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초기 기독교의 박해를 지나, 교회가 걸어온 길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밀알들을 만난다. 그들의 붉은 피 위에 세워진 교회, 권력의 정점에 선 교회, 그리고 개혁의 망치 소리에 깨어난 교회. 이 책은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며 기독교세계의 민낯을 그려낸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품고, 저자는 35일 동안 7개국 22개 도시를 걸었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16-17세기 신앙의 흔적을 사진과 명화에 담아 독자가 교회사(敎會史)의 숨결을 느끼고 믿음의 길을 새롭게 사유하도록 이끈다.
출판사 리뷰
초기 기독교의 박해를 지나, 교회가 걸어온 길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밀알들을 만난다. 그들의 붉은 피 위에 세워진 교회, 권력의 정점에 선 교회, 그리고 개혁의 망치 소리에 깨어난 교회. 이 책은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며 기독교세계의 민낯을 그려낸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품고, 저자는 35일 동안 7개국 22개 도시를 걸었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16-17세기 신앙의 흔적을 사진과 명화에 담아 독자가 교회사(敎會史)의 숨결을 느끼고 믿음의 길을 새롭게 사유하도록 이끈다.
추천 대상
중세 유럽과 기독교 역사 등,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학생 및 청소년을 비롯한 일반인
제1장 박해에서 기독교 제국으로
유대교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역사는 늘 그러하였다. 새로운 사상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체제는 그것을 쉽게 '이단'이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는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규정하는 데서 오는 차별과 불관용이 뒤따른다. 마찬가지로 유대사회에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은 전통 질서를 훼손하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앙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단이며, 수천 년간 쌓아올린 종교적 권위를 뒤흔드는 이단이었다. 더욱이 예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유대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 아닌, 별볼일 없는 촌뜨기들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로마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를 겁박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으며, 헤롯 아그립바에게 야고보가 죽임 당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나아가 예루살렘 멸망 후 바리새파가 재건한 얌니아 종교회의Council of Jamnia에서 유대-기독교인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들은 '아도나이 엘로힘'을 함께 예배하던 자신들의 가족이고 유대공동체의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낯선 존재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바 대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리라' 하신 그분을 보고도 믿지 않은 유대인들과 '오리라' 하신 분의 오심을 믿은 유대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의 형제를 박해했던 유대 선민세계관과 마찬가지로, 로마 교회 역시 성경과 사도적 가르침으로 회복하자는 형제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불태우고 참수하였다. 이는 유대교의 선민 세계관과 로마주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자신들의 전통과 사상에 도전하는 모든 것에 불관용을 드러낸 무도함은 인류 역사에서 박멸되지 않을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대로 유대교 역시 로마 황제들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불관용은 자신들에게도 돌아오게 될 불관용이었다. AD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바르 코크바Bar Kokhba의 반란, 곧 제3차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나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되거나 노예로 팔려갔고, 유대인은 예루살렘 출입과 할례를 금지당하였다. 또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유피테르 신상(神像)과 베누스 신전에 머리를 조아리는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로 더럽혀졌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유대 지역은 시리아 팔레스티나Syria Palaestina로 개명해 버렸다. 한편, 로마 제국의 옥타비아누스는 평화시대, 곧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룩한 아우구스투스였고 메시아였다. 이제 로마의 전통적인 제신(諸神)공경은 황제숭배와 여신숭배Dea Roma로 바뀌었다. 이러한 로마 제국에서의 초기 기독교 박해는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되어 300여 년 동안 10명의 황제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중에 로마 전역에서 황제의 주도 아래 자행된 맹렬한 대박해는 3세기 초 세베루스와 3세기 중엽의 데키우스, 그리고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에서 일어났다. 황제 네로는 AD 64년 로마 대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베드로와 바울을 죽이고 자신의 모친과 아내까지 죽인 천하의 미치광이 네로는 로마 제국 최초 기독교 박해자로 기독교회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도미티아누스는 황제 신격화에 반대한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로마에서 발생한 전염병이나 사회문제 원인을 그들 탓으로 돌려 죽였다. 이때 디모데Τιμ?θεο?, c. AD 90가 죽임을 당하였다. 108년경 트라야누스 황제는 안티오크(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를 산 채로 사자에게 던져 물어 뜯겨 죽도록 하였다. 155년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서머나 감독 폴리카르포스Polycarp가 86세에 순교하였다.
