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9권.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1592년(임진년)부터 1598년(무술년)까지 충무공 이순신이 전장에서 몸소 체험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왜군과의 치열한 접전, 긴박했던 전장의 분위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략과 전술 등 전란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조정의 분위기와 그 와중에 전국토를 휩쓴 전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모습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충무공 이순신이 남긴 단 한 권의 저서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전장의 분위기를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한 사료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임했으며,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 수군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탄환에 맞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그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웅으로 남아 있다.
1592년(임진년)부터 1598년(무술년)까지 그가 전장에서 몸소 체험한 일들을 기록한 《난중일기》는 왜군과의 치열한 접전, 긴박했던 전장의 분위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략과 전술 등 전란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조정의 분위기와 그 와중에 전국토를 휩쓴 전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모습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갈등이 담긴 기록
한편 《난중일기》에는 전란의 기록 외에 인간 이순신의 내면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웅으로 추앙받아 온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에서 볼 수 있는 이순신의 모습은 일반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강철 같은 체력과 정신력을 겸비한 무장이었을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거의 매일 과로와 육체적 고통으로 시달리거나, 밤새 식은땀을 흘리는 날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간밤에 꾼 꿈을 풀이하거나 자주 점을 치기도 했다. 전장에서 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적인 심정을 기록한 일기에서는 인간으로서 쉽사리 물리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의 그늘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순신의 자상하고 애틋한 면모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늘 멀리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틈날 때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오열하는 대목에서는 그 역시 한 국가의 장수이기 전에 뜨거운 부정을 가진 아버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하의 죽음에 애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술잔치를 벌이는 등 군졸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는 모습에서 그의 넓은 아량과 자애로운 인품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뛰어난 공적을 쌓은 대가로 오히려 모함을 당하거나 좌천당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원균과 갈등을 빚으면서 조정대신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원균을 ‘흉인’‘흉악한 자’라고 거침없이 칭하며 좋지 않은 감정을 자주 드러낸다. 이처럼 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게 기록한 《난중일기》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순신이 직접 쓴 친필 초고본을 바탕으로 하되, 초고본에 빠져 있는 부분은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전서본을 참고하여 한글로 쉽게 풀어쓴 것이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곳에는 꼼꼼히 주를 달고, 다양한 자료들을 추가하여 《난중일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책의 말미에는 《난중일기》 속에 그려진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분석한 편저자의 해설을 수록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쟁에 관한 기록들
-임진왜란-
해질 무렵에 영남 우수사 원균의 통지문이 왔는데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대었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경상 좌수사 박홍의 공문이 왔는데 “왜선 350여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즉각 임금께 장계를 올리고 순찰사와 병사, 전라 우수사 이억기에게도 공문을 보냈다. 영남 관찰사의 공문도 왔는데 동일한 내용이었다.
:: 임진년(1592, 선조25년) 4월 15일
: 밤 열 시쯤 영남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곧 임금께 장계를 올리고 삼도에도 공문을 보냈다.
:: 임진년(1592, 선조25년) 4월 16일
-명량해전-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적은 수의 수군으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하였고, 또 이르되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고 엄격히 말했다.
:: 정유년(1597, 선조30년) 9월 15일
작가 소개
저자 : 이순신
1545년 3월 8일 문반 가문의 셋째로 태어났다. 1576년에 병과로 급제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 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훈련원 참군, 사복시 주부,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전라순찰사 군관 겸 조방장 등을 거쳤다. 이어 1589년 정읍 현감으로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등에서 전승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593년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최초로 임명되어 1594년에도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1597년 1월 조정을 기망한 죄로 통제사직에서 파직되어 투옥되었다. 출옥 후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1597년 7월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었다. 9월 16일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 척의 왜선과 맞서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1598년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 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했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1643년에는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3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목차
임진년(1592년, 선조25)/ 17
계사년(1593년, 선조26)/ 41
갑오년/(1594년, 선조27) 91
을미년(1595년, 선조28)/ 161
병신년(1596년, 선조29)/ 211
정유년 1(1597년, 선조30)/ 273
정유년 2(1597년, 선조30)/ 323
무술년(1598년, 선조31)/ 355
부록
--이순신 참전 주요 해전 정리/364
1.옥포해전 2. 당포해전 3. 당항포해전 4. 한산도해전
5.부산포해전 6. 명량해전 7. 노량해전
--난중일기에 대하여/372
난중일기의 체제와 내용/난중일기의 성격과 의미
--임진왜란 이전의 이순신/276
-<난중일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순신의 삶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