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현직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 선생님이 시로 한국 근대사를 풀어낸 책이다. 시와 역사의 만남을 통해 한국사에 접근했다는 참신한 기획으로 주목받았던 <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사>의 한국 근대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교과서 속 외워야 할 지식에 불과했던 역사를 우리 곁에 살아숨쉬는, 노래처럼 익숙한 역사로 되살려 냈다.
이 책은 저자인 신현수 선생님(인천 부광고)이 지난 3월에 출간한 <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 1 -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딛고 독립을 위해 싸우다>의 두 번째 책으로, 동학혁명과 개화기, 독립투쟁의 역사를 다루었던 1권에 이어 유이민, 친일, 저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강제 징용 및 정신대 동원을 적극 독려한 노천명, 모윤숙을 비롯하여 이광수, 서정주 등의 친일시가 눈길을 끈다. 반면 일제에 굴하지 않고 저항한 이육사, 윤동주 등의 저항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시인들의 상반된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국어 교사가 역사 교양서를 썼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이 책은 문학이나 역사 교과서에 피상적으로 다루었던 역사적 사건과 근대의 풍경을 청소년들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 자료를 실었다. 무엇보다 국어나 문학 참고서류에서의 구태의연한 시 해설 방식에 벗어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시가 만들어진 시대의 삶과 역사, 그리고 시인의 삶에 주목하여 시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현직 국어 교사가 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조명한 책을 냈다. ‘국어 선생님의 역사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인 신현수 선생님(인천 부광고)이 지난 3월에 출간한 <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 1 -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딛고 독립을 위해 싸우다>의 두 번째 책으로, 동학혁명과 개화기, 독립투쟁의 역사를 다루었던 1권에 이어 유이민, 친일, 저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강제 징용 및 정신대 동원을 적극 독려한 노천명, 모윤숙을 비롯하여 이광수, 서정주 등의 친일시가 눈길을 끈다. 반면 일제에 굴하지 않고 저항한 이육사, 윤동주 등의 저항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시인들의 상반된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국어 교사가 역사 교양서를 썼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이 책은 문학이나 역사 교과서에 피상적으로 다루었던 역사적 사건과 근대의 풍경을 청소년들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 자료를 실었다. 무엇보다 국어나 문학 참고서류에서의 구태의연한 시 해설 방식에 벗어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시가 만들어진 시대의 삶과 역사, 그리고 시인의 삶에 주목하여 시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의 역사 인식의 현주소는?
2012년 8월 29일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지 102년째 되는 날이다. 불과 100년 전의 일이지만 까마득하게 옛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시간을 거슬러 당시 한일병합의 풍경으로 한 번 되돌아가 보자.
한일병합(경술국치)일이 8월 29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8월 16일이다. 이날 데라우치와 이완용의 밀약이 있었고, 8월 18일에는 각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8월 22일에는 순종이 참여한 어전회의에서의 통과되었는데, 그로부터 1주일 동안 비밀리에 부쳤다가 8월 29일에서야 이완용이 윤덕영을 시켜 어새를 날인한 다음에 공표되었다. 곧바로 공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병합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02년이 지난 후 경술국치 때와 비슷한 풍경이 우리나라 정부에서 일어났다. 지난 7월 정부가 한일군사보호협정을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언론에 노출되어 연기(?)했지만 102년 전의 풍경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언론에 들키지 않았다면 102년 전 경술국치 그때처럼 협정을 체결하고 수일이 지나고 나서야 공표했을 것이 분명하다. 경술국치에서 한 수 배운 것일까? 아무튼 이 장면에서 우리가 과연 내용적으로도 일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은 최근 청와대 정문의 일본식 석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청와대는 조선 총독의 관저였고, 미 군정청장인 하지 준장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로 사용되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조선총독부 대문 위에 설치되어 있던 석등과 청와대 대문의 석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최근 답변을 통해 “청와대 대문 석등은 사찰이나 능묘, 일본 신사에 나타나는 석등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정문을 밝혀주는 기능을 강조한 문주등으로 해석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건립 당시에도 일본식을 고려한 적이 없고 근대화 과정에 나타난 건축 양식”이라고 해명했다. 건축 설계자가 의도적으로 일본식을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석등이 일본식과 유사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해방된 지 60여 년이 훨씬 지나도록 아무도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36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기간과 맞먹는다.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 역사를 공부했으며, 일본식 사고와 문화가 주류였던 근대의 풍경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미당 서정주의 고백은 솔직하기까지 하다. 만주나 중국 등지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벌였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본의 통치 아래 있었던 당시 사람들의 의식은 미당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제의 잔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생활 뿌리 깊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의 잔재는 구호만으로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의 문제, 그 이유는?
행정안전부가 최근 실시한 ‘2012년도 국민안보의식 여론조사’(5월26일부터 6월 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와 중·고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에서 청소년 10명 중 6명은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 결과를 근거로 청소년 안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는 6.25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5.18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2004년 사단법인 한국사회조사연구소(소장 김순흥 광주대 교수)가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청소년은 5·18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5·18이 일어난 해를 정확히 맞힌 응답자 비율이 고등학생은 4.5%, 중학생은 1.9%, 초등학생은 0.3%에 불과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에 대한 인식보다 비교적 최근인 1980년에 일어난 5.18에 대한 인식이 더 못하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날까? 공교육에서 역사 교육을 소홀히 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고대사 및 중세사에 편중되어 근현대사를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 역사 교육의 관행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특히 토론식 교육보다는 암기식 교육이 일반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속에서 역사를 살아 있는 실체로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 중 하나였던 독일이 유태인 학살 등 치욕적인 자국의 역사를 감추거나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어 보존하며 후세들에게 교육하려는 것과 대비된다. 애써 교육하거나 강조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인 것이 역사이다. 앞선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볼 때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점검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청소년 역사 교육의 내용적 근거는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역사적 가치관과 통념이므로, 이 시대의 역사정신을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어 선생님의 살아 있는 역사 수업?
