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영의정에 오르는 것은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었으나, 이에 반해 난관도 많았다. 특히 임금이 누구이냐에 따라 영의정의 운명도 좌지우지되었다. 수시로 탄핵되어 직을 그만두거나 파직되는 경우는 허다하였고, 부처, 유배되는 경우도 예삿일이 아니였다. 심한 경우 사사되거나 살해되고, 부관참시도 당하기도 해, 한 치 앞도 예측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영의정 인생행로는 갈 곳을 모르는 뜬 구름(영의정)처럼 바람(임금)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바람(임금) 앞의 등불(제2인자) 즉, 풍전등화와 같았다.
출판사 리뷰
머리말
‘2007년 3월 32년간의 의대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정든 교육 현장을 벗어나, 2024년 3월에는 삶의 보루인 천직 의사생활도 마감하고, 팔순이 훨씬 지난 나이에 비로소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이후 나름대로 보람된 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이는 요즘 하루의 일과 중 역사와 운동, 그리고 동반자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는 의대교수를 정년퇴임 후 종합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교육과 연구의 굴레에서 벗어나 환자 진료에만 전념하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진료를 마치고 나면 여가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나의 앞으로 인생여정과 노후 건강을 생각하면서 그간 소홀했던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에 역사 특히, 조선시대 역사에 빠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역사를 접하게 되면서, 나의 흥미를 끈 부분이 있었으니 조선시대 왕들의 험난한 즉위 과정과 생애, 그리고 왕들의 죽음이었다. 특히, 왕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미진한 점도 많고, 또한 조선시대와 현대 의학 수준의 차이로 잘못 기록된 오류도 있는데, 이를 기정사실인 양 현재에도 인용되고 있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역사적 문헌을 찾아 수집, 분석과 검증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자 저술에 대한 욕심이 생겨 많은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한권의 책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처음 출판하게 된 책이 『히포크라테스 조선왕을 만나다』이다. 이후 『히포크라테스 조선왕비를 만나다』 등 조선 왕실사에 대한 책을 5권 출간하게 되었다.
영의정을‘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세상에서 오직 한 분인 임금님을 제외하고는, 영의정이 만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영의정을 선망하는 꿈의 관직으로 여기게 되었고, 만일 집안 인물 중 한 사람이라도 영의정에 오르게 되면 가문의 영광뿐 아니라, 그 자손들의 장래도 보장되어 대대손손(代代孫孫) 출세길이 확 트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역임한 분은 162명으로, 영의정 첫 취임 연령은 28세에서 85세로, 평균 62세이다. 세종 4남 임영대군의 차남 귀성군 이준이 최연소 나이인 28세에 세조 때 영의정이 되었고, 최고령자로 임명된 영의정은 태종 때 권중화로 85세이다.
조선시대 영의정 평균 재임기간은 약 2년 6개월이다. 그러나 두 명의 영의정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재직하였는데, 인조 때 영의정 신경진은 임명 5일째 사망으로, 고종 때 영의정 김병시는 김홍집내각 수립으로 임명 5일째에 사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초단기간 영의정직을 역임한 분은 유성룡이다. 그는 선조 25년(1592) 5월 2일 아침 영의정으로 임명되었으나. 반나절도 채 지나기 전 그날 낮 양사가 유성룡을 탄핵하는 소를 올리자, 즉시 선조는 임용자 이름의 붓 글씨가 채 마르기 전 최단시간 내에 파면시켰다.
반면 세종 때 영의정 황희는 18년 1개월 동안 재직하여, 최장기 영의정직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 영의정 수명은 세조 때 영의정 귀성군 이준은 39세 나이로 단명했고, 헌종·고종 때 영의정 정원용은 91세까지 장수하여 수명의 편차는 컸다. 영의정 평균수명은 70.1세로, 환관 평균 수명과 비슷해 다른 직업군에 비해 영의정은 장수(長壽)하였다.
영의정의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나, 노령과 관련된 질환으로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영의정의 죽음에 있어 특이한 점은 처형 6명, 사사 4명, 자살 6명 총 16명은 제명대로 살지를 못했는데, 이중 한명(영조 때 영의정 이천보)을 제외한 15명은 대역죄로 죽음을 당했다. 즉, 영의정 11명 중 한명 꼴로 역사적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굴욕적인 죽음을 당했던 점이다. 이로 인해 가족들도 연계되어 유배되고, 자손 특히 아들들은 처형되기도 하였다. 더욱 심한 경우에는 사후 시신이 부관참시당한 경우도 5명이나 된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영의정 162명 중 재직 중 사망한 경우가 24명(14.8%)이나 된다. 특히, 중종 때 역임한 12명 영의정 중 8명이 재직 중 사망해, 3명 중 2명꼴로 재임 중에 사망하였다.
결론적으로 영의정에 오르는 것은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었으나, 이에 반해 사악하고 험난한 난관도 많았다. 특히 일인자인 임금이 누구이냐에 따라 영의정의 운명도 좌지우지되었다. 영의정은 수시로 탄핵되어 직을 그만두거나 파직되는 경우는 허다하였고, 부처, 유배되는 경우도 예삿일이 아니였다. 심한 경우 사사되거나 살해되고, 더욱 더 비참한 경우는 부관참시도 당하기도 해, 그들의 앞날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영의정의 인생행로(人生行路)는 갈 곳을 모르는 뜬 구름(영의정)처럼 바람(임금)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바람(임금) 앞의 등불(제2인자) 즉,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도 부족한데, 노년에 역사에 집념하는 이유는 역사책을 쓰다 보니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 가교 역할을 해, 미래를 새롭고 창의있게 만든다.’는 점을 자연이 터득하게 되면서 더욱 나의 흥미를 이끌었다.
