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칼 세이건의 사망 이후 30년의 시간이 흐른 2026년의 오늘,
새로운 우주 시대를 살아갈 모두가 읽어야 할 ‘우주 핵심 교양서’태양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8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태양이 어느 순간 빛을 내는 것을 멈춘다고 해도 지구상의 우리는 8분이 지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볼 땐 실은 아득한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 별빛들은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를 먼 항성들의 흔적이자 우주의 기록 보관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면, 까만 하늘을 수놓은 희미한 빛들의 향연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현상을 뛰어넘어 아득함과 경이로움을 감각하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태곳적부터 밤하늘은 인류에게 그러한 공간이었다.
《코스모스를 넘어》는 우주의 암흑물질 연구자이자 입자물리학자인 세라 알람 말릭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저작이다. ‘코스모스를 넘어’라는 한국어판 제목처럼, 이 책은 캄캄한 우주 저편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의 흡인력과 설명력을 뛰어넘는 필치로 그려낸 ‘우주에 관한 가장 최신의 바이블’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우주에 대한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을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탐구를 이어온 여정을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은 우주라는 대상에 대한 과학적 탐색을 넘어 본질적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세계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라는 심원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밤하늘은 인류가 쌓아올린 눈부신 문명의 시발점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추동하고 이성과 감성을 자극한 매력적인 세계였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지만, 사유를 통해 그 우주를 이해한다.”
인간의 위치를 우주적 규모에서 보면 한낱 먼지처럼 미미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광대한 우주를 보다 더 정확하고 면밀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구상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죽은 별들의 재가 흩어졌기 때문이다. 별들은 죽어가면서 무거운 원소들을 우주로 뿜어냈고, 그 원소들로부터 생명체의 발생을 가능하게 한 복잡한 화학 물질이 만들어졌다. 즉, 우리를 만들어낸 원재료는 수많은 별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소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 시인의 낭만적인 문장처럼 “한때 우리는 모두가 별이었다.”
별에서부터 기원한 인류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 저 너머의 세계를 탐색하는 일에 매혹되어 온 것은 필연이었다. 《코스모스를 넘어》는 별들의 장엄한 탄생과 소멸, 새로운 발견을 거듭하며 사고의 확장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 우주가 맞이할 먼 미래의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가장 친절하고 믿을 만한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이다.
“밤하늘은 인간이 처음으로 읽은 과학의 책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멀리 도약하고자 한 인류의 눈부신 여정을 따라가다!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대인들에게 밤하늘은 신들의 메시지로 가득한 공간이자 황홀감을 선사하는 경이로움의 장소였다. 이 메시지를 해독하는 일은 당시 사제들에게 부여된 신성한 임무였다. 특히나 한 천체가 다른 천체를 가리는 장엄하고도 정교한 천문 현상인 일식이나 월식은 왕의 몰락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고대의 천문학이 점성술이나 종교적 차원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60진법 수 체계를 활용해 행성의 이동을 추적하고 관찰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월식의 주기도 정확히 예견했다. 요컨대 별과 행성의 움직임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을 따른다고 인식하고, 천문 현상을 ‘과학적’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이는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체계적인 틀을 세우려 했던 최초의 시도였다.
이슬람 제국이 번영을 구가하던 8~13세기에는 인류의 우주에 대한 지식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이슬람 학자들은 종교 의례를 엄밀하게 실천하기 위해 태양과 달의 운동 모델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시기에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대신 평화롭게 공존하며 둘 다 인간을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렸다. 천문학 탐구의 황금기에 쌓아올린 유산은 이후 유럽으로 흘러들어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발판으로 작용한다.
16세기 초까지도 인류는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태양이 매일 하늘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달이 밤하늘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별들이 줄지어 행진하는 것 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던 직관적인 경험은 수많은 별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지구)만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돛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는 1,000년이 넘도록 인류의 사고를 지배해온 이 견고한 인식의 틀을 깨뜨린 인물이다. 1543년 그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태양 중심의 우주관은 지구 중심의 우주관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학적으로 가장 우아한 방법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천동설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당대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천동설이 위대한 이유는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세계관을 전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에서의 지구,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함에 따라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극적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철학과 종교에서도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대문호 괴테는 다음과 같이 그 변화의 의미를 통찰했다.
