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탈리아 작가 다치아 마라이니의 장편 성장소설. 포르멘토르 국제상 수상작으로, 17살 여고생이 여러 부류의 남성들을 경험함으로써 삶과 인생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1963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청소년이면서 여성인, 즉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이 성급하게 어른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치러내는 성장통을 담고 있다. 엔리카는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처럼 지나치게 말이 없고 매사에 무덤덤하다. 그녀에게 있어 삶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엔리카는 여러 부류의 남성들과 성적 경험을 하고,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성급하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합리화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붙잡는 체사레, 돈으로 유혹하는 늙은 변호사,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백작부인, 새장 만드는 일에만 미쳐 있는 무능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출판사 리뷰
★포르멘토르 국제상 수상작
바보같이… 삶, 사랑, 인생… 그런 거였군!
열일곱 살 엔리카의 ‘방황의 시절’
엔리카는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처럼 지나치게 말이 없고 매사에 무덤덤하다. 그녀에게 있어 삶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소녀는 여성들을 대변하듯 여러 부류의 남성들과 성적 경험을 하고,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성급하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합리화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붙잡는 체사레나, 돈으로 유혹하는 늙은 변호사,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백작부인, 그리고 새장 만드는 일에만 미쳐 있는 무능한 아버지…… 이들 모두에게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찾고자 하는 엔리카의 결심은 어떤 것일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다치아 마라이니Dacia Maraini의 장편 성장소설 <방황의 시절L'et? del malessere>이 ‘문지푸른문학’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방황의 시절>은 마라이니에게 ‘포르멘토르 국제상’을 안겨준 대표작으로서, 1963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열일곱 살 여고생이 여러 부류의 남성들을 경험함으로써 삶과 인생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이니 보수적인 이탈리아 문단에 불러일으켰을 파문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청소년이면서 여성인, 즉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이 ‘성급하게’ 어른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치러내는 성장통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롯이 전달된다. 아니, 오히려 시간을 뛰어넘는 마라이니의 예지력(叡智力)은 21세기에 발표되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가난한 + 여자 + 고등학생’이 느끼는 삶의 무게
마라이니는 지난 2000년 한국을 방문하여 여성 문제에 관해 강연한 바 있으며, 지금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이슈화하고 알리는 데 여념이 없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뿐만 아니라 72세를 맞은 올해에도 신작(<마지막 밤기차Il treno dell'ultima notte>)을 발표하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현재 진행형의 작가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가난한, 여자, 고등학생’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정녕 사랑이란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서로를 파먹으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박한 이기주의자, 지식인을 가장한 물신주의자, 사회화가 덜 된 이상주의자 등등…… <방황의 시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면면은 주인공 엔리카 이상으로 ‘방황의 시절’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바라보는 것 같은 마라이니식 문체는 각기 동떨어진 듯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콜라주처럼 보여주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진정한 리얼리티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그리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우리는 나지막하게 읊조리게 된다. “살아내는 것이란 크게 다르지 않군. 바보같이… 삶, 사랑, 인생… 그런 거였군!”
‘옮긴이 해설’ 중에서
<방황의 시절>은 마라이니의 진정한 문학적 데뷔작인 <휴가>에 이은 두번째 소설이며, 포르멘토르 국제상을 받게 되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열일곱 살의 주인공 엔리카는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를 잃자, 새장 만드는 일에만 여념이 없는 아버지를 떠나 독립된 생활을 찾는다. 그녀는 체사레를 사랑하나 세상을 쉽게 살아가려는 그는 부잣집 딸과 약혼을 하고, 엔리카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체사레에게 있어 엔리카는 성적인 상대에 지나지 않았다. 엔리카는 자신을 좋아하는 학교 친구 카를로나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여자를 만나는 나이 많은 변호사 구이도 등과도 엇갈린 사랑만을 이어간다.
엔리카는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처럼 지나치게 말이 없고 매사에 무덤덤하다. 그녀에게 있어 삶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엔리카는 백작부인의 비서 일을 하며 자신을 찾고 또 가난을 벗어나보려 하지만, 이것 역시 무의미한 생활임을 깨닫고 새로운 준비를 한다.