161년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아시아와 프랑스에서 구경꾼들이 자지러질 정도의 끔찍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죽였는데, 기독교인들은 그의 잔인함보다 더 용감하게 순교를 받아들였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00- c.165으로 불리는 『변증』First/Second Apology의 유스티누스가 그의 치하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이단논박』Against Heresies으로 영지주의에 대항한 리옹의 이레나이우스가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249년에는 데키우스 황제가 숭배를 거부한 반역자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배교자로 만들어 내는 일에 총력을 다하였다. 이 전략은 목숨을 뺏는 것보다 더한 해악을 기독교에 끼쳤다. 수천 명의 배교자들이 속출하였고, 돌아온 배교자들에 대한 처분을 놓고 교회는 논쟁과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es는 순교한 부친과 달리, 살아남게 되었다. 그다지 포악하지 않았던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음해하는 마술사의 꼬임에 넘어가, 통치기간 내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테르툴리아누스의 후계자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58를 참수하였다. - 중략 - 한편, 로마 황제들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 교회는 이단에 대항할 논박과 변증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마르키온Marcion과 영지주의Gnosticism가 이단적인 교리 체계를 갖추고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설 적합한 인물은 이레네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와 같은 교부들이었다. 이단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박해가 종식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테르툴리아누스는 『변증론』Apologeticum 제50장에서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이다'라고 밝혔다. 곧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1. 로렌초 발라 - 콘스탄티누스의 증여
바젤 종교회의(1431-1449)는 교회의 최고 권위가 교황에게 있는가, 아니면 공의회, 곧 종교회의 전체에 있는가를 둘러싼 '수위권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종교회의는 "교황도 종교회의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의회 우위'를 내세웠으나,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 r. 1431-1447는 이에 반발해 바젤 회의를 해산하라고 명령했지만 종교회의는 이를 거부하고 회의를 지속했다. 결국 1439년, 교황은 코시모 메디치Cosimo de' Medici의 지원 아래 피렌체에서 새로운 종교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동방교회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며 교회 일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곧 철회되었다. 이처럼 논쟁적인 교황의 수위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랫동안 인용되었던 「콘스탄티누스의 증여」Donatio Constantini는 4세기의 문서로 알려졌으나,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1407-1457에 의해 8세기 라틴어로 작성된 위조문서임이 밝혀졌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주교 실베스터 1세에게 수여해 준 것으로 알려진 이 문서는 330년 5월 11일, 황제가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로마 교회에 남겨 준 '기증'으로 포장되었다. 이후 로마 주교들은 세속 군주들과 권위를 다툴 때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를 내세워 교황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핵심 논거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로렌초 발라 이전에는 그 진위를 의심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단테는 『신곡』Divina Commedia의 「지옥편」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 콘스탄티누스여! 얼마나 큰 악의 근원을 네 회심이 가져왔던가!" 그는 교황권이 세속 권력을 탐하게 된 원인을 그 위조문서의 허구적 유산에서 보았다. 1440년 교황주의자들에게 야박한 운명의 장난은 인문학자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1407-1457로부터 시작되었다. 여느 르네상스 군주들처럼 예술과 학문을 후원한 아라곤과 시칠리아의 왕 알폰소의 궁정에서 활동한 그는 언어학적 분석에 탁월했다. 그런데 히에로니무스가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 수많은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에 『신약성경 주석』Annotationes in Novum Testamentum을 집필하며 불가타와 원문을 비교·분석하고, 오역과 신학적 왜곡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교회의 보수적 전통과 충돌할 위험이 컸기에 그의 저서는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나폴리 왕국의 주도권을 둘러싼 세속 군주들의 쟁탈전이 한창이었다. 그 와중에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는 나폴리가 교황령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알폰소 왕의 심기를 거듭 뒤틀리게 했다. 긴장된 정세 속에서 완곡어법(婉曲語法)을 모르는 발라는 알폰소 왕에게 꽤 쓸만한 펜과 입이 되어 주었다. 그의 탁월한 라틴어 실력은 단지 불가타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황청Curia Romana의 권위를 지탱해 온 문서들의 비밀을 꿰뚫어 보았다. 발라는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의 위조에 관한 논고』De falso credita et ementita Constantini donatione declamatio, 1440를 저술하여, 교황권의 신성한 근거를 무너뜨리는 불온한 진실을 세상에 던졌다.
