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계용묵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지은이 : 김동인
1919년의 2.8 독립선언과 3.1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전쟁 중 죽었다.2002년 발표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1955년 ≪사상계≫가 김동인의 이름을 딴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여 1956년 시상을 시작했다. 이후 동인문학상은 1956년부터 1967년까지는 사상계사, 1979년부터 1985년까지는 동서문화사, 1987년부터는 조선일보사가 주관하여 매년 시상되고 있다.
지은이 : 김유정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 「떡」, 「산골」, 「만무방」, 「봄ㆍ봄」 등을 발표했다.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이어져 그해에 「봄과 따라지」, 「동백꽃」 등을, 다음 해에 「땡볕」, 「따라지」 등을 발표했다. 1937년 지병의 악화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과 2년 남짓한 짧은 작가 생활 동안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 소설을 남겼다. 실감나는 농촌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는 그의 소설에서는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을 엿볼 수 있다.
지은이 : 나도향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稻香)은 호이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을 계획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나도향은 1922년 1월에 낭만주의 동인지 『백조』의 창간 동인으로서 한국 낭만주의의 문을 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낭만주의는 시 장르가 강세였기 때문에 낭만주의 소설가로서 나도향은 더욱 희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도향의 낭만주의 소설은 감상적이지 않다. 비애나 한이 넘치는 작품일지라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면 그 감정이 개인적 감상으로 퇴행하지 않는다. 그 눈물과 아픔 속에는 모순된 외부세계를 향한 화살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짧은 문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이」 「뽕」 「의사의 고백」 「계집 하인」 「물레방아」 「꿈」 「한강변의 일엽편주」 「피묻은 몇 장의 편지」 등 수준 높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는데, 아쉽게도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하였다.
지은이 : 염상섭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귀국1920년 2월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1920년 7월 동인지 『폐허』를 창간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1922년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종합지 『동명』의 기자로 활약1929년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활동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임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1945년 8.15광복 후 귀국1946년 경향신문 창간과 동시에 편집국장으로 활동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한때 해군 정훈국에 근무1954년 한국전쟁 중의 서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편 『취우』로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1955년 서라벌예대 초대학장 역임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1957년 예술원공로상 수상1962년 삼일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1963년 3월 14일 직장암으로 사망
지은이 : 이태준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지은이 : 주요섭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 3년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 도쿄로 가서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에 편입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지하신문을 발간하다가 출판법 위반으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27년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했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그 뒤 신동아 주간, 중국 푸렌 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 등을 두루 맡았습니다. 1921년 매일신보에 단편 <깨어진 항아리>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1930년에는 장편 〈구름을 잡으려고〉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이어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을 그린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발표하였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젊은 과부와 사랑손님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통해 봉건적 사회에서 개방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대와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회 고발적인 작품들도 많으나 인간의 내면세계와 삶의 의미를 묘사한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작품으로 《아네모네의 마담》《봉천역 식당》《인력거꾼》《눈은 눈으로》 《대학교수와 모리배》《추운 밤》《입을 열어 말하라》《세 죽음》《잡초》 등이 있습니다.
지은이 : 채만식
소설가·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채만식은 지식인의 자의식을 날카롭게 투시한다. 지식인 소설 유형으로 독자적인 면모를 획득했으며, 지식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이 민중적 현실과 폭넓게 접촉하였을 때는 비극적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그렇지 않고 대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희화화의 정신이 현실 가공의 미학적 정신을 철저하게 지배하게 되었을 때는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의 소설세계를 보여주었다.
지은이 : 최서해
함북 성진 출생. 본명은 최학송(崔鶴松).1918년 어머니와 간도로 들어가 유랑생활 및 농노생활을 함.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으로 등단. 신경향파 문학의 기수. ‘빈궁의 문학’이라는 1920년대 ‘단자적’ 영역을 만듦.작품으로 〈탈출기〉 〈홍염〉 〈서막〉 〈갈등〉 〈무명초〉 〈큰물 진 뒤〉 〈박돌의 죽음〉 외 다수가 있다.
지은이 : 현진건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1920년 《개벽》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나, 이듬해 발표한 「빈처」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백조》의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한국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단편으로는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 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터」(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 등이 있고,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현진건 단편선』(1941) 등의 단편집과 『적도』(1939), 『무영탑』(1941)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지은이 : 전영택
1894년 평양성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한문을 익혔으며 11세 때부터 보동학교, 대성학교에서 수학했다. 19세 때부터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공부하여 고등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19년, 26세 때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발간했으며, 동경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창조」를 중심으로 하여 '혜선의 사'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단편 및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화수분'은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1927년 목사가 되어 각종 목회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 교수와 「기독신문」의 주간을 지냈다. 이후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 「한국복음신문」등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종교적 색채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한국단편소설 40
머리말
시대별 주요 작품 소개
김동인 / 배따라기, 감자, 붉은 산
현진건 /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나도향 /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전영택 / 화수분
이태준 / 달밤, 꽃나무는 심어 놓고, 돌다리
계용묵 / 백치 아다다
주요섭 / 사랑손님과 어머니
유진오 / 김 강사와 T교수
김유정 / 만무방, 금 따는 콩밭, 봄봄, 동백꽃
이 상 / 날개
이효석 / 메밀꽃 필 무렵, 산
김동리 / 무녀도
채만식 / 치숙, 이상한 선생님
현 덕 / 하늘은 맑건만, 고구마, 나비를 잡는 아버지
염상섭 / 두 파산
황순원 / 별, 독 짓는 늙은이, 소나기, 학
김성한 / 바비도
하근찬 / 수난이대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조세희 / 뫼비우스의 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일용할 양식)
윤흥길 / 종탑 아래에서
『한국단편소설 70』
머리말
시대별 주요 작품 소개
안국선 / 금수회의록
이해조 / 자유종
현진건 / 빈처, 할머니의 죽음, 고향
최서해 / 탈출기, 홍염
김동인 / 광염소나타, 광화사
이효석 / 돈(豚), 사냥
채만식 / 레디메이드 인생, 왕치와 소새와 개미, 논 이야기, 미스터 방
김유정 / 소낙비, 땡볕
이태준 / 까마귀, 복덕방
김동리 / 역마, 등신불
손창섭 / 비 오는 날
오상원 / 유예
이범선 / 오발탄, 표구된 휴지
강신재 / 젊은 느티나무
전광용 / 꺼삐딴 리
김승옥 / 무진기행
김정한 / 모래톱 이야기
박완서 / 그 여자네 집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