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 김재홍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흐름을 몸소 겪어 왔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군의 역사를 누구보다 촘촘하게 파고들며 군부 내 부조리와 정치 공작 문제 등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기자라는 직업 정신은 민주주의의 불씨를 그의 품에 안겼다. 1980년대 말부터 1994년까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군부와 권력』 , 『군1: 정치장교와 폭탄주』, 『군2: 핵개발과 극비작전』 등을 펴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 직전까지 이어져 왔던 군벌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관심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군』 시리즈는 1994년 당시 누적 25만 부를 판매하며 당대를 휩쓸었다. 『군부와 권력』으로 1993년 관훈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도하기 위해 언론자유 투쟁을 벌이다 강제 해직을 당했던 독재와 권력의 산증인이기도 하다.군인들은 언제부터 시민들에게 존경이 아닌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가? 군인들은 언제부터 자신들의 뜻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집단이 되었는가? 군대는 더 이상 국가를 지키는 울타리가 아닌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군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 김재홍의 글은 우리에게도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안긴다. 군인이거나 군인이 아니든지 간에, 똑같은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하여.
출판사 리뷰
“박정희 친위대, 하나회의 대한민국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현대사는 곧 내란의 역사였고, 그 역사는 다시금 반복되었기에
하나회 척결 당시 군부의 심장을 파헤쳤던 기자 김재홍,
2024년 12월의 계엄과 내란 사태를 정면으로 조준하다
군인이 지배하는 세상은 끝난 줄 알았다. 30여 년에 걸친 군부 통치가 끝나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래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하나회를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해도 되는가?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국회의사당에 들이닥친 특수부대의 무장병력은 우리에게 거대한 의문을 남겼다. 윤석열이 저지른 일은 대체 어떤 토양 위에서 가능했던 것인가? 그는 무엇에서 영감을 얻었는가? 대한민국은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던 것인가? 그가 헌법을 유린하고, 국회를 포위하며, 군대 내의 자기 친위세력과 함께 내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근원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답은, 하나회에 있다. 하나회는 역사 속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 동지’와 권력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충성했던 정치군인들을 이번에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정치군벌 하나회는 1951년 6·25 전쟁 중에 군대 징용을 면하고 입교한 4년제 정규 육사 11기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권복동, 손영길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다. 대통령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부터 키워온 ‘친위대’이자 지하 사조직인 하나회는 군부 내 실세 집단이었고, 이 나라의 군대의 요직을 차근차근 찬탈한 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살상, 진압의 내란을 감행했다.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자 하나회는 1980년대 정치체제를 실질적으로 조형하고 지배했다. 5공은 말 그대로 ‘하나회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재홍은 말한다.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운위하고 비상 입법 기구를 구상했던 것은 전두환이 이끌었던 하나회 내란의 모방 그대로였다고. 그가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수도방위사령부와 방첩사 병력을 한데 집결시킨 것 역시 특수부대를 거침없이 동원했던 12·12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윤석열은 2021년 대선 캠프를 통해 하나회의 전성기를 이끈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과 연결되고, 12·3 내란의 기획자였던 김용현, 노상원 등 그의 카르텔은 하나회의 주요 멤버들이 주도한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의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에 출연했다. 즉,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군벌 하나회 소속 고위 장성들은 이번 내란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래도 하나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을 것인가?
김재홍은 1993년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척결’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서 군부에 관한 수많은 특종을 쏟아내며 정부의 군대 개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이 나라의 정치체제 그 자체였던 군인들이 밟아 온 과거의 역사에 12·3 비상계엄 사태의 모든 것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 정치군벌이 어떤 식으로 나라를 지배해 왔는지를, 그 역사의 치명적인 지점들을 철저히 복기했다면 윤석열의 폭주를 시작부터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하나회에 관한 첫 심층적인 분석서, 『그 남자들은 무엇에 충성하였는가』를 읽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한국의 독재자들과 정치군인들이 수십년간 되풀이했던 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행위’를 면밀히 복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추악한 역사가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며, 진정 뼈아프게 대면하고 반성한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린된 헌법, 포위된 국회, 폭동과 테러, 권력자를 둘러싼 카르텔….