“모든 발견과 사상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 인간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둥글고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로 인식되려는 바로 그 순간,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거대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에 실제 관측에 따른 명확한 증거를 더해 힘을 실어준 인물이다. 그는 목성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여러 위성을 발견했는데, 이는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 주위를 도는 천체가 직접 관찰된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달의 표면이 솟아오른 능선과 어둡게 패인 분지들로 이루어진 요철 모양이라는 사실, 태양 역시 흑점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태양과 달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주장하듯 완전무결한 천체가 아님을 경험적 발견으로 입증해냈다.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탐구의 장이다.”
상대성이론부터 양자역학, 다세계 이론까지
현대 우주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19세기 말이 되자 인류는 우주에 대한 이해에서 눈부신 도약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을 손에 넣게 된다. 뉴턴 역학은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에서부터 행성의 궤도 운동에 이르기까지 지상과 천체의 움직임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탄탄한 틀을 제시했다. 뉴턴 이후 인류는 우주가 광대하고 정교하지만 대체로 이해와 예측이 가능하다는 기계론적 우주관을 갖게 된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자 그러한 생각을 산산이 부수어버리고 인간이 우주의 근본 원리를 다 밝혀냈다는 착각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발견들이 이어진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4차원 시공간으로 엮었다. 이 틀에 중력을 어떻게 포함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뉴턴 물리학의 중력 개념은 뒤엎어졌고, 과학은 한 단계 진일보했다.
그러나 고전적 세계관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체계는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대담하고 정밀한 새로운 주장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를테면, 자연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무작위적’이라고 말하는 양자역학, 양자적 존재가 측정을 통해 하나의 명확한 상태를 취하는 대신에 가능한 모든 결과가 각각 별개의 평행 세계 속에서 실제로 실현된다고 보는 ‘다세계 해석 이론’ 등이 그것들이다. 바야흐로 확실성의 시대가 끝나고 불확실성과 확률론, 유동성의 세계가 열렸다. 20세기에 인류는 진리라고 여겼던 자연법칙조차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언할 수 없음을, 그리하여 우리는 더 정확하고 이해 가능한 진리를 향해 다가가려 애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수많은 실험과 검증, 관측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와 이 세계의 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기꺼이 협력하며 오늘도 연구와 탐색에 몰두한다. 2010년, 대형 강입자 충돌기의 가동과 이로부터 발견된 힉스 보손(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입자 중 하나)과 특성이 일치하는 입자의 발견은 우주의 근본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마지막 퍼즐 조각이자 범세계적인 과학 집단의 협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우주의 질량 및 에너지 구성에서 일반 물질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암흑 물질의 비밀을 풀어낼 단서를 인류는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고대인들이 별들을 관측해 그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우주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은 지상을 죽음과 부패의 공간으로, 천상을 영원한 완전성의 영역으로 명확히 구분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별들 또한 식어가며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주 자체도 별의 운명과 비슷한 운명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과거의 인류가 바라보던 하늘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현실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또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가능한 것의 한계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해 보이는 곳까지 나아가는 것이다.”지구 중심설(천동설)을 정교한 수학적 모형으로 확장해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려 했던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유명한 저서 《알마게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나는 내가 필멸의 찰나적인 존재임을 안다. 그러나 하늘이 그려내는 궤적을 마음껏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어느새 제우스의 곁에 서서 암브로시아를 실컷 맛보게 된다.”
