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삶이 가벼워지는 〈불교심리학〉, 미처 몰랐던 마음의 위대한 법칙!
고장 난 건 마음이 아니었다, 사용법을 몰랐을 뿐!이 책은 보만 스님의 〈불교심리학〉 강의를 바탕으로 ‘마음 사용법’을 정리했다. 〈불교심리학〉에서 스님은 마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생각과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핵심 키워드로 ‘기억’, ‘견해’, ‘정신’을 꼽는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은 기억에 저장되고, 그 기억은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를 만든다. 견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순간 또 다른 기억이 쌓이며, 마음은 ‘기억-견해’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작동한다. 생각과 감정은 쉴 새 없이 몰려와 마음이 늘 고장 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원리를 이해하면 소란의 한가운데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며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정신’, 보이지 않는 ‘숨은 엔진’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음의 구조와 원리를 ‘제품 설명서’의 형식으로 풀어내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불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무겁고 추상적인 교리서가 아니다. 늘 웃음과 유쾌함이 함께 하는 보만 스님의 강의 〈불교심리학〉처럼, 이 책은 일상의 갈등과 흔들림을 가볍고 명쾌하게 다루는 ‘마음의 매뉴얼’이다.
“마음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늦은 시간 잠을 미루며 듣게 되는 명강의다”
“재밌어서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밤을 새워 아침이 되어 있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깨달음으로 끝나는 마음공부의 현장!
화제의 강의, 보만 스님의 〈불교심리학〉보만 스님이 강의하는 곳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백 석의 자리도 부족해 복도와 계단에까지 앉은 이들로 빽빽하다. 절집 문턱을 수십 년 동안 드나든 분들은 물론 마음을 좀 쉬게 하고 싶은 이들까지 찾아온 것이다. 유튜브 강의 〈불교심리학〉이 입소문을 타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그 중심에 선 보만 스님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스님’이다.
스님이 강단에 오르면 공기가 달라진다. 절집 특유의 ‘엄근진(엄숙·근엄·진지함)’은 온데간데없고, 웃음과 즐거운 에너지로 채워진다. 설법보다 대화가, 교리보다 공감이 오가며, 청중들은 자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꺼내놓는다. 보만 스님의 강의가 특별한 이유는 불교와 마음공부가 어렵지 않게, 그리고 유쾌하게 다가온다는 것! “마음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늦은 시간 잠을 미루며 듣게 되는 명강의다.”, “재밌어서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밤을 새워 아침이 되어 있었다.”라는 청중들의 반응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단순히 ‘유쾌함’과 ‘재미’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스님의 웃음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수행의 한 형태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너무 진지합니다. 세상이 진실하다고, 내 생각이 옳다고, ‘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진지해지고, 삶은 무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진지함을 덜어 내면 삶은 가벼워지고, 그때 비로소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쾌함을 잃지 않은 채 대중 속에 스며드는 이유다. 그의 웃음은 유머가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통찰의 미소다. 그렇기에 웃음 사이사이, 마음을 꿰뚫은 문장이 가슴에 정확히 날아든다.
