금은은 어느 곳에 두고 이길을 가는가?”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왕과 그 주변만 호의호식하는 것에 대한 원망과 조롱이었다. 광해군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렀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광해군이 반정으로 쫓겨나던 날에 임금의 침실에서 은 4만여 냥이 나왔다. 명나라가 후금에 대항하기 위한 심하전투에, 광해군 11년에 조선이 참전한 대가로 준 은이었다. 심하전투에 참전한 병사와 순국한 가족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으나, 광해군은 백성의 피로서 얻은 은을 백성에게 알리지 않고 사치 놀음에 쓰려고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백성이 ‘돈 애비’라고 조롱한 이유다. 광해군의 추악한 면이었다.
_<1장 인조, 나라를 잘못 운영한 반면교사>

용두사미, 무능하고 치졸한 왕
인조는 광해군을 쫓아내는 반정으로 정권을 잡고, 광해군의 실정을 회복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정책 건의에 대답은 잘했으나 실천력이 없었고, 자기 생각과 다를 때는 벌컥 화를 내고 임금의 권위로 신하의 의견을 억눌렸다. 또한 국가를 운영하는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광해군이 실시한 중립외교를 폐기했다. 국제정세 파악이나 군사를 기르지 않은 채 무턱대고 명나라를 섬기고 청나라를 배척했다. 그 결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했으며, 이 땅에 청나라 황제를 칭송하는 삼전도비를 남겼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는 그 수습에 국정을 낭비했다.
인조는 26년 2개월 어좌에 있었다. 그러나 치적은 거의 없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국토는 유린당했고, 3번이나 궁궐을 떠나서 피란했으며, 청 황제에게 무릎을 꿇어서 임금으로서 권위도 잃었다. 또한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인질이 된 소현세자를 보듬지 않았고. 며느리와 손자조차 죽음으로 몰아갔다. 임금으로서 실적도 거의 없지만,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도 비정했다. 인조는 광해군을 쫓아내는 반정으로 힘차게 출발했으나 그 끝은 미미했다. “용두사미”, 인조의 26년 2개월 재위 기간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_<1장 인조, 나라를 잘못 운영한 반면교사>

  작가 소개

지은이 : 왕현철
KBS에 PD 공채로 입사해서 <KBS 스페셜>, <세계는 지금>, <역사탐험>, <역사추리>, <TV 조선왕조실록> 등 30여 년 동안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특히 조선의 역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며 KBS 퇴직 후 제2의 인생으로 <조선왕조실록> 완독에 도전했고, 2021년 1권, 2022년에 2권, 2024년에 3권에 이어 이번에 4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다큐멘터리는 사적인 감정이나 선입관을 빼고 철저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객관적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생명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사적 감정을 빼고 원전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했고, 다큐멘터리 PD로서 직업적 소명이 꿈틀거려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인터넷 신문에 <왕현철의 궁궐 이야기>로 시작해서 <왕현철의 조선 이야기>로 발전해 갔다. 글이 쌓이면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다는 독자의 요청이 있었다. 이런 응원에 힘입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새롭게 다듬어서 마침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우리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나를 반추할 수 있고, 역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에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저자 왕현철은 그 해답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500년의 기록이 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목차

[머리말] 17세기 조선을 자세히 돌아봐야 이유

1장 인조, 나라를 잘못 운영한 반면교사

인조반정을 일으키다
광해군에게 당한 3번의 억울한 가족사 / 3년 전부터 반정을 준비하다 / 홍제원에 모여 창덕궁으로 향하다 / 광해군, 궁궐 담을 넘어 도망치다 / 무혈입성 / 돈 애비야, 돈 애비야! / 인조, 왕위에 오르다

왕의 업무를 시작하다
화려한 즉위 행사는 없었다 / 광해군의 흔적 지우기 / 화기도감 폐지가 아쉬운 이유 / 인적 청산, ‘삼창’의 몰락 / 대동법 확대