학문에 있어서 통합 또는 통섭의 중요성은 지난 시절 여러 차례 강조되어 왔다. 특히 지식 기반 사회에서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에서의 통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사는 배운 대로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교사들 역시 통합 교육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 환경도 미비하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통합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어 선생님의 역사 수업’이라는 이 책의 시도는 교육의 측면에서 꽤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참고서식 시 해설을 지양하고 시와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당시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의식을 되살려냈다는 측면에서 역사 교육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조두남(趙斗南) 작곡, 윤해영(尹海榮) 작사. 작곡자가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을 때인 1933년, 경력을 알 수 없는 작사자의 청에 의해 작곡한 것이다. 만주 벌판을 말을 달리던 옛날 선구자의 모습을 그리며 작곡한 것으로, 두도막형식으로 된 힘차고 정열적인 가곡이다.”(네이버 지식백과)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장중하게 울려퍼졌던 노래이며, 앞선 설명처럼 만주 벌판을 말달리던 독립투사쯤으로 알고 있었던 ‘선구자’의 진실은 바로 ‘만주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친일시인이었던 윤해영. 그는 일제가 만주 침략을 노골화할 때 적극적으로 일제를 찬양했으며, 당시 만주 최대의 친일 단체인 ‘오족협화회’의 간부로 활약하며 ‘만주괴뢰정부’를 공공연히 찬양한 문인이었다. 또한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을 선구자가 아니라 ‘산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특히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는 <선구자>의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평생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며 우리나라 신문학계에서 최남선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이광수. 그의 변절과 적극적 친일의 증거.
조선의 학도여
그대는 벌써 지원하였는가,
특별지원병을
내일 지원하려는가
특별지원병을
(중략)
가라 조선의 6천 학도여.
삼천만 동향인의 앞잡이 되라.
총후(전시 체제 아래서 전쟁 수행을 위해 적극 협력하는 것)의 국민의 큰 기탁과
누이들의 만인침을 받아 띠고 가라.
윤동주의 생가와 무덤은 만주 용정에 있는데, 용정은 박경리가 쓴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귀국하다가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해방되기 1년 전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4년 옥사했다. 그런데 그의 무덤은 한동안 찾지 못하다가 한 일본인 교수가 찾아냈다고 한다. 1986년 용정에서 권철, 리해산 씨와 함께 처음으로 윤동주의 묘와 비석을 찾아내 세상에 알린 이는 일본인 오무라 마쓰오이다. 그리고 윤동주 묘 옆에 심은 살구나무도 일본인이 심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친일파의 후손보다 못사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작가 소개
저자 : 신현수
1958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5년 『시와 의식』에 「서산 가는 길」 등 5편의 시가 박희선, 김규동 시인에게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시집으로 『서산 가는 길』 『처음처럼』, 『이미혜』, 『군자산의 약속』,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한더더니』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그래, 지금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가 있으며, 엮어 지은 책으로 『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사』, 『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1, 2』와 『선생님과 함께 읽는 한용운』 등이 있다.2012년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상임고문,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부평신문에 ‘신현수의 걷기 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목차
Ⅰ 자기 땅에서 쫓겨난 백성
가장 비통한 기욕 - 이상화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낡은 집 - 이용악
고향 앞에서 - 오장환
소야의 노래 - 백석
북방에서 - 백석
서도여운 - 김소월
국경의 밤 - 김동환
국어 선생님의 한국 근대사 강의 -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설움, 유이민
Ⅱ 오욕의 역사
성수무강 - 작자 미상
첫 피 - 주요한
선구자 - 윤해영
조선의 학도여 - 이광수
마쓰이 오장 송가 - 서정주
호산나 소남도 - 모윤숙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 노천명
권군 취천명 - 김동환
국어 선생님의 한국 근대사 강의 - 청산하지 못한 역사, 친일파
Ⅲ 한겨울에도 꼿꼿하게 살아 있는 나무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절정 - 이육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통곡 속에서 - 심훈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 김소월
벌罰 - 김광섭
국어 선생님의 한국 근대사 강의 - 어두운 시대의 한 줄기 빛, 저항시
Ⅳ 일제 강점기의 풍경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 유건영
네거리의 순이 -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송덕비 - 작자 미상
전라도 길 - 한하운
독도는 우리 땅 - 박인호
사의 찬미 - 윤심덕
반달 - 윤극영
아동십진가 - 작자미상
소작인의 노래 - 작자미상
오린이 노래 : 불 켜는 이 - 방정환
내 살림 내 것으로 보아라 - 작자미상
담바귀 타령 - 구전 민요
감격시대 - 강사랑
눈깔 먼 노다지 - 김성집
떴다 보아라 - 구전 민요
교통선전가 - 작자 미상
인천항 - 박팔양
국어 선생님의 한국 근대사 강의 - 일제 강점기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