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한국사와 다문화의 흥미진진한 콜라보레이션!
한국사를 관통하는 다문화 코드를 읽는다
더 넓게 살피고 더 깊게 이해하는 우리 역사
▶ 내용 소개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국사
한국사와 다문화의 흥미진진한 콜라보레이션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약 156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를 차지한다. 그리고 약 15만 명의 사람들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다. 안방극장에서는 <비정상회담>,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등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문화, 다문화 코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싸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지성, 김연아 등 많은 한국인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우리나라를 알리고 지구촌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학, 취업, 이민, 쇼핑, 게임 등 각자 개개인이 지구촌과 교류하는 일도 낯설지 않다.
이처럼 우리는 ‘글로벌 시대, 다문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고 세계인과 더불어 사는 시대적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심화될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적.융합적 사고력이 요구되고 있는데,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도 마찬가지로 변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사를 ‘우리 민족, 우리 영토’만의 역사라고 여겨 왔지만 사실 한국사 곳곳에는 수많은 ‘다문화 코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고대 문명사를 비롯해 생활사, 여성사, 해양사, 과학사, 전쟁사 등 폭넓은 연구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도로 보는 한국사』, 『지도로 보는 우리 바다의 역사』, 『고구려의 발견』, 『세상을 바꾼 탐험』 등 여러 역사책을 펴낸 김용만 저자는 이 다문화 코드에 주목했다. 그리고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신선한 시각과 발상으로 한국사를 풀어낸 『다문화 한국사 1-우리 역사를 바꾼 세계인들』과 『다문화 한국사 2-지구촌을 누빈 우리 조상들』,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한반도를 찾아와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계인들과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문물을 경험했던 우리 조상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다문화 한국사』가 선보이는 한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문화 시대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한국사를 더 넓게 살펴보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국경.민족.세대.종교 등 다양한 가치관을 아우르고 포용할 줄 아는 유연한 사고력을 길러 주어 보다 주도적인 역사관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
한국사가 열린 그날부터 시작된 다문화 시대
지구촌 곳곳을 누빈 우리 조상들은 누구이며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역사상 주변 세계의 영향을 거부했던 국가와 민족은 명맥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외부의 영향 없이 ‘우리’만을 고집했던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는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사와 호흡을 같이했기 때문에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국 후주의 관리였던 쌍기는 고려에 귀화하여 더 탁월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도록 과거제도 시행을 건의했고, 신라 사람이었던 천일창은 그릇, 칼, 거울 등을 가지고 일본 열도로 건너가 고대 일본의 문화 발달에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주변 세계와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시대는 한국사가 열린 그날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외국에서 온 새로운 문화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한국적인 것으로 재탄생시키며 한국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이 우리 역사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사가 품고 있는 힘을 더욱 발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외국인이 한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 조상들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대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 한국사 1, 2』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그중 『다문화 한국사 2-세계를 누빈 우리 조상들』에서는 앞서 소개한 천일창뿐만 아니라 일본 학문의 스승으로 평가받는 백제인 아직기와 왕인,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중국 대륙에 독립된 왕국을 건설했던 이정기, 우리나라 불교 발전을 위해 인도까지 먼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겸익과 혜초 스님, 풍랑을 만나 필리핀까지 표류해 갔다가 3년 2개월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최초의 필리핀 어 통역사로 활약한 문순득,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자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와 조선의 개화에 앞장선 유길준 등 세계 곳곳에서 활약했던 우리 조상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파악하여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했던 조상들의 진취적인 정신과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사의 한 축을 당당하게 이끌었던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능과 내신, 논술과 면접에서 요구되는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자!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한국사에 대한 호감과 자신감을 높이자!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특히 2017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많은 중고등학생과 학부모의 관심과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더욱이 역사 교육이 주입식 암기와 단순 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고력을 높이고 다른 주제와의 융합형 교육, 통합 교과로 변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한국사 과목에 대한 기본 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획일적인 사고에서 탈피해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제시할 수 있는 힘은 수능과 내신은 물론 각종 논술과 면접에서도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한국사는 사건명.연도.인명.지명 등이 많이 등장하여 오래전부터 암기 과목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이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학습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한국사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높이, 더 멀리 뛰려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워밍업과 도움닫기가 필요한 것처럼, 한국사를 대할 때 암기에 대한 부담을 떨쳐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문화 한국사 1, 2』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재미난 서술로 누구나 부담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편의 이야기를 대하듯 가볍게 읽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교과서를 통해 만나야 할 사건, 인물들과 워밍업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문화 역사 상식> 코너를 마련하여 역사적 사건의 뒷이야기, 또는 함께 읽으면 더 유익할 역사적 지식을 소개하고 교과서 밖에서 펼쳐지는 한국사도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책 말미에는 연표를 삽입하여 주제별로 소개했던 역사적 사건을 연도별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처럼 『다문화 한국사 1, 2』는 흥미로운 서술과 다양한 구성으로 한국사 학습에 대해 고민이 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탁월한 입문서이자 친절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사에 대한 부담을 호감으로 바꾸고 독자들 스스로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학습 의욕을 북돋워 준다.

영국의 경제 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업으로 일본의 옛 건물 전문 건축 회사인 곤고구미[金剛組]를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서기 586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무려 1,4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해 왔습니다. 그런 데 이 회사의 창업주는 놀랍게도 백제에서 왜국으로 건너간 유중광(柳重光)과 그 의 동료들이라고 합니다.
유중광은 왜국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6세기 말~622]의 초청으로 왜국에 가서 586년부터 593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오사카의 최대 사찰인 시텐노오지(사천 왕사)를 짓는 데 앞장서게 됩니다. 유중광의 솜씨에 놀란 쇼토쿠 태자는 유중광에 게 앞으로 대대손손 시텐노오지를 보수, 관리하는 임무를 부탁하게 됩니다.
쇼토쿠 태자는 유중광에게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란 이름을 지어 줄 정도를 그를 신뢰했습니다. 결국 유중광은 왜국에 머물게 되었고 사찰의 보수, 관리를 맡 는 회사 곤고구미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무려 40대를 이어가며 일본 제일의 사찰 전문 건축 회사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홍순언은 명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1584년 명나라로 가는 사신 황정욱(黃廷彧, 1532~1607)을 따라서 통역관의 자격으로 북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조양문 밖에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때 한 기병이 달려와 홍 판사를 찾았습니다.
“예부시랑 석성(石星) 님이 홍순언 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잠시 후 여자 종 10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한 부인이 장막 안에서 나왔습니다. 석성이 말했습니다.
“통주에서 은혜를 베푼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의 의로운 분입니다.”
부인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 하자 홍순언이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석성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 절이니 꼭 받아야 합니다.”
조선의 통사가 명나라 예부시랑(: 오늘날의 외교부 차관)의 부인으로부터 절을 받은 것입니다.
석성은 크게 연회를 베풀고 홍순언이 명나라에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 달 후 석성의 노력으로 오랫동안 조선이 해결하고자 했던 종계변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대명회전』의 기록이 수정된 것입니다. 홍순언은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홍순언이 압록강에 도착했을 때 석성의 부인이 각각 비단 10필을 담은 고급 상자 10개를 보내왔습니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은혜를 갚음)’이란 글자가 수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가 직접 짠 것이었습니다. 홍순언이 귀국하자 선조는 홍순언의 공을 크게 칭송하고, 그를 당릉군(唐陵君)에 임명했습니다. 또한 을지로 1가에 집과 노비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는 동네를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