"설령 「콘스탄티누스의 증여」가 사실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무효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럴 권한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정이야 어떻든 교황청의 범죄들이 그것을 무효로 만들었다. 만일 이 문서가 위조라면 교황들의 세속적인 권리는 천년 된 왕위 찬탈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권력으로부터 교회의 부패가 나타났고 이탈리아 전쟁으로 나타났으며, 위압적이고 야만적이고 폭군적인 사제 지배가 나타났다."
2. 마르틴 루터 - 하나님의 손에 들린 횃불
1483년 11월 10일, 작은 광산촌 아이슬레벤에서 훗날 16세기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릴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태어났다. 구리광산업으로 자수성가한 그의 부친은 아들이 고된 노동을 이어받지 않고 법률가로서 안정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루터는, 벼락을 맞을 뻔한 사건을 계기로 곧바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절단으로(1510-1511) 로마를 방문했다. 이때 교회의 실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영적 고뇌에 빠진 그를 수도회는 비텐베르크로 전임시켰고, 그는 1512년에 신학박사 학위 취득 후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문에 《95개조 논제》Die 95 Thesen를 게시했다. 이 라틴어로 된 문서는 누구나 쉽게 읽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신학자들과 학문적 토론을 촉구한 신학적 테제였다. 당시 비텐베르크는 2천여 명 규모의 작센 내 작은 소도시에 불과했다. 주민들 다수는 독일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였고 사제들 중에도 문맹자가 적지 않았다. 그러한 도시에서 1502년 작센의 현공(賢公) 프리드리히 3세(r. 1486-1525)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인가를 받아 비텐베르크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대학은 설립 초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곧 루터와 멜란히톤을 중심으로 한 신학적 논쟁과 개혁운동의 본거지가 되면서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미쁜아기
합동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을 전공한 저자는 시집 『숲에는 달이 뜨고』, 『바람의 옷을 입고』, 그리고 중편소설 『잃어버린 계절』과 편역한 한시집(漢詩集) 『인생을 漢詩로 노래하다』, 히브리어 직역 창세기 『처음에』, Camino de Santiago 800km 여행기 『어메이징 까미노』에 이어 개정판 『길을 찾다』, 멜버른과 시드니를 배경으로 한 『노아야 여행 가자』를 펴냈다.
