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내가 싫다잖아! 그게 어떻게 그냥 장난이야?”
성희롱 타깃이 된 중학생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뜨인돌출판사 청소년 문학 브랜드 ‘비바비보’의 47번째 책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야』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은밀한 성희롱의 타깃이 된 중학교 2학년 ‘밀라’의 마음과 행동과 변화를 꼼꼼하게 그린 성장 소설로 “현실성이 살아있는 캐릭터와 재미로 무장한 소설” “중학생들에게 토론의 발판을 제공하는 책” “청소년, 학부모, 교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9년 〈워싱턴 포스트〉 최고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었다. 저자인 바바라 디는 섭식 장애, 암 투병 후 학교 복귀, 성희롱 같은 청소년 사회 문제를 위트 있게 다루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에 뜨인돌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야』는 불합리한 상황에 짓눌려 옳고 그름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모든 청소년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해 쓰였다. 밀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재에 순응하는 대신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냥 장난이었어요. 쟤가 예민한 거라고요.”
피해자의 시선으로 폭력의 모양을 또렷하게 그리기『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야』는 학교에서 ‘단순한 장난’이라고 포장되며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 중에서도 은밀한 성희롱을 다룬다. “장난인데 왜 정색하고 그래?” “농담 모르냐?” “야, 애초에 관심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아.” 밀라에게 일어난 일도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이었다. 친구의 생일 파티 때 초대한 적 없는 남자애들이 쳐들어와 축하 노래를 부르며 곁에 있던 밀라의 어깨를 꽉 감싸 안았던 것이다. 밀라는 자신이 예민하게 느낀 거라며 넘기려 하지만 남자애들의 장난은 더욱 심해진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벌리고, 안아 달라고 조르고, 심지어 엉덩이를 만지기까지! 눈에 띄는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신이 왜 남자애들의 관심 대상이 된 건지 추측해 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그런 밀라를 보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거봐, 걔가 너 좋아하는 거라니까.”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그냥 무시해.” 그러던 어느 날, 밀라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접촉하면 점수를 따는 ‘득점표’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애들의 장난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밀라는 그 시간 동안 수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밀라, 너 피해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43쪽) ‘남자애들은 나는 보지 못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걸까?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걸까? 다른 애들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뭔가를?’(45쪽) 싫다는 뜻을 분명하게 내비쳐도, 거절하고 화를 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어깨가 자꾸만 움츠러든다. 그런 밀라의 고군분투를 보다 보면 폭력은 악의적인 마음 없이도 시작될 수 있으며, 폭력에 침묵하거나 편을 드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나와 너의 목소리로 상처 없이 온전히 대화하기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밀라에게 닥친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엄마가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밴드부에서는 뒷자리로 밀려난다. 친구들과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고, 학교 상담 선생님은 출산 휴가로 자리를 비웠다. 낭떠러지에 발 하나를 걸친 채, 밀라는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 놓는다.
“친구들하고 사이가 다 자꾸 엉망이 돼요.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또 엉망이고, 계속 그렇게 반복돼요.”
나는 엄마가 정말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라가 못되게 구니?’ ‘오미가 잘난 척해?’ 그렇지만 엄마의 다음 질문은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딸, 친구들한테 이야기해 봤어? 친구들이 네 마음을 알고 있니?”
“그런 것 같아요. 아니, 그러니까….”
“처음에는 누구나 잘 듣지 못해. 아니, 듣긴 하는데 귀를 기울이진 않는 거지. 몇 번을 더 이야기할지는 너한테 달린 거야.”
“같은 말을 하고 또 해도 상대가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남자애들 이야기로 흐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애들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지. 단, 옆차기는 날리지 말고.”(198쪽)
이 소설에는 어느 날 갑자기 조력자가 나타나서 남자애들에게 한 방 먹인다거나 하루아침에 장난질을 없애 버리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다. 대신 14살 인생에 처음으로 불어 닥친 폭풍우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끝끝내 절망하지 않는 밀라의 꾸준한 성장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밀라는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게끔 만들고 힘껏 외친다.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그리고 나와 대화하자고.
밀라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소설 속에 갇힌 내용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밀라’가 학교와 사회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을 집중해서 읽고 있는 당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당신에게 밀라가 자신과 먼저 대화하자며 손을 내민다. 반신반의하며 한 번쯤 잡아 보는 것도 좋겠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니까.

뭔가가 내 어깨를 훑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이었다. 캘럼과 리오, 단테, 토비아스가 우리 바깥에서 서로의 어깨를 단단히 엮은 채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아아아!”
캘럼이 내 머리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숨결이 목에 닿자 소름이 돋으며 몸이 떨렸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남자애들은 어깨를 풀지 않았다. 캘럼은 내 초록색 스웨터를 꽉 쥐고 놓지 않았다. 남자애들 특유의 땀 냄새가 피자 냄새와 섞여서 풍겼다. 나는 숨을 되도록 천천히 이 사이로 내쉬었다.
나는 토비아스가 좋은 형일 수도 있다는 생각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동생의 손을 잡고, 곧 저녁을 먹어야 하니 아이스크림은 먹을 수 없다고 찬찬히 설명하고, 델릴라의 귀를 쓰다듬던 모습은 정말이지 머저리가 아닌 다른 모습이었다. 그건 캘럼이 트럼펫을 불 때 보여 주는 머저리가 아닌 모습과도 비슷했다. 어쩌면 단테가 컴퓨터 앞에서 보여 줄 모습도 비슷할지 모른다.
‘어쩌면 농구부 남자애들에게는 모두 머저리가 아닌 면이 있을지 모르지. 그 애들에게도 어쩌면 낯선 개를 만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엄마가, 자꾸만 놀리고 마는 남동생이 있을지 몰라. 그런데 정도라는 게 있어. 이빨 요정이 주는 용돈을 가져갈 때는 언제 그 장난을 그만둬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 그런데 그게 나일 때는 왜 다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