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감독이자 이야기꾼 최종태는 그 스스로도 무너짐의 시간을 조용히 견뎌냈고, 삶의 절망과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들을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만신창이의 승자』에 담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견디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오래 들여다본 상처와 혼잣말들, 그리고 다시 살아내기 위한 사고와 선택의 과정들이 내 인생과 영화와 겹쳐지며 비로소 읽는 이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내 책상 위의 천사>를 통해서는 세상에 버려졌다 싶은 순간에도 나를 조용히 지켜주는 천사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음을, <행복한 라짜로>를 통해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하여, <파이란>에서는 나 자신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과정을,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세상이 덮어씌우는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에 대하여, <레벤느망>에서는 도저히 어떻게도 해결될 거 같지 않은 절망 앞에서 삶을 다시 일으킨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힘든 상황을 마주한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잘될 것이라고, 해결될 것이라고. 그러나 인생은 오르막 앞에 또 다른 오르막을 맞이하는 고비의 연속이며, 끝없는 고비 앞에서 “잘될 거”라는 말은 지나치게 쉽게 휘발되기 마련이다.내 인생 앞에 닥친 그 어떤 시련과 절망 앞에서도 단단히 그 시기를 지나고 헤쳐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 『만신창이의 승자』는 바닥을 치는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누군가의 위로보다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용기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렇게 “내 안에 숨죽인 희망”을 조용히 깨워주는 것이다.고통의 반대말은 기쁨일 것입니다.고통받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도 고통이 지나면 기쁨이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입니다.우리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치 고통 없음이 곧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현실적인 삶과 상관이 없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각자의 생각보다 더 현실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습니다.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냅니다.희망은 불확실한 가능성입니다.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에 대해 우리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소망하지 않아도 그것은 이루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작은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갖습니다.‘본인이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성공과 실패의 책임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 두 개의 문장이 리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대사기극’의 슬로건입니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호는 오직 ‘I CAN’뿐입니다.‘I CAN’T’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패배자와 낙오자로 분류되며 무슨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사회에서 소외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나의 생은 OTT 플랫폼에 진열된 수많은 영화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나의 생은 단 하나의 극장에서 오직 단 한 번 공연되는 연극입니다.우리의 생에 주어진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면, 그 연극은 수많은 갈등과 슬픔이 있는 매우 극적인 드라마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서히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바로 건널 수 없는 강 덕분에 그 공연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친구의 질문에 나도 절망한 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절망한 적이 없습니다. 나에게 절망한 적이 있냐고 물었던 그 친구도 사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진짜 절망했다면 나도, 그 친구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갔거나,아예 살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 친구도 영화 레벤느망>의 안처럼 절망과 싸우고 있었을 뿐입니다.절망에 맞서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그러느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을 뿐입니다.절망은 나와 내 친구와 영화 <레벤느망>의 안 그리고 젊은 시절의 작가 아니 에르노를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절망과 싸우는 동안 많은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는 그 후의 삶에서 계속 아픔을 주겠지만,최소한 우리 모두는 절망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습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벽에 누군가 그려놓은 나비처럼, 우리들의 인생에서 이보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승리는 없을 것입니다.우리의 인생이 수많은 씨줄,날줄로 짜여져가는 커다란 카펫이라면,절망과 맞서며 처절하게 보낸 시간들은 칙칙하고 어두운 바탕 위에 황금실로 수놓아진 찬란한 꽃입니다. 절망과 맞서 버티고 싸울 때 우리의 마음을 누더기로 만드는 불안과 두려움은 승리 이후 우리의 삶을 더 성스럽고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더 많은 것들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종태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연극을 연출했고, 동국대 대학원에 영화 전공으로 입학하면서 영화를 시작했다. 1992년, 영화동아리 노‘ 란문영화연구소’를 만들었고, 이는 그 후 30년이 지나 <노란문: 씨네필 세기말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기록되었다.이후 ‘노란문영화연구소’의 문을 닫고 홍대 앞에서 ‘16mm’라는 호프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영화와 인연을 끊고 살다가 결혼을 하고 둘째 딸이 태어나고 다시 영화를 시작했다. 2006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플라이대디>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고, 영화 <해로>(2013), <저 산 너머>(2020), <사제로부터 온 편지>(2021), <불멸의 여자>(2022)를 통해 극장에서 반가운 관객들을 만났다.영화를 한 편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의 노력과 인내와 좌절이 필연적이다. 그래서 창작의 욕망과 조급함으로 소설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여 《말라비틀어질 때까지》를 출간했고, 이어 소설《모베상》, 《사제로부터 온 편지》를 집필했다. 그 외 에세이 《못된 토마토》를 출간하며 영화와 함께 다양한 글쓰기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상상과 생각들을 기록해왔다.내가 삶과 인간에 대해 꽤나 깊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임을, 그동안 만들고 썼던 영화와 글을 보며 새삼 실감한다. 예전엔 희미했던 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이제야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부끄러움이나 주저함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