목차
제Ⅰ부 겨자씨 기독교
제1장 박해에서 기독교제국으로
1. 유대교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2. 기독교제국이 된 로마
제2장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A. 게르만족의 기독교화
1. 게르만족의 대이동
2. 프랑크 왕국 - 메로빙거 왕조
B. 기독교제국의 교회
1. 대 그레고리우스 1세
2. 서로마 황제 - 샤를마뉴
3. 성상숭배(Iconodulism) 금지
4. 이코노클라즘(Iconoclasm) vs 이코노둘리즘(Iconodulism)
5. 게르만족의 세계관
제3장 중세 중기(High Middle Ages)
A. 교회조직과 교회정치
1. 에큐메니컬 공의회
2. 보편적인 교회
3. 서임권 투쟁 - 카노사의 굴욕
4. 십자군 원정
5. 교회 대분열(The Great Western Schism)
6. 제4차 십자군 - 라틴 제국
7. ‘하나님의 대리자’ 인노켄티우스 3세(1198-1216)
제4장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 15세기 인문주의자들이 규정한 ‘중세’
2. 페트라르카 ‘아드 폰테스’
3. 르네상스의 빛과 그림자
제Ⅱ부 순전한 기독교의 길
제1장 여명: 종말의 징조들
1. 아비뇽 유수(1309-1377)
2. 14세기 흑사병(1346-1353)
3. 종교개혁의 불씨 - 존 위클리프
4. 서방교회 대분열(1378-1418)
5. 백조를 기다리다 - 얀 후스
제2장 종교개혁의 여명
1. 로렌초 발라 - ‘콘스탄티누스의 증여’
2. 금속활자 인쇄술
3. 동로마 제국 멸망
4. 종교개혁의 트리거
5. 르네상스 교황들
6. 에라스무스 - 헬라어 신약성경
7. 면벌부(Indulgentia)
제3장 16세기 종교개혁
A. 회복의 길
1. 종교개혁이란?
2. 마르틴 루터 - 하나님의 손에 들린 횃불
B. 과녁을 벗어난 운동
1. 독일 농민전쟁(1524-1525)
2. 토마스 뮌처
제4장 종교개혁 그리고 정치
1.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2. 보름스 제국의회(1521)
3. 제5차 이탈리아 전쟁(1526-1530) - 로마의 약탈
4.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1529)
5.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5)
제5장 반종교개혁 - 재가톨릭화
1. 반종교개혁 - 트리엔트 종교회의(1545-1563)
2. 슈말칼덴 전쟁(Schmalkaldic War, 1546-1547)
3.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Peace of Augsburg, 1555)
4. 30년 종교전쟁(The Thirty Years’ War, 1618-1648)
5. 베스트팔렌 평화조약(Peace of Westfalen, 1648)
6. 경건주의 발흥
제Ⅲ부 유럽의 종교개혁
제1장 취리히 종교개혁
A. 취리히
1. 울리히 츠빙글리
2. 개혁의 요람 - 그로스뮌스터 교회
3. 그로스뮌스터 교회 츠빙글리문
4. 취리히 종교개혁의 명암
5. 검과 성경을 든 츠빙글리 동상
6. 소시지 사건
7. 레오 유드와 장크트페터스 교회
8. 재세례파 첫 순교자 펠릭스 만츠
B. 종교개혁자들과 도시들
1. 로잔 - 피에르 비레
2. 뇌샤텔 - 기욤 파렐
3. 스트라스부르의 개혁자들
4. 마르틴 부처
제2장 제네바 종교개혁
1. 장 칼뱅
2. 제네바 아카데미 - 테오도르 드 베즈
3. 바스티옹의 종교개혁의 벽
제3장 잉글랜드 종교개혁
1. 수장령(Act of Supremacy)
2. 메리 튜더 vs 엘리자베스 튜더
3. 청교도
4. 잉글랜드 장로정치
5. 청교도 혁명
6. 명예혁명
제4장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1. 스코틀랜드 장로회주의
2. 패트릭 해밀턴의 순교
3.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4. 존 녹스의 귀환
5. 메리 스튜어트
6. 앤드류 멜빌과 「제2 치리서」
제5장 프랑스 종교개혁
1. 프랑스 개혁교회 태동 - 모(Meaux)
2. ‘위그노’로 불린 사람들
3. 앙부아즈의 음모(Conspiracy of Amboise, 1560)
4. 바시 학살 - 프랑스 종교내전 촉발(1562-1598)
5.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1572)
6. 톨레랑스 - 낭트 칙령(Edict of Nantes, 1598)
7. 라로셸 - 위그노의 도시
8.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9. 위그노 박해
제6장 네덜란드 종교개혁
1.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순교자들
2. 벨직 신앙고백서
3. 스페인의 광기
4. 빌럼 1세 오라녜 공
5. 브레다의 항복
6.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7. 뉴욕 그리고 언더우드
* 참고·인용자료
* 연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