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필사의 힘》 라이팅북 열두 번째 책으로 ‘자기만의 방’을 만나 보자.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가만히 곱씹으며 따라쓰다 보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와 같이 뛰어난 문장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신나고 즐겁게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탐미하며 힐링해 보자. 감성 치유뿐만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문장력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만과 편견》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미들마치》와 《빌레트》, 《폭풍의 언덕》이 중요하다면, 시골 저택에 틀어박혀 자신이 쓴 2절판 책과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인 외로운 귀부인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 한 시간짜리 강연에서는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들 선구자가 없었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조지 엘리엇은 글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에게 말로가 없었다면, 말로에게 초서가 없었다면, 초서에게 그보다 먼저 길을 닦고 자연 상태의 거친 언어를 길들인 잊힌 시인들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글을 쓰지 못했겠지요. 걸작이란 홀로 외로이 탄생하는 게 아니니까요. 걸작은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이들이 함께 생각한 결과이고, 그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집단의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제인 오스틴은 패니 버니에게 화환을 바쳐야 하고, 조지 엘리엇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리스어를 배우려고 침대에 종을 매달고 잔 씩씩한 노부인 엘리자 카터의 강인한 그림자에 경의를 표했어야 합니다. 거센 논란을 일으켰지만 마땅히 그녀의 자리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 안치된 에프라 벤의 묘지에, 여성 모두가 꽃을 바쳐야 하지요. 여성들에게 마음을 말할 권리를 가져다준 사람이 바로 그녀이니까요. 비록 그 삶에 그늘이 있고 숱한 염문도 뿌렸지만, 그녀 덕분에 오늘 밤 내가 여러분에게 허황된 소리를 한다는 우려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중에서
우리가 앞으로 100년 남짓 더 살면서(개개인으로서 각자의 소소한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으로서 공동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1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자유로운 습성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용기를 지닌다면, 공용 거실을 잠시 벗어나 인간을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 관련해서 본다면, 그리고 하늘도 나무도 그 밖의 무엇이든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면, 어떤 인간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령을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관계를 맺는 세계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일 뿐 아니라 실재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면, 그때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인 죽은 시인은 자신이 몇 번이나 내던진 육신을 찾을 것입니다. 그녀는 오빠가 먼저 그랬듯이, 이름 모를 선구자들의 삶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아 태어날 겁니다. 그러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다시 태어났을 때 살 수 있겠다고, 또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여기도록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녀가 다시 오리라는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는 올 것이고, 따라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비록 가난하고 이름 없는 처지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6.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잊을 수 없는 언어, 역사·정치·페미니즘·예술 문제에 관한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놀랍도록 왕성한 작품활동, 소설의 기존 형식을 깨부순 그녀의 실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으로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문인이자 영국 국가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자로,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인 울프를 지도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빼어난 미모와 빅토리아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희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가인 줄리아 마거릿 카메론을 숙모로 둔 만큼 저명한 사회적, 예술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1905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때 발병한 울프의 신경질환이 평생을 괴롭힌다.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네 남매(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는 런던의 보헤미안적인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즐겁게 지냈다. 곧 미술·문학·사회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주간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최하는데 거기서 교제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한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인쇄기를 구입하고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한다. “사람들을 조각과 모자이크로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획일적이며 일관된 전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일기에 쓴 것처럼 현실을 “떨리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로 창조하고 “마음의 비행을 포착하는 데 전념”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그녀 최고의 소설들은 깔끔한 해결책이나 명확한 구분 없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이를 오가며 시간, 경험, 성격의 불확정성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미적 탐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예술 이론, 문학사, 여성의 글쓰기, 권력의 정치에 관한 선구적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남겼으며 전기문과 일기, 서신도 썼다. 정신 질환이 재발하면서 1941년 3월 28일 서섹스 우즈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향년 59세).