‘하나회’라는 이름의 욕망, 대한민국 정치를 흔들다
정치군인들이 대한민국에 남긴 상흔을 되짚는 치밀한 기록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는 지난 2024년 12월 3일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밤은 지나갔어도 누군가는 트라우마로, 또 다른 누군가는 형체가 없는 악몽으로 그 순간을 머릿속에 새겼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진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평온하던 일상이 독재 체제의 산물로 뒤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전 국민의 삶을 어떻게 그리도 쉽게 놀음판에 올릴 수 있었을까.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판단이 실현 가능했던 것은 그에게 ‘권력’이라는 통행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 비상계엄과 권력의 증표로 ‘군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민을 지키고 나라를 수호해야 할 이들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눴다. 국회를 부수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다.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국회가 부서지고 시민들이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쓰러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어두운 역사로 남은 1970년대의 유신 쿠데타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가 어떤 재앙과 붕괴를 불러오는지, 무력(武力)이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진압하고 억누르는지, 지난 시절을 겪은 사람도, 겪지 않았던 사람도 모두 알았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퇴보한다는 호소가 곳곳에서 빗발쳤다. 그러나 야만의 시대였던 과거가 억지로 재현되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정치적 메커니즘을 따라 반복된 현상이었을 뿐이다. 이 거대한 파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정치세력 ‘하나회’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천만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하나회’는 국민 앞에 30여 년 만에 새롭게 호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하나회의 또 다른 얼굴을 목격했다.
저자 김재홍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흐름을 몸소 겪어 왔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군의 역사를 누구보다 촘촘하게 파고들며 군부 내 부조리와 정치 공작 문제 등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기자라는 직업 정신은 민주주의의 불씨를 그의 품에 안겼다. 1980년대 말부터 1994년까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군부와 권력』 , 『군1: 정치장교와 폭탄주』, 『군2: 핵개발과 극비작전』 등을 펴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 직전까지 이어져 왔던 군벌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관심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군』 시리즈는 1994년 당시 누적 25만 부를 판매하며 당대를 휩쓸었다. 『군부와 권력』으로 1993년 관훈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도하기 위해 언론자유 투쟁을 벌이다 강제 해직을 당했던 독재와 권력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김재홍은 관훈언론상을 수상하며 “권력에 의한 언론인 강제해직의 쓰라린 경험이 언론계 공유의 자산이 되고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이 2025년에서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군부독재 시절의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는 지나간 줄 알았던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집필했던 세 권의 책을 2025년의 시점에 맞게 새로 펴냈다. 기자이자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치밀하고 집요하게 군부의 심장을 두들겼고, 군의 어제와 오늘을 한 권에 총망라했다.
군인들은 언제부터 시민들에게 존경이 아닌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가? 군인들은 언제부터 자신들의 뜻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집단이 되었는가? 군대는 더 이상 국가를 지키는 울타리가 아닌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군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 김재홍의 글은 우리에게도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안긴다. 군인이거나 군인이 아니든지 간에, 똑같은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하여.
권력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
정치장교 비밀결사 ‘하나회’의 탄생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군의 기능과 역할은 국가 세력을 지지하고 나타내는 핵심적인 집단으로 표명되어 왔다. 휴전국이라는 입장과 징병제까지 더해져 군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군은 ‘상명하복’ 체계에 가장 엄격한 조직이기도 하다.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상명하복의 질서를 철저히 따르게 된다. 전시와 같이 생명이 오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실제로 군이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시대에 ‘체계’로만 남은 상명하복은 군부 내에 기이하고 수직적인 문화를 형성시켰다.
모든 군이 권력 중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라의 간성(干城)’이라는 말처럼, 나라를 지키는 방패와 성벽으로서 직업적 소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군이 부패했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데에는 국가안보가 아닌 다른 요소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진급이나 보직 경쟁, 수직적인 위계질서 등도 간과할 수 없겠지만 군 내 금기사항이던 사조직을 결성하며 친위 세력을 키운 ‘하나회’가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하나회는 북극성회라는 모임에서 5·16 쿠데타 이후 가지를 뻗었다. 육사 간의 전우애를 다지기 위한 총동창회 성격으로 만들어진 북극성회는 1972년 박정희가 군내 세력에 위협을 느끼고 해체를 지시했으나, 하나회는 수면 아래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길러가고 있었다. 육사 11기 영남 출신 서클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등의 인물이 하나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들은 5·16 쿠데타의 주체 세력이던 8기들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8기 중에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인 영남 출신 인물이 없었다는 점까지 거슬렸다.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7·6 친위쿠데타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후에도 후배들을 영입하며 지속적으로 권력을 향한 욕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진급과 보직이라는 현실적 욕구 충족에 쏠려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익숙한 그림을 떠올린다. 바로 ‘충암파’,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그 인물들이다. 조직 내 사적 파벌을 만들어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고, 비상계엄을 주도하기까지 한 이들을 하나회와 겹쳐 보지 않을 수 없다. 카르텔을 형성해 권력을 장악하고, 무력으로 체제를 유지하려는 흐름은 마치 평행이론처럼 오늘날의 사태를 잇는다. 시대가 변해도 권력을 향한 개인의 욕망과 군을 동원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하나회의 탄생 과정과 몰락의 서사를 ‘예언’하듯 기록하며 미래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하나회의 보스이자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마침내 국가 권력을 장악해 ‘하나회 공화국’을 이룬 과정에 어떤 음모와 희생이 있었는지, 화려하고 눈부신 계급장은 또 얼마나 허무하게―민주주의라는 심판대 위에서―바래지는지 말이다.