진지함은 덜었지만, 진솔함은 더했다. 화를 참지 못하던 시절 상처만 주고 살았던 이야기, 고등학교 때 여고생들과 ‘반팅’하다가 들킨 일, 절의 창고를 몽땅 태워 버린 사고까지, 스님은 자신의 과거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불교심리학〉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삶’을 바꾸기 위한 공부이기에, 그 모든 경험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스님의 진솔함 덕분에, 청중들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스님과 청중들이 주고받은 ‘찐한’ 진솔함의 대화, 그 경쾌한 현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자꾸만 뚝딱거리는 내 마음, 고장 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다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별일 아닌 일에 괜히 서운하고, 아무 일이 없는데도 불안하다. 감정을 다스리려 애쓸수록 왜 마음은 더 거칠게 움직이는 걸까? 그래서 묻게 된다. “내 마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그 물음표를 따라 마음의 구조를 눈앞에 펼쳐 보인 책이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불교심리학』이다. 이 책은 말한다.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억과 견해가 만나 흐르는 ‘과정’일 뿐이라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은 잠시 스쳐가는 현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나’라고 착각하며 끊임없이 고통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고통의 밑바닥에는 ‘의미’가 있다. ‘의미’는 과거의 기억이 만든 견해가 지금의 경험을 해석하고, 그 해석이 다시 기억을 강화하는 순환에서 생겨났다. 이렇게 쌓인 ‘기억의 안경’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고 있다. 그래서 같은 말도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어떤 이에게는 농담이 된다. 그러니 억지로 좋은 의미를 덧입히기보다, 이미 쌓인 의미를 하나씩 덜어 내 보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삶은 단순해지고, 단순해진 만큼 가벼워진다!
‘마음[心]의 이치[理]를 다룬다.’라는 점에서 ‘심리학’이라는 말을 빌려왔지만, 〈불교심리학〉과 서양 심리학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마음을 유추하기 위해 ‘말’과 ‘행동’을 연구한 게 심리학이라면, 〈불교심리학〉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마음의 구조와 원리’를 탐구한다. 또한 기존의 ‘나’라고 여겼던 틀과 생각, 관점에서 벗어나 ‘걸림 없는 나[無我]’를 확인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사용 설명서를 읽으며 물건을 조립하듯 마음의 작동 원리를 하나하나 이해하다 보면, 어느새 깨닫게 된다. ‘마음은 고장 난 게 아니었구나! 단지 사용법을 몰랐을 뿐이었어!’
알고 보니 ‘나’는 계속해서 깨닫고 있는 존재였다!
위대한 마음의 법칙, 단단한 내 마음의 매뉴얼!여기서 잠깐, 눈을 감고 딱 1분만 마음을 들여다보자. 무엇이 느껴지는가? 짧은 순간에도 수십 개의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머물다 사라질 그 한 장면에 온 마음을 쏟아붓는다. 그때, 보만 스님이 조용히 묻는다.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득, 마음이 멈춘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장면 사이에서 ‘지켜보는 나’를 의식하는 순간이다. 〈불교심리학〉에서 밝히는 마음의 가장 본질적인 바탕, 그 자리가 바로 정신[覺]이다. 생각은 변하고 감정은 흐르지만, 모든 변화를 알아차리는 자리[覺]는 언제나 고요하다. 마음을 ‘고치려고’만 들었던 우리들에게 보만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 자리, 그 깨닫는 능력의 자리는 절대 훼손되거나 무너지거나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세상을 바라볼 뿐입니다. 슬픔을 통해서도, 기쁨을 통해서도, 괴로움과 환희를 통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끝없이 깨닫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불교심리학〉은 ‘정신의 자리’를 자각하는 공부다. 생각은 정신의 작용이고, 감정은 그 작용이 남긴 흔적으로, 정신을 자각한다는 것은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의 법칙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 법칙을 따르는 순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된다. 마음은 ‘고칠’ 것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는 것을. 당신이 이 책을 덮을 때쯤엔, 이미 ‘깨닫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불교심리학〉의 토대가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수많은 설명과 비유, 예시는 분명한 목적지를 가리키는데, 그것이 바로 무아(無我)입니다. 그동안 믿어왔던 ‘나’라는 것이 생겨나는 원리를 설명하여, 수시로 생기고 변하며 사라지는 일시적인 ‘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반면 심리학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을 뿐, ‘무아’를 밝히려는 학문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꿰뚫어 보며,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고, 그 깨달음에서 오는 해방감을 일깨웁니다. 바로 이 점이 〈불교심리학〉과 심리학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상식으로 여긴다면 어떨까요? 삶과 죽음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집착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자연스레 던지게 되고, 삶은 한결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무언가를 꼭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해내기 위해서 절박한 심정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