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쓴 성장소설. 광주 민주항쟁 당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며 시민군 홍보부장을 맡았고, 항쟁이 끝난 후에 '금희의 오월'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오월의 광주'를 알렸던 박효선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주인공이자 일인칭화자인 '기열'이, 비극적인 광주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누나를 회상하는 과정이 줄거리의 기본틀이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의 교실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이 일상적일 정도로 자주 일어난다. 국어를 맡고 있는 괴짜 담임 선생님은 싸움에 대한 벌로, '어른'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오라고 한다. 이 숙제는 '폭력'이라는 토론으로 이어지고, 선생님은 5.18 민주묘역으로 학생들을 인솔한다.
기열은 이곳에서 한 소녀의 슬픈 사진과 마주치게 되고, 이때의 느낌은 그날 밤의 꿈으로 이어진다. 시골에서 광주로 나와 혼자 하숙하고 있는 기열은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년이다. 꿈속으로 찾아온 사모하는 음악 선생님이 어느 순간 누나의 얼굴로 바뀌고, 기열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누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게 된다."너희들은 시민들도 이렇게 죽이느냐!" 저만치 등 뒤에서 그런 절규도 들려왔다. 헬리콥터에서 불빛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다시 도청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총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헬리콥터에서 직접 쏘는지 도청 안에서 쏘아 대는지 종잡을 수 없었으나, 총소리는 마치 우박처럼 온 세상을 뒤덮는 것 같았다. 나는 겁에 질려 뛰기만 했다. 계속 뛰기만 했다. 이상했다. 나는 달아나는데, 수많은 어른들은 그 무서운 도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총을 쏘는데도, 어쩌면 죽을지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달려가기만 했다.... "모두가 미친 것이여..."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모두가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미친 사람들의 세상에 온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꿈속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꿈이든 무엇이든 나는 저 수상한 세상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다시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서 집에 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찾고 싶었다. - 본문 133~134 쪽에서
작가 소개
저자 : 윤정모
1946년 출생, 부산에서 성장.1970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대학 재학 중인 1968년 장편 『무늬 져 부는 바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1981년 <여성중앙>에 『바람벽의 딸들』이 당선.작품으로는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님』, 『고삐』, 『슬픈 아일랜드』 『수메르』 등 다수.1988년 신동엽창작기금상, 1993년 단재문학상, 1996년 서라벌 문학상을 수상함.
목차
- 그날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기억하며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별
꿈속에서 만나요
어른들은 치사하다
바람 속의 얼굴들
버스를 타고
누나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소를 몰고 나간 누나
누나 없는 빈자리
돌아온 누나
번화가 모험
누나는 나를 속였다
무등산 초입에서
초파일 전날
광주를 떠나며
해 지는 들녘
담배막에서
마을 뒷산에는
회장 할머니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