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다락방N 시리즈 6권. 아들, 손자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처를 안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 열세 살 소녀의 눈으로 진정한 위로와 치유란 어떤 것인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오빠 ‘버드’가 여섯 살 때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후, 열세 살 소녀 주얼의 삶에는 온통 그의 그림자와 침묵만이 드리워 있다. ‘버드(새)’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는 죄책감으로 말을 잃은 할아버지를 비롯해 어른들은 각자의 상처로 힘겨워할 뿐이다.
주얼은 숨 막히는 집에서 벗어나 어른들이 불길하다고 말리는 절벽에 가서 돌멩이를 모으고 바위에 오르고 태양빛을 받을 때, 오히려 집에 돌아와 ‘나 자신이 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느 날, 버드와 같은 이름인 ‘존’이라는 소년과 만나 친구가 되면서 주얼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게 된다. 대지와 돌을 사랑하는 지질학자 소녀와 목성의 달로 가겠다는 우주 비행사 소년, 그리고 지독한 상실감과 상처 속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제 삶을 바꾸어 갈 수 있을까?
출판사 리뷰
“오빠가 죽은 날, 내가 태어났다.”
『버드』는 지독한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우리는 지극히 참담한 사회적 사건 앞에서 엄청난 충격과 무기력한 우울을 경험했다. 마치 유행처럼 ‘치유’니 ‘힐링’이니 하는 책과 TV 프로그램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친구를 잃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은 이들 앞에서는 누구라도 위로의 말조차 찾기 어렵다. 『버드』는 아들/손자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처를 안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 열세 살 소녀의 눈으로 진정한 위로와 치유란 어떤 것인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버드만이 중요하다. 버드는 날아가 버렸는데.”
아들이 죽은 날이 다가오면 주얼의 엄마는 깊은 슬픔에 잠겨, 그날 사랑스런 딸이 태어나기도 했다는 사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아빠는 혼령이니 액운이니 하는 미신에 집착하고,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스스로를 닫아 버렸기에 한 집에 산다고 해도 주얼에게는 거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주얼은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말들을 마구 뱉으며 서로 상처를 주는 가족들 가운데에 있다.
처음으로 마음 터놓을 사람을 만나서야 주얼은 비로소, 자신이 즐겨 찾는 절벽과 그곳에서 돌을 모아 만든 동그라미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지 깨닫는다. 지질학자가 되고 싶은 ‘나’를 누군가에게 얼마나 이해받고 싶었는지도 함께. 주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위로’와 ‘치유’ 그리고 ‘이해’의 길은 결국 친구건 가족이건 누군가와 뭔가를 공유하는 일에서 열린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친구와 함께 오르는 나무나 바위일 수도 있고, 오래전 할아버지가 연주하던 레게 음악의 리듬일 수도 있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향해 오빠 ‘버드’가 남긴 녹음 테이프의 추억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얼의 말처럼, 그렇듯 함께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는 것이리라.
“내 절반은 자메이카인이고 4분의 1은 백인, 4분의 1은 멕시코인이야.”
『버드』에 등장하는 주얼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소녀, 그 친구인 존/유진은 인종이 다른 가정에 입양된 소년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언제나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고, 때로는 가족들 사이에서조차 그 ‘다름’에 대해 제대로 듣기도, 말하기도 어려웠던 아이들. 청소년 독자라면 이들에게서,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기에 더 묻어 버리고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 온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낯설지 않은 ‘조금 다른 가족’의 모습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지는, 강인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이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도 함께 배우고 생각해 볼 점이 아닐까.
출발점이 다른 아이들이 자라는 이야기, 다락방 N
많은 성장 소설이 소년을 주인공으로 두고 쓰입니다. 소년이 자라는 이야기는 소녀가 자라는 이야기와 닮은 듯 다릅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는 장애가 없는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와 닮은 듯 다릅니다. 한 사회의 보편적인 생활 방식에 익숙한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겐 보편적이기만 한 생활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와는 종종 다릅니다. 다르다는 건 틀리거나 모자란 게 아니라는 걸,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 싶습니다. 보편적인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n개의 모습과 속내를 가진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식과 속도로 꿈꾸고 자라나는 '다락방 N' 시리즈는 그런 바람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락방 N' 시리즈의 책들은 앞으로도 다름이 편견이나 폭력의 근거가 아닌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에, 아이들이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 가는 데에 믿음직한 디딤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 나무 맞아. 난 존이라고 해. 여긴 우리 삼촌 농장이니까 이건 내 나무야.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올라올 수 있어.”
분명히 다른 말도 들었건만 “난 존이라고 해.”라는 말 이후로 두뇌 회전이 멈춰 버렸다. 당황스러움이 확연히 얼굴에 드러났는지, 조금 더 친절한 목소리로 아이는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시골 동네 한복판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 특히 밤에 나무를 타는 아이는 없지.”
나무에 올라와 함께 앉자는 그의 말에, 어느새 나는 묶어 두었던 밧줄을 쥐고 있었다. 따뜻하고 거친 나무껍질을 두 손, 두 다리로 짚으며 한참 타고 올라, 그 아이 바로 아래 가지에 앉았다. 서늘한 그늘 속으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았지만, 어둠에 가려진 존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앉은 곳에는 달빛 한 줄기가 떨어져, 존은 내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잭과 수전을 부모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 그 사람들은 나랑 닮지도 않았어. 입양한 사실에 대해선 아예 말도 꺼내지 않고. 내가 흑인인 것도. 그러면서 ‘우린 마음속은 다 같은 사람이야.’ 같은 소리만 해. 그런 말이 도움이라도 되는 것처럼.”
존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너는,”
나는 천천히 말했다.
“사람들이 네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듣지 않는데, 굳이 진심을 말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지?”
존은 잠깐 그대로 있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때부터 둘 다 말을 멈추었다. 존과 나는 사상 지평선 안에 기대어 앉아 느긋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습한 공기가 오후 하늘을 채우는 소리를 들었다.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어떤 집안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진짜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는 기분은 낯설었다. 나는 중요한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서 존에게 말했다.
“버드에 대해서도 비슷해. 난 늘 버드를 생각하거든.”
존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걸 이야기하진 않지?”
“안 하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아.”
바람이 윙윙거렸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버드!”
나는 더 크게 외쳤다. 뜻밖에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도와줘! 우린 오빠가 필요해. 어떻게든 우릴 좀 도와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성이 지나가기를, 아니면 전에 본 오빠 모습이 천국에서 내려오기를, 혹은 대범하고 위험한 밤 독수리라도 나타나기를. 그 어떤 계시라도 나타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많은 조약돌을 묻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돌을.
작가 소개
저자 : 크리스털 챈
옥수수밭 천지인 위스콘신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세상 속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각종 회의에서 토론 그룹을 지원하였다.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전문 이야기꾼이다. 현재 시카고에 살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고 반려동물인 거북이와 대화를 나누며 지낸다. 『버드』가 첫 번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