첫 시련, 이괄의 난
이괄, 반란의 신호탄을 쏘다 / 임금의 궁궐을 향한 진격 / 황주 전투와 항왜 / 임진강을 넘은 이괄의 반란군 / 궁궐을 버리고 공주까지 피란 / 반란 22일 만에 경복궁 무혈입성 / 이괄과 흥안군 이제의 일장춘몽 / 이괄은 왜 반란을 일으켰나?
[남은 이야기] 이괄의 난, 산 자와 죽은 자

정묘호란, 파죽지세의 후금에 무능한 조정
후금의 침입, 낌새도 못 챈 조정 / 일주일 만에 한성 코앞까지 / 궁궐을 버리고 강화도로 / 뒷북치는 인조 / 화친의 물꼬 튼 강홍립과 박난영 / 정묘호란, 50일 만에 화친으로 끝나다
[남은 이야기] 백성의 삶보다 아버지 추숭에 집착한 인조

병자호란의 치욕
청나라의 침입 정보, 깜깜이었다 / 왜 청군의 침입을 까맣게 몰랐을까? / 남한산성에 고립되다 / 주화파와 주전파의 대립 / 속수무책 / 삼전도의 치욕

와신상담할 수 있을까?
참담한 나라와 도성 / 이전과 달라진 인조 / 북벌의 의지가 물거품이 된 사건

소현세자 독살설
청에서 8년간의 인질 / 소현세자 독살설의 5가지 근거 / 독살설이 근거 없는 이유
며느리 세자빈 강씨와 손자들을 죽이다
원손 대신 아들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 며느리 소현세자빈 제거 / 손자 셋을 죽음으로 내몰다 / 용두사미, 무능하고 치졸한 왕

2장 효종, 북벌 의지에 불타다


즉위 초기, 훈구파를 내치다
정통성 문제 / 산림과 척화파를 끌어들이다 / 양날의 칼 김자점을 내치다

외교적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하다
김자점의 밀고와 청의 강경한 태도 / 영의정 이경석과 내부 단결
[남은 이야기] 김자점, 그 후

북벌을 소리 소문 없이 준비하다
효정실록에 왜 ‘북벌’이 한마디도 안 나올까? / 북벌에 대한 속내를 감추다 / 조용한 실천 / 군사훈련에 진심

송시열과 독대, 북벌 계획을 밝히다
효종과 신하들의 온도 차 / 북벌을 함께할 신하를 물색하다 / 송시열과의 독대 / 효종의 북벌이 멈칫한 이유
[남은 이야기] 효종과 송시열의 독대가 실록에 기록된 이유

효종과 송시열의 독대, 그 이후의 추진과정
송시열, 임금의 뜻을 묻다 / 효종의 간절한 염원, 그러나…
[남은 이야기] 효종과 나선 정벌

3장 현종, 붕당은 허용치 않은 병약한 왕


효종의 능, 어떻게 결정되었나?
현종, 눈물의 즉위식을 올리다 / 효종의 묫자리 논쟁 / 효종, 잠자리를 다시 옮기다

1차 기해년 예송 논쟁
3년인가, 1년인가? / 서인과 남인의 권력 다툼 / 서인의 승리로 끝나다

2차 갑인년 예송 논쟁
1년인가, 9개월인가? / 서인을 누른 왕권의 승리

현종의 병, 온천을 치료 수단으로
지병이 많았던 왕 / 온양 행궁행 / 온양 행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종은 어떤 일을 했나?
대동법 확대 / 태조 왕건 묘와 사당 성역화 / 군사훈련 / 신체 형벌 완화 / 외교적으로는 단호 / 붕당을 없애려 하다 / 궁가에 지나치게 집착

4장 숙종, 세 번의 환국과 왕권 강화


15세 왕, 거두 송시열을 내치다
송시열에게 원상을 청하다 / 정권 주도권 잡기 / 15세 왕, 서인을 내치고 남인 등용

북벌을 주장한 윤휴와 숙종
세 차례의 북벌 의지 / 북벌의 불씨 다시 지피려 한 윤휴 / 사라진 네 번째 북벌론

경신환국, 영의정 허적의 몰락
숙종의 3차례 환국 정치 / 남인의 쌍벽, 허적과 윤휴 / 영의정 허적의 몰락 / 경신환국, 남인의 몰락

조선의 초특권층 종친 ‘삼복’을 죽이다
임금의 휴척, 종친 / 복창군 형제와 궁녀의 간통 사건 / 복창군 형제의 복귀 / 서인 세력과 종친 삼복의 몰락