또 다른 이유는 노년에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직장을 그만두고, 마땅한 소일거리도 찾지 못해 무력하게 지루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벗어 버리고 평소 소신대로 자신만의 노년을 살아가는 법, 즉 평범 속에 스스로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이다.
필자는 퇴직 후에도 다를 바가 없이 예전처럼 변함없이 꾸준히 일상을 실행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퇴임 전·후와 다름없이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머리를 놀리지 않고 뇌를 활용하고 있다. 즉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쉬지 않고 노력하여 삶의 흥미를 찾았다.
평소 법정스님의 어록 중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한다.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하면 인생이 녹슨다.’는 말씀을 항상 유념하고 실행하도록 노력 중이다.
규칙적인 신체 운동과 뇌 활용만이 치매, 뇌혈관질환 등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는데 제일 좋은 건강법은 없다는 것을 믿고 실행을 하고 있다. 예방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년기에는 평상시처럼 자신만의 생활수칙을 따르되, 다만 절대 과욕은 금물이다. 그날 자신의 상태를 고려하고 능력에 맞게 스스로 조절하여야 한다. 그리고 절대 타인의 건강에 대한 조언을 너무 맹신하지 말고, 평소에 실행했던 자신에게 맞는 건강 유지법을 찾아 소신껏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다.
나의 원고를 한권의 책으로 탈바꿈해 준 메디안북 대표 김용덕 사장님을 비롯해 임직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조선 역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해 주시는 역사학자들 덕분에 이 책을 발간할 수 있게 되어, 그 동안 노고하신 그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50여 년간 묵묵히 그림자처럼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지원해 준 나의 영원한 믿음직한 동반자에게 책자와 함께 감사의 글을 바치고자 한다.
2025년 봄
최일생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일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신경과, 내과 전문의국군대구수도통합병원 내과과장국군보안사령부(현기무사) 의무실장연세의대 신경과교실 교수, 주임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교육연구부장, 부원장대한신경과학회 회장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과장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 세계신경과학회 한국대표현 연세의대 명예교수저서히포크라테스 조선왕을 만나다.(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수상)히포크라테스 조선왕비를 만나다.히포크라테스 조선왕자를 만나다.조선왕 소실(첩)들의 생사고락조선 왕녀들의 생사고락
목차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의 변천사
제1편 순위로 살펴본 조선시대 제2인자들
01 조선시대 초대(初代)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당옹(戇翁) 이서(李舒)
02 조선시대 최장수(最長壽) 영의정 방촌(厖村) 황희(黃喜)
03 조선시대 초단기(超短期) 영의정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04 조선시대 최연소(最年少) 영의정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
05 조선시대 최고령(最高齡) 영의정 동고(東皐) 권중화(權仲和)
06 조선시대 최다(最多) 영의정직을 역임한 제2인자들
07 조선시대 사직상서를 최다(最多)로 낸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
08 조선시대 세 임금(三王)을 섬긴 제2인자들
09 조선시대 최다 일등공신 훈호를 받은 압구(狎鷗) 한명회(韓明澮)
10 조선 마지막 영의정·초대 총리대신을 역임한 도원(道園) 김홍집(金弘集)
제2편 업적·일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행로를 밟은 조선시대 제2인자들
01 조선 초기 경제와 행정 기반을 구축한 우재(吁齋) 조준(趙浚)
02 태종조에 두각을 나타낸 늦깍이 제2인자 호정(浩亭) 하륜(河崙)
03 왕권 강화에 희생양이 된 세종 장인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
04 계유정난 장본인 수양대군 영의정에 오른 후 왕으로 등극한 세조 이유(李瑈)
05 술주정(酒酊)을 부려 파직된 학역재(學易齋) 정인지(鄭麟趾)
06 과거 합격없이 음서제(蔭敍制)로 영의정까지 오른 나부(懦夫) 황수신(黃守身)
07 중종반정 주역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박원종(朴元宗)
08 명종의 외삼춘·실권자로 정실부인을 독살한 서원군(瑞原君) 윤원형(尹元衡)
09 선조 때 강직한 직신(直臣)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10 부간부념통(附肝附念通) 처세술로 제2인자 자리를 누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1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한 소북파 영수 춘호(春湖) 유영경(柳永慶)
12 해학과 재치 넘친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3 조선 역사상 31세 최연소자로 대제학에 오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4 병자호란 때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한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 영조 초기 탕평책을 지지했다가 노론 청명파 영수가 되자 이를 반대한 청사(淸沙) 김재로(金在魯)
16 사도(장헌)세자를 지키지 못해 연쇄 자살한 진암(晉庵) 이천보(李天輔)
17 정조 즉위 후 파직·유배된 5명의 제2인자들
18 조선 말 과거시험 폐단에 대한 상소문을 올린 해석(海石) 김재찬(金載瓚)
19 희귀한 일화를 남긴 조선시대 제2인자들
20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조선시대 제2인자들
제3편 조선시대 영의정 취임과 수명·죽음
01 영의정 취임
02 영의정의 수명과 죽음
부록 1. 조선시대 영의정 162명의 생애 요약
부록 2. 조선시대 영의정을 배출한 가문
후기(後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