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누이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열여섯 살 때 라이프치히 대학에 진학했으나 병으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박사로 마무리했고, 고향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에는 문학, 예술, 해부학 등 다방면의 경험을 쌓았다.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는 바이마르로 초빙을 받아, 그곳에서 이후의 긴 생애를 정치인, 문인, 학자, 연극인, 자연과학자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며 보냈다.소공국 바이마르의 문화, 교육, 산업, 세무 총 4개 부처를 관장하며 평생 군주를 보필한 현직 정치인이었다. 26년간 국립극장을 관리했고, 38년간 안나 아말리에 대공비 도서관의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많은 시, 소설, 극작품을 썼다. 문인은 그의 일면에 불과했음에도 “종이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시인”으로 불릴 만큼 남아 있는 작품만도 방대하다. 스물다섯 살에 4주 만에 써서 큰 명성을 얻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해, 『빌헬름 마이스터』, 『친화력』 등 장르의 전범이 되는 소설들과 『괴츠』, 『에그몬트』, 『타소』, 『이피게니에』 등 수많은 극작품을 썼으며, 특히 그의 본령인 시는 평생 그침 없이 써냈다. 『서?동 시집』에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시와 연구가 담겼다. 자서전 『시와 진실』 역시 그 장르의 전범으로 꼽힌다. 자연과학자로서도 식물, 동물, 광물, 기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했는데 『식물변형론』, 뉴턴의 이론에 맞서 40여 년을 매진했던 『색채론』 등이 두드러지는 저작이다. 그림도 1,400여 점이 남아 있고, 편지는 다시 수합되어 보관된 것만 15,000여 통이다. 괴테는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지방어라는 인식을 면치 못했던 독일어로 쓰인 글을, 모국어와 민족문학을 단숨에 세계문학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작은 공국 바이마르의 민생을 평생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헤르더, 빌란트, 특히 쉴러와 함께 문학과 예술을 통한 국민의 정신적 고양에 힘썼다. 그와 더불어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가 꽃피었고, 독일 문학사에서 그의 시대가 ‘괴테 시대’(질풍노도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는 시기)로 불릴 만큼, 생애 자체가 곧 일국의 문화사로 평가받았다. 그가 열혈 청년이던 시기는 독일 문학계가 질풍노도기(Sturm und Drang)라는 혁명적 문학운동기를 지나고 있었고, 그가 ‘완미’(完美)를 추구하던 시기는 고전문학기(Klassik)였다. 그가 바이마르 궁정에서 11년을 보낸 후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여행이 시기를 구분하는 획이다. 독일이 문화국으로서의 자부심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내세우는 인물이 괴테이고, 인구 6,000여 명의 작은 도시 바이마르는 “독일의 문화 수도”라고까지 불린다. 스물두 살에 시작하여 60여 년을 두고 쓴 역작 『파우스트』는 여든두 살이던 1831년 여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는데, 괴테는 당대의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겨 이를 봉인해 넣었다. 그러나 1832년 1월에 다시 꺼내어 고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작가와 작품세계
구성과 줄거리
주요 등장인물
생각해 볼 문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