장희빈, 태풍의 눈이 되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장옥정 / 권력의 끈이 떨어진 남인과 손잡다 / 아들 출산, 태풍의 눈

장희빈이 낳은 왕자, 기사환국의 도화선이 되다
2개월 된 아들을 원자 책봉 / 서인의 몰락 / 기사환국으로 권력 잡은 남인
[남은 이야기] 기사환국으로 사라진 두 인물

장희빈, 왕비에 오르다
숙종의 속내 / 어수선하고 잔혹한 밤 / 인현왕후를 폐하다

갑술환국, 인현왕후에게 손을 내밀다
남인의 영수 민암의 고변 / 남인의 몰락과 서인의 등용 / 장희빈의 날개를 꺾다

숙종의 손편지와 인현왕후
인현왕후를 다시 불러들이다 / 인현왕후의 외면 / 인현왕후의 복귀, 또 하나의 비극 잉태

장희빈은 어떻게 죽었나?
인현왕후의 죽음 / 장희빈의 몰락 / 장희빈은 사약으로 죽은 게 아니다 / 정국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임금

세 번의 시도, 북한산성을 쌓다
첫 번째 논의와 좌절 / 두 번째 논의와 좌절 / 북한산성, 세 번의 집념 끝에 쌓다

숙종과 울릉도를 지킨 안용복
대마도 왜인에게 잡힌 안용복 / 숙종의 조정이 죽도를 착각한 이유 / 왜와 담판을 벌인 안용복 / 숙종의 바뀐 울릉도 정책 / 울릉도를 지킨 안용복 / 숙종의 홀대

백두산을 둘러싼 영토 싸움
청의 백두산 조사를 저지하다 / 남구만의 국토의식과 「성경도」 / 인삼 살인 사건 / 백두산정계비, 숙종 시대의 오점 / 국토의식이 없었던 관리들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단종과 사육신 복위 / 소현세자빈 강씨의 위호 회복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다
수면 위에 오른 대리청정 / 신하들이 대리청정을 요구한 이유 / 3년간의 대리청정
[남은 이야기] 숙종실록과 소설 『장길산』
[남은 이야기] 고양이 금손, 숙종과 함께 잠들다

5장 경종, 최장 기간의 세자, 짧았던 재위 기간


왕의 장례 절차 어떻게 했나?
숙종이 승하하기 전 / 숙종 승하 당일과 이후의 절차 / 복제와 상복 입는 기간 / 경종, 사위를 받아들이다

임금이 말문을 열지 않다
경종, 어좌에 오르다 / 최소한의 말만 하는 왕 / 왜 말문을 닫았을까? / 긴 말을 하며 화낸 날

정치적 첫 시험대, 실패로 끝나다
왕의 주변에 영향을 미친 노론 /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왕

연잉군을 세제로 삼다
정사에 의욕이 없는 왕 / 연잉군을 세제로 옹립하려는 노론 / 노론과 소론, 줏대 없는 왕 / 연잉군, 세제에 오르다

연잉군의 대리청정, 붕당의 골이 깊어지다
세제의 대리청정 주장하는 노론 / 노론과 소론의 확연한 시각차 / 대리청정 철회

소론, 대반격을 하다
소강 상태는 잠시뿐 / 소론 편에 선 왕

세제 연잉군을 죽여라
연잉군이 털어놓은 이야기 / 세제보다 내시를 보호하는 듯한 왕 / 어이없는 사건

신임옥사, 역사를 되돌아보자
삼수의 역안 / 소론과 경종 / 신임옥사가 주는 역사의 교훈

경종은 성불구자였나?
왜 후사가 없었을까? / 남자 손이 점점 말라가는 조선 왕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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