이처럼 고대인들은 돔으로 상상한 하늘을 바라보며 신비로움을 느꼈고, 그 경탄의 순간에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 신적인 영역에 닿은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리고 하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영원한 진리를 향한 열망에 이끌려 인간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거대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약 95퍼센트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밝혀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은 결국 광대한 우주의 진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류 앞에는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이 광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 우리처럼 밤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질문을 던지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지는 않을까?’ ‘우주에서 생명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명체는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지구 밖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 우주의 생물학적 질서 속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선은 이제 우주로부터 기원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사색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또 다른 생명을 향해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격변이 인류의 지위와 인식의 지평을 뒤흔들어왔지만, 지구 밖에서 생명체가 발견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을, 충격적이고 변혁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그 순간에 다다르기 위해,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살고 있는 지성의 생명체들은 최첨단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고, 멀고 먼 우주 밖으로 거대한 탐사선을 쏘아 올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존재들에게 지구의 정보를 전하고자 애쓴다.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인류 문명은 역사상 가장 대담한 항해를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문명으로 거듭났다. 달의 표면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혔고, 이제는 화성으로의 이주도 허황한 꿈이 아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서 통제되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기계들이 우리의 손길이 닿지 못한 우주의 광대한 영역을 인간 대신 탐사하는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기계들도 지금과 같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요즘의 상황을 토대로 본다면 미래의 기계들은 그것들을 설계한 우리의 정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훨씬 더 자율적이며 훨씬 더 지능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새로운 존재들은 우주를 이해하고 그 속으로 뻗어 나가는 일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빛을 바라보며 인류가 느꼈던 벅찬 환희를 기계들이 과연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캄캄하고 광막한 곳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열망이 그 기계들 안에서 피어오를까?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먼 우주를 향한 기나긴 항해 끝에 다시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자리를 되돌아와 ‘인간다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성의 한계에 다다르는 탐구를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얻었고, 한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종이다. 우리는 이야기꾼이며,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찾고 있는 존재다. 비록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고작 한 줄의 각주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그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우주 탐사는 단지 과학의 최전선으로 향하는 행진이 아니라, 불가능한 질문들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 종이 수행하는 영혼의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밤하늘의 불빛에 매혹되어왔고, 한때 신으로 섬기던 바로 그 별들로 향하도록 운명 지어졌다. 남은 질문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곳에 도달할 것인가다. (‘에필로그’ 중에서)
이 책 《코스모스를 넘어》에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시험하며 새로운 발견과 인식의 확장을 이어온 인류의 위대한 역사가 압축적으로 담겼다. 지난 2,000년간 인류에게 문학적 영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었던 우주. 그 우주를 향한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앞으로 어떠한 미래로 나아갈지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알고 싶다면, 꼭 집어 들어야 하는 우주 필수 교양서다. 본문 중간에 들어가 있는 우주에 대한 인상적인 아포리즘과 아름다운 우주 사진은 독서의 즐거움을 한층 더 배가해줄 것이다.

밤하늘은 신들의 메시지로 가득했고, 신들은 천체의 운행을 통해 의지를 드러내며 인간 세상에 영향력을 미쳤다. 하늘은 이렇게 그들에게 뜻을 전했고, 이 우주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일이 사제의 신성한 임무였다. 당시 사제들은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우주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최고 수준의 천문학자였다. 밤마다 그들은 하늘을 샅샅이 뒤지면서 별들의 위치와 다양한 천문 현상을 관찰했고, 그 결과를 점토판 위에 쐐기문자로 꼼꼼하게 새겨 넣었다. (‘고대의 우주’ 중에서)
과학은 뿌리 깊은 신념의 잔재를 벗어던지고 경험주의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종교와는 점점 다른 길을 개척해나갔다.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찾으려는 탐구는 인류를 우주의 중심이라는 고귀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 자리는 오랫동안 종교 교리의 권위로 보증되어온 것이었다. 한때 신의 뜻으로 우리의 자리와 목적이 정당화되던 자리에 이제 우리는 그저 미미한 존재로 남게 됐다.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했던 것은 세계관의 전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전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단 한 번의 혁명적 발견으로 완전히 뒤집혀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뀔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이성적 이해를 향한 탐구는 하늘의 신비를 벗겨냈지만, 동시에 존재에 대한 우리의 물음은 더욱 깊게 만들었다. ( ‘코페르니쿠스 혁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