권력의 별이 지고 민주주의의 태양이 떠오르다
5공 청산과 하나회의 황혼, 국가는 무엇을 잃고 또 얻었나
하나회는 전두환과 노태우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이후 집권당의 사무총장, 정부 장·차관, 국회의원, 청와대의 정무수석과 사정수석, 해외공관장 대사, 국영기업체 사장 등 두루 요직을 차지했다. 이 시기의 하나회는 군부 내 사조직을 넘어 사회의 각 영역을 지배하고 군림했다. 이들의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성격은 박정희 체제와도 맞닿아 있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대통령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면서 모든 국가 권력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시켰다. 그렇기에 박정희의 신임을 얻는 것이 정치군인들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권력자와의 학연이나 지연, 신임도에 따라 권력이 분배됐다. 반정부적인 발언을 하거나 행태를 보이면 노골적으로 폭행하거나 강제로 보직을 빼앗았다. 말 그대로의 ‘공포정치’ 시대였다. 하나회는 일종의 ‘박정희 친위대’로서 박정희를 보좌하고 따랐고 그의 체제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박정희의 신임 아래 하나회는 정치군벌이라는 입지를 다지며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의 원형을 잡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주도로 5공 정권이 세워지며 하나회의 독무대가 펼쳐졌다. 누구도 하나회의 위상과 세력에 반기를 들 수 없었던 ‘하나회 공화국’이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회의 위상은 그들의 어깨 위에 얹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수는 없었다. 국가 권력을 찬탈하겠다는 목적으로 뭉쳐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뤄냈지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리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때 동지였던 그들이 서로를 겨냥하고 끌어내리기 위해 싸우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그들이 황금기를 누리는 사이, 기나긴 독재 체제를 겪어야 했던 국민은 강압적인 통치와 군에 대한 반감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1985년 2·12 총선거를 통해 창당한 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은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데에는 군사 정권의 독주를 멈추고자 하는 국민의 바람이 깃들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직선제 개헌 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때마침 1986년 어느 예비역이 5공 체제에 대한 정신교육에 야유를 보냈다가 폭행당해 사망한 ‘안양 예비군 폭행치사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모인 술자리에서 군 고위장성들과 당시 여야 위원들이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국방위 폭행 사건’이 일어나며 5공 정권의 위세는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북한 측의 수공 위협에 대응할 ‘평화의 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며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려 했으나,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을 끝끝내 피하지는 못했다.
6공 정권이 ‘5공 청산’에 앞장서며 하나회의 끈을 잘라내려 했지만, 군벌 알력은 여전했다. 노태우 역시 육사 생도 시절부터 전두환을 뒤따랐던 하나회 출신 인물로서, 이미 깊게 자리한 지배권력과 부정부패의 덫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992년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을 시작으로 무장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투표를 진행하거나, 협박과 무력으로 표를 조작한 군 내 부정선거 제보가 쏟아졌던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이렇게 군벌정치에 대한 반감과 저항감은 군 내외적으로 점점 들끓다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터져 나왔다.
학연과 지연에 기반한 친목 카르텔, 군 권력 남용, 부정선거와 비상계엄…. 군벌정치라는 이름의 정치적 폐단은 과거의 한 페이지에 그치지 않았다. 잠재되어 있던 권위주의는 30여 년 만에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면서, 군사독재 시절과의 유사성에 많은 국민이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래를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무력(武力) 앞에 무력(無力)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그러나 저자의 기록은 정치군인들의 어두운 일면만을 비추지 않는다. 우리는 김재홍의 시선이 군부에서 시작해 어디에 도달하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독재도, 5공과 6공도 마침내 지나갔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파면당했다.
군이라는 막강한 조직을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리던 그들조차 끝끝내 지배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의지’와 ‘희망’이다.
우리가 우리를 구할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민주주의’와 ‘충성’의 의미를 되돌아보다
군사와 검찰 카르텔이 만들어 낸 정권들을 거치면서도 민주주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들었다. 피와 땀으로, 횃불로, 응원봉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심연을 겨누고 비췄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은 쿠데타를 모략하고 권력을 꾀하는 방법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소수의 힘에 지배당해 쉽게 무너지거나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기어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이 땅의 생명력은 정치군인의 뿌리만큼이나 깊고, 질기다.