여성은 성적인 상대 외에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지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 억압당해 제대로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던 1960년대의 사회적 현상이 비단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마라이니의 첫번째 소설 <휴가>에서도 그랬듯이 주인공 소녀는 여성들을 대변하듯 여러 부류의 남자들과 성적 경험을 한다. 그리고 두 작품의 주인공들 모두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성급하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합리화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고, 또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장 절실한 방법이었다 해도 현재를 사는 우리로선 이해를 할 수밖에 없다. 아니, 17세 소녀가 성적인 경험을 통해서 혼자서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게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사랑이 아니면서도 붙잡는 체사레나, 돈으로 유혹하는 늙은 변호사,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백작부인, 모두에게서 벗어나 올바른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엔리카의 결심에 무엇보다 찬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탈리아 문학자들은 마라이니의 작품 활동의 업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첫째는 여인들의 삶의 묘사와 분석을 통한 정신적 극복, 둘째는 무엇이든 한 번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을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연관지어 자신의 관념에 비추어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도 작가는 ‘현실을 통한 이념적 확신’이라는 주제를 놓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끊임없는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작가의 정신세계나 집필 목적 등에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러나 마라이니의 거침없고 솔직한 문체와 작품들마다 느껴지는 한결같은 자신감은 늘 그녀의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더구나 사회적 변화가 많던 여러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여성과 청소년과 많은 약자들을 위로하고 대변하는 작가였음에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308~10쪽)
얼마 동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사람들이 어머니를 집으로 옮겼는지, 언제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오고 밖으로 나왔는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생명을 잃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어머니 곁에 나도 병실에서와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햇빛은 사라지고, 누군가가 천장 중앙에 달린 갓 없는 전등을 켜놓았다.
나는 내 앞에서 흐느끼며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의 등을 보았다. 위층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청소할 때처럼 머리에 수건을 썼다. 수건을 묶은 매듭 아래쪽으로 살이 접힌 목이 보였다.
아버지는 가슴에 머리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수프를 끓여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에 젖으며 졸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아니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관계는 끝났다. 나는 그녀를 보고 있지만 그녀는 알지 못한다. - 87~88쪽 중에서
더듬거리며 욕실로 가서 이마에 손을 짚고 변기 위에 얼굴을 대고 구역질을 했다. 현기증으로 움직일 힘을 잃은 채 어둠 속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세면대로 몸을 움직여 수도꼭지를 열고 물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들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올라와 나의 힘을 모두 빼앗아 내려갔다.
떨리는 몸으로 진정제를 찾으러 일어났다. 욕실에서 벨라돈나 제를 찾아 몇 방울을 물 컵에 떨어뜨렸다.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밀려오는 한기로 몸이 떨렸다. ‘이럴 수가. 그 여자는 내 몸에 독을 넣었나 봐’ 하고 나는 생각했다. - 186쪽 중에서
“그럼 그 후에 데리러 갈게. 여섯시에. 두 시간이면 충분하지?”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짓궂었다.
“싫어, 카를로. 만날 수 없어.”
“약속했잖아.”
“알아. 하지만 그 사람과 너 두 사람을 놓고 선택해야 될 줄은 몰랐어.”
“선택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처음엔 그를 만나. 그리고 나를 만나면 돼.”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야 해. 약속한 일이야.”
“그럴 수 없어.”
“넌 비겁한 계집애야.” - 286쪽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다치아 마라이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다치아 마라이니는 1936년 피렌체 근교인 피에졸레에서 태어났다. 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지내던 중 1943년부터 46년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시칠리아 섬에서 지내던 마라이니는 열여덟 살이 되자 로마로 가서 학교를 다니며 작가 수업을 받았다. '문학시대'라는 문학잡지를 창간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극단을 설립해 극작가.비평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휴가> <어느 여도둑의 회상> <전쟁 속의 여인> <이솔리나> <마리안나 우크리아의 긴 생애> <바게리아> <증언> <어둠> <피에라와 살인자들> <마지막 밤기차> 등 다수가 있으며, <방황의 시절>로 포르멘토르 국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