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세기 초반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를 자신만의 치열한 관점으로 소설화한 작가 최정희의 소설 중 9편의 장편소설이 6권의 전집으로 간행되었다. 일제강점기 민중의 현실과 지식인의 고뇌, 해방기의 혼란, 전쟁과 분단 상황 속에서의 젠더 문제까지 그대로 직시한 문제적 작가 최정희의 소설 작품을 원문 그대로 만나볼 기회이다. 전집 6권에는 『강물은 또 몇 천리』(1964~1966)가 수록되었다.
출판사 리뷰
충실한 기록과 도발적 폭로로 현대사의 이면을 소설화한
문제적 작가 최정희의 소설들
『강물은 또 몇 천리』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동경 유학파 출신 인텔리 여성 서강주가 남편 조승현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10여 년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식민지 시기 연극 운동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최정희의 1930년대 초중반 생애도 반영되어 있어 작가 연구에도 필수적인 자료이다.
배우를 꿈꾸던 서강주는 연극 운동을 하는 조승현에게 강간을 당한 뒤 낮에는 그가 주간으로 있는 잡지사 기자로, 밤에는 그의 여자로 살면서 그의 성적, 신체적 폭력을 견딘다. 생계를 위해 지방 순회극단 배우로도 일하면서 방탕하고 무책임한 남편 대신 시댁 식구까지 먹여 살리며 고군분투하지만, 조승현은 친족 살인까지 저지르고 자살을 위장하여 도피했다가, 다시 나타나 서강주를 위협한다. 서강주의 피폐한 삶에서는 민족의 해방조차 떠나 보낸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번민이 깊어지는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강물은 또 몇 천리』는 해방 공간의 혼란상 속에서 마무리된다.

이럴즈음에 승현의 소식을 들었다. 일터를 찾아온 승현의 동지라는 사나이의 말인즉 조승현이 북간도에 있다는 것이었다. 승현은 사나이에게 수표교다리 근처, 수표정 ××번지에 가서 강주를 찾으라고 일러주더라는 것이고 만약에 그집에 거주하지 않고 다른데 이사를 갔더라도 그집 주인들에게 물으면 강주의 행방을 알 것이라고해서 사나이는 그말대로 거기 가서 일터를 알게 되었다는 말까지 했다.
강주는 금새 몸속에 얼음이 꽉찬 듯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수염이 무성한 사나이의 얼굴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조승현 동지께선 훌륭히 싸우고 있어요.”
사나이가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강주를 뚫어지게 보아가며 말했다.
죽은 지 오랜 그가 누구와 무엇을 싸우고 있냐고 이런 소리를 치고싶었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입술이 약간 달싹거렸을 뿐이었다.
강주 눈앞엔 살아있다는 승현은 떠오르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도 없던 시체가 가로놓였던 것이다.
“조승현 동지께서 부인을 대동하고 오라는 사명을 나에게 주었읍니다. 나는 부인을 대동하고 조승현 동지에게로 가면 내 사명을 마치는 겁니다.”
“네?”
이 소리는 강주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강주는 제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그는 피범벅이 되어있는 승현의 시체와 시누이와 아이의 한테 붙은 시체를 보고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안개와 같은 뽀얀 기체 속을 둥둥 떠올라가면서 강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주는 내밀어 잡는 그들의 손을 붙잡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둥둥 떠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정희
1906년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출생. 1924년 상경 후 동덕여학교와 숙명여고보를 거쳐 1928년 중앙보육학교 입학.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유치원 보모로 근무하며 조선학생극예술좌에 참가. 1931년 귀국하여 소형극장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삼천리사에 입사. 1931년 「정당한 스파이」로 작품 활동 시작. 1934년 카프 전주사건에 연루되어 투옥, 8개월간 옥고를 치름. 자선 데뷔작 「흉가」(『조광』, 1937.4)를 발표. 1942년 경기도 양주군 덕소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해방을 맞이함. 일제 말기 다수의 친일 작품 발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1951년 대구로 피난. 공군 종군작가단체인 창공구락부에서 활동. 식민지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장편소설 9편을 비롯해 총 10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을 발표하는 저력을 보임. 장편소설 『인생찬가』로 제8회 서울시문화상 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인간사』로 1964년 제1회 여류문학상 수상. 1965년 창립된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부회장. 1967년 파월장병위문단장으로 베트남 방문. 197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72년 제1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상 수상. 1983년 3.1문화상 예술상 수상. 1990년 별세.
목차
■ 책머리에
강물은 또 몇 천리
■ [해제] 내게 구원을’: 어느 페미니스트의 외침_ 손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