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능금나무 아래서」
능금, 아삭 한 입 베어 물면
먼 본향 에덴동산
태초의 향기가 느껴진다
입안에서 강물처럼
굽이치는 향그러움
붉은 태초가 춤을 춘다
능금, 아삭 두 입 베어 물면
귓가에 울리는 풍금 소리
청아한 태초의 노래
어여쁘고 아름답구나
너의 모든 존재감이여!
「사랑을 입다」
푸른 봄밤의 설레임보다
더 화창한 것은 없다
봄 바다 설레이는 파도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다
나, 오로지 세상과 맞설 수 있는 것
강물같이 마구 흔들리는
세월을 맞았어도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별과 아이들, 꽃과 빵 그리고
자유를 켜켜이 쌓는 일
오롯이 신부新婦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
어여쁘게 사랑하는 자가
그의 사랑을 입는다
「사월의 노래」
촉촉히 단비 머금은 사월의 대지 위
빙 둘러싼 앞산의 시원한 이마를 바라보아라
암갈색에서 보랏빛으로 그리고 연둣빛으로 눈 터오는
그들의 소리 없는 함성, 합창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회색의 계절 위에서 딛고 일어선
므리바 반석에서 샘물이 터지듯, 어여쁜 꽃잎 터뜨리는
연분홍 진달래꽃의 눈부신 성장을 눈여겨보아라
저 멀리 먼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희망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오듯 돌아오는 제비 떼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 낳을 채비를 서두르며
재재거리는 그들의 즐거움을 느껴 보아라
서서히 풀려가는 봄 강물
물결은 파란빛 흰빛을 품으며 출렁이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한가로이 떠있는 오리 떼
화평의 님이 오시는지, 대지 위에서 울리는
생명의 노래 드높고 드높아라!
사월의 찬가
지나온 세월의 저편, 추억 여행 속에서 어김없이 만나지는 제법 또렷한 사진 같은 풍경들이 하나 둘 하고 셋이 있다.
읍내에서 이십리가 되는 면 소재지에서 또 오리 길을 더 가야 하는 어린 시절의 외가에 대한 기억들이다.
차편이 그리 흔하지 않은 때여서 이십오리 길을 죽 걸어가노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길 양편에서 만나는 논과 밭, 자그마한 구릉진 소나무밭, 방죽이라고도 불리는 수련이나 연꽃으로 가득한 크고 작은 저수지, 나지막한 초가지붕 위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스러운 마을들을 만난다.
읍내 장터에라도 다녀오시는지 머리에 잔뜩 짐을 이고 양손에 짐들을 또 들고, 힘도 안 드시는지 소란스럽게 때로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시며 걸어가시는 아주머니들, 지게를 메거나 자전거를 타신 아저씨, 소달구지라도 만나면 몇몇이 조금은 편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체로 드문 일이어서 걸음을 서로 재촉한다. 나에게 목적지를 물으실 때, 방죽 안의 고씨 댁이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면 내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집 외손녀인 것이 참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어린 시절, 나에게 외가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였다. 이십오리 길의 도보 여행도 참 좋아했지만 봄철 모내기 때보다 가을철 고구마 수확기 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후략…)
작가 소개
지은이 : 양효원
1992년 《시와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백석예술대학원 기독교문학교육석사『김남조 신앙시 연구』《창조문예》 주간 역임동북아기독교작가회의 회원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남서울교회 권사[시집]『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988년)『사랑 서곡』 (1993년)『창문 노트』 (2009년)『비파 소리』 (2021년)[공저]『아름다운 이름을 위하여』 (남서울교회)『물안개 이야기』 외 1권『수금을 울리다』 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