1992년에 이지문 중위가 있었듯, 2024년에는 홍장원, 곽종근, 조성현이 있었다. “싹 다 잡아들여”라거나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라는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재검토를 요청하거나 대기하면서 비상계엄 사태를 판단하고자 했다. 덕분에 12월 3일의 밤이 더 큰 불길로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군 수뇌부이면서도 ‘상명하복’이 아닌 ‘나라에 충성한다’는 군인 정신을 따랐다. 군인이 국가에 충성한다는 것은 “이 나라의 근본적인 정의를 믿고, 헌법적인 정신을 믿으며, 이 나라의 국민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요약하자면, 한 나라의 군인이자 국민으로서 자신 안에 있는 ‘양심’을 일깨운 것이다.
선과 악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양심을 따르면 무엇이 민주적 가치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있다. 위기 앞에서도 이러한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우리는 김재홍의 책에서 본 수많은 반면교사를 봤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윤석열과 같이 그들의 욕망과 반민주적 행위를 따르는 누군가가 앞으로 또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비판할 것인지는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우리를 구할 방법은 ‘우리’를 지키는 것뿐이라는 것을.
국민이라는 공동체 의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위력을 지닌다. 물론 이 국민에는 군인들도 포함된다.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는 시민들도 국민이고, 대한민국의 방패로서 자기 목숨을 나라에 바치는 군인들 또한 국민이다. 우리가 모두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서 몸으로, 지혜로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질문을 이쯤에서 다시 떠올려 본다. 김재홍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12·3 비상계엄이 일어난 근원을 파헤칠 수 있었고, 동시에 진정한 군인 정신이란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던 시민들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열창했고, 2024년의 시민들은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라는 가사로 그들에게 화답했다. 빛이 얼마나 밝은지, 이 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매일 걸었다. 그곳에 빛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오늘날의 우리를 기다리는 ‘앞서 나간 자들’이 있으니까. 뼈아픈 역사가 남긴 상흔은 지워지지 않지만,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한 땅은 더욱 단단하고 비옥해질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정치군벌 하나회와 30년간의 군부 통치가 지금 우리에게 남긴 유산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군대가 전과 같은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 집단이 나라를 지배했던 때를 과거의 향수처럼 치부하면 안 된다고. 왜냐하면 바로 그 시절의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운영 원리, 최고지도자와 정당정치와 ‘비상사태’ 같은 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집단무의식이 우리 공동체에 지금도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1990년대 초만 해도 군정의 긴 터널에 과연 끝이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권력과 특혜의 벽을 깬다는 의식으로 군 장성들에게 파고들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2024년 윤석열 수하의 정치군인들을 보면서도 그 시절처럼 무겁고 막막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군대라는 조직에 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군은 튼튼하게 보호되고 육성돼야 할 우리의 울타리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군의 어제에 얼룩이 묻어 있다고 해도 오늘과 내일에만은 국민 모두로부터 아낌을 받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 글을 썼음을 밝혀 둔다.
― 「들어가며」 중에서
군은 30여 년간에 걸쳐 통치 그룹의 산실이라는 평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 본래의 위상과 다른 차원에서 국민의 눈길을 받아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3대에 걸친 집권자가 군인 출신이었고 그동안 국정을 운영하는 공직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핵심 요직을 군 출신자들이 다수 차지해 왔다. 이처럼 군은 우리 사회의 통치 세력을 공급하는 지배 집단 역할을 해왔음에도 국민 여론의 비판으로부터 면책되어 왔다.
― 「제1장 그들의 총구가 향했던 곳은」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재홍
1950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니만 펠로십을 수료했다. 1971년 10월 15일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 발동 당시 서울대 문리대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다가 캠퍼스에서 불법 체포됐으며, 경찰과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조사를 받은 뒤 군에 강제 입영 됐다.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던 1980년 4월 17일 동아일보 기자 일동의 이름으로 발표한 ‘자유언론 선언문’을 작성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도하기 위해 보안사의 기사 검열 거부 등 언론자유 투쟁을 벌이다 강제 해직을 당했다. 현재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1988년 2월 동아일보에 복직해 정치부 차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국회, 정당,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와 군의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 ‘정치군벌 하나회’를 파헤쳤다. 군부와 권력의 유착관계에 관한 성역 없는 취재 보도로 1993년 1월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한양대 특훈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한국정치평론학회 초대회장과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문체위 간사 겸 법안심사소위원장), 국회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회 회장,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ESG실천국민연대 상임의장, 유신청산민주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한국정치와 현대정치사상』, 『군부와 권력』, 『군1: 정치장교와 폭탄주』, 『군2: 핵 개발 극비작전』, 『박정희의 후예들』, 『박정희 유전자』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제1장 그들의 총구가 향했던 곳은
제2장 정치장교 비밀결사의 시작
제3장 사조직이 나라를 집어삼키다
제4장 ‘하나회 공화국’의 탄생
제5장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제6장 ‘부정’과 ‘비상사태’의 뿌리를 